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폭' 핵심 월례비 꼽은 정부...노조·법원 "사실상 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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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02.22. 오후 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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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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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이광연 앵커, 박석원 앵커
■ 출연 : 이준엽 사회1부 기자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용 시 [YTN 뉴스큐]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앵커]
정부가 건설현장에 불법행위가 만연하다며 '건폭'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전면전에 나섰습니다.

문제의 주축으로 꼽힌 건설노조들은 건설현장 기형적 구조의 모든 책임을 노조에 뒤집어씌운다며 반발하고 있는데요.

정부의 주된 표적 가운데 하나인 월례비 문제를 중심으로 이준엽 기자와 따져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건설현장에 대해 불법행위를 엄단 하겠다는 정부 기조가 강경한데요?

[기자]
우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윤석열 대통령 발언부터 들어보고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원희룡 / 국토교통부 장관 (지난 1일) : (건설노조가) 조폭과 같은 무법지대의 온상이 되고 있습니다.]

[윤석열 / 대통령 (어제) : 건설 현장에서는 기득권 강성노조가 금품요구, 채용 강요, 공사방해와 같은 불법행위를 공공연하게 자행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노조를 표적으로 삼은 건 명확해 보입니다.

윤 대통령이 건설현장 폭력 행위를 '건폭'이라 지칭한 어제 국무회의 모두발언은 이례적으로 생중계되기도 했는데요.

정부는 우선, 검찰과 경찰에 건폭 수사단을 꾸리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가 콕 집어서 비판한 게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받는 월례비입니다.

월급 외 금품 명목인 월례비를 한 명이 1년에 2억 천7백만 원까지 받은 사례도 있다며, 모두 불법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노조가 건설사를 압박해 부당하게 받아낸 돈이라는 겁니다.

이에 따라, 월례비를 강요하면 사업자 등록을 취소하도록 법을 개정하기로 했습니다.

[앵커]
건설업계에서 일하지 않으면 월례비라는 용어가 생소할 수밖에 없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 설명해주시겠습니까?

[기자]
건설사들은 타워크레인을 갖고 있지 않고 기사들도 고용하지 않습니다.

대신 타워크레인을 보유한 임대사가 따로 있고, 기사들은 이런 임대사들과 고용계약을 맺습니다.

그리고 건설사들은 임대사에서 크레인을 빌리면서, 기사들도 함께 공급받고, 사용료를 내는 구조입니다.

결과적으로 기사와 건설사 사이엔 아무런 계약이 존재하지 않는 건데,

기사들은 임대사에서 받는 임금과 별개로 건설사에서 돈을 또 받습니다.

기사들이 건설사에서 받는 돈은 기술료나 OT비 등 다양한 명목으로 불리는데 월례비라고 통칭되고 있습니다.

[앵커]
임금을 받고, 거기에 더해서 계약을 맺지도 않은 건설사에서도 돈을 따로 받는다는 건데 왜 이런 관행이 생겼나요?

[기자]
1990년대 말 IMF 금융위기 이후 건설사들은 타워크레인 부서를 없애고, 기사들을 직접 고용하는 대신 임대사를 중간에 끼우는 형태를 택합니다.

하지만 현장의 기사들은 결국 건설사 쪽에서 지시를 받을 수밖에 없는데,

둘 사이 체결된 계약이 없다 보니 무슨 일을 더 하느냐 마느냐, 이 일이 의무냐 아니냐를 놓고 건설사와 기사 사이에 갈등이 생기게 된 겁니다.

그리고 이런 마찰은 대부분 안전 관련 법규를 위반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빚어집니다.

예를 들면, 타워크레인 작업을 할 때는 전문신호수를 비롯해 7명이 추가 배치돼야 하지만, 보통 두세 명만 배치되고 있습니다.

또, 타워크레인으로는 원래 수직 이동, 수평 이동을 해서 물건을 들어 옮기는 일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현장을 가보면 타워크레인이 거푸집 설치 등 물건을 끌거나 끼워 맞추는 일까지 맡고 있습니다.

이러면 인건비나 추가로 동원해야 하는 장비값을 아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작업 속도가 빨라져서 공기, 즉 공사 기간이 줍니다.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건설현장에서는 공기가 생명입니다.

