입 옆 흉터로 늘 웃는 듯 보이지만 상처 안고사는 그윈플렌役
연기 살다보면 꼭 필요한 웃음 가면…
“남과 비교하면 진짜 행복 못찾아… 욕심 버리니 터닝 포인트 됐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야 행복해진다는 말이 있다. 살다 보면 웃음이라는 가면이 종종 필요하다. 그런데 뮤지컬 ‘웃는 남자’(8월 2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주인공 그윈플렌에게 웃음은 숙명이다. 어릴 때 납치돼 입이 찢어졌고 귀족들의 놀잇감이 된 그는 ‘영원한 미소’를 흉터처럼 가지고 있다. 겉으로는 늘 웃지만 속으로는 늘 우는 남자다.
지난 1일 공연을 마친 배우 박은태(41)를 만났다. ‘웃는 남자’는 공연 장르 전체에서 주간 판매 1위(공연예술 통합전산망)를 달리고 있다. 그윈플렌을 연기하는 세 배우(박은태·박효신·박강현)의 티켓파워가 막강하다. 박은태는 강변가요제 동상 출신으로 2007년 ‘노트르담 드 파리’부터 ‘모차르트’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프랑켄슈타인’ 등에서 주역을 도맡았다. 그는 “농구 선수들이 공놀이를 하는데 대접받는 건 팬들 덕분이라는 명언(최희암 감독)처럼, 뮤지컬 배우도 생산성이 없지만 박수와 응원을 받는 직업이라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분장실에서 흉터를 지울 때 무슨 생각을 하나.
“그윈플렌은 웃음이라는 감옥에 갇힌 남자다. 지울 때 제일 행복하다. ‘해방이다! 집에 가자!’고 생각한다. 하하.”
–인물에 들어가고 나오는 게 온·오프 스위치처럼 수월한가.
“초기에는 매우 어려웠다. 흥행하는 뮤지컬들은 어둡고 슬픈 배역이 많다. 그걸 계속하다 보니 우울증에 걸릴 뻔했다. 나와 가정을 지키려면 일상과 분리해야 한다. 노력을 많이 해 이젠 좀 쉽다. 뮤지컬 배우 ‘짬밥’이 15년이다.”
–이 뮤지컬의 매력이라면.
“처음에는 ‘찢어진 입을 좀 흐리게 그려달라’고 투정을 부렸다. 그런데 무대를 경험하고 보니 그윈플렌의 미소는 이 비극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고요한 함성이다. 행복할수록 그는 더 슬퍼 보여야 한다. 내가 이제 분장팀에 ‘더 진하게’를 요구하는 이유다(웃음). 영화 ‘타이타닉’의 먹먹한 장면을 떠올리며 이 인물을 준비했다. ‘웃는 남자’는 프랭크 와일드혼이 작곡한 음악도 진수성찬이다. ‘모두의 세상’과 ‘그 눈을 떠’를 특히 좋아한다.”
–박은태는 탁월한 미성을 가진 배우다. 다른 재능이라면?
“한국 뮤지컬은 한 배역을 서너 명이 나눠 맡곤 하는데, 그럼 저절로 비교를 하게 된다. ‘지킬 앤 하이드’를 처음 할 때 (조)승우 형보다 하나라도 잘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고생했다. ‘비교 지옥’에 빠지는 순간 온전히 배역에 집중할 수 없더라. 1~2년 전부터 남을 인정하고 욕심을 내려놓고 나만 보고 간다. 그것이 배우 인생에서 큰 터닝 포인트였다.”
–거꾸로 말하면 조금 부족해도 실망하지 않겠다.
“그렇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자기 몫을 하되 ‘비교 지옥’에서 벗어나야 한다. 가만, 이런 사고방식이 내 재능인가? 하하.”
–빅토르 위고가 쓴 원작 소설은 신분 차별이 심한 17세기 영국이 배경인데 지금 세상과도 통할까.
“이 뮤지컬이 사랑받는다는 게 그 대답이 될 수 있다. 그윈플렌을 보고 누구는 놀라고 누구는 웃고 누구는 피한다.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지금도 비슷할 거다.”
–뮤지컬 코미디를 가끔 하는 까닭은?
“사실 ‘킹키부츠’는 일종의 탈출구였다. 비극만 하다 보니 너무 힘들었다. 밝고 새로운 시도를 하면 팬들도 좋아하고 나도 긍정적인 기운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음 깊은 곳에서 토해내야만 좋은 연기가 아니다. 코미디를 할 때 더 살아 있다는 느낌도 받는다.”
뮤지컬 배우는 예술가와 운동선수를 합쳐놓은 직업이라고 박은태는 말한다. 연습과 공연을 반복하며 예민하게 자신을 관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10년을 함께한 성악 선생님이 계시고 보컬 코치도 정기적으로 만난다. 손흥민 선수는 어떤 목표를 세우고 연습하지만 부상을 당하지 않으려고도 노력한다. 성대도 근육이다. ‘박은태 목이 갔대’ 이런 소리 들으면 끝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