때문에 건설사는 기사에게 웃돈을 줘서라도 공기를 당길 수 있으면 이득입니다.

그런데 고용관계도 아닌 상대에게 법규를 위반하는 업무지시를 할 수는 없기에 월례비가 관행처럼 자리 잡은 겁니다.

기사들도 월례비를 받는 것이 편치만은 않다고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직접 들어보시죠.

[이은규 / 전국건설산업노조 소속 타워크레인 기사 : 오히려 월례비를 받으면 단종(건설사)에서는 공사 기간을 맞추기 위해서 더 많은 작업을 원하고, 더 많은 작업시간을 하기를 원해요. 월례비를 받기 때문에 우리는 해야만 한다는 의무감도 좀 생기고요.]

[앵커]
결국,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니 서로 불법 소지를 눈감았다는 건데, 왜 이게 갑자기 쟁점이 됐을까요?

[기자]
직접고용이 아닌데, 돈을 주고 암묵적인 요구를 하는 것이다 보니 다툼이 있으면 해결이 어렵습니다.

기사들이 돈을 받고도 요구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과도하게 돈을 요구하는 기사들에 대해서 건설사 입장에선 노조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이 때문에 품위유지 위반으로 노조에서 징계를 받는 조합원도 종종 생기고요.

또 건설사 입장에서는 이 돈이 아깝다는 생각도 합니다.

안전수칙 위반이건 아니건 이미 현장에서 다 하는 건데, 안 하겠다는 건 태업 아니냐는 거죠.

그래서 태업이 두려워서 어쩔 수 없이 월례비를 지급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월례비 액수나 받고 나서 작업이 제대로 되고 있느냐를 따지는 경우가 있지만,

월례비를 줄지 말지를 두고 다투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지역 협회에서 자체로 정한 월례비 상한선을 공문으로 내리기도 하니 어느 정도 시세는 정해져 있고 이를 벗어나면 건설사도 기사를 교체하려 합니다.

건설사들이 서로 확실히 해두기 위해 월례비 지급 확약서는 물론 심지어 계약서까지 기사들에게 써주기도 합니다.

건설사와 기사 사이 녹취들을 여럿 들어봐도, 건설사가 먼저 월례비를 제안하는 경우가 있었고요.

건설사가 월례비를 줬으니 추가근무를 해달라고 기사에게 요구하거나,

아예 월례비를 안 주는 대신 법대로 운행하면 건설사가 더 손해라고 건설사 쪽이 수긍하기도 했습니다.

기사는 임금을 받는 상태에서 공기가 길어지면 아주 손해는 아니겠지만, 건설사는 공기가 길어지면 비용이 훨씬 늘겠죠.

[앵커]
건설사의 이해관계도 있단 건데, 월례비 성격에 대해서 법원 판단은 어떻습니까?

[기자]
판례가 많지는 않은데요.

알려진 판례 가운데 월례비가 받으면 안 되는 돈이라고 결론 내린 경우는 없습니다.

지난주에도 월례비가 일방적으로 준 돈이 아니라는 취지의 항소심 판결이 나왔습니다.

시방서에 쓰여있어 견적을 낼 때부터 반영된 돈이라며 월례비 반환을 요구하는 건설사의 청구를 기각한 겁니다.

나아가 월례비가 노동의 대가인 임금 성격을 지닌다고도 명시했습니다.

1심 때는 "없어져야 할 관행"이라며 다른 판단을 내놨는데요,

하지만 당시 재판부도 강요는 없었다는 이유로 기사가 건설사에 돌려줄 필요는 없다고 봤습니다.

또, 지난 2019년에는 조세심판원이 월례비를 용역의 대가나 사례금이라고 판단하기도 했습니다.

[앵커]
관행이긴 하지만 앞으로는 사라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나요?

[기자]
노조나 타워크레인 기사들도 없애는 데에 찬성 의견이고요.

다만 말씀드렸던 안전을 무시한 작업 관행 등은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가 문제입니다.

물론, 제일 확실한 해결책은 직접 고용입니다.

계약서 없이 암암리에 주고받은 돈이다 보니 노무관리를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서로 갈등이 빚어지는 건데, 고용관계를 정리하면 해소가 쉽겠죠.

그러나 건설사도 고용 부담을 떠안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또, 건설현장엔 월례비 말고도 문제가 많은데, 근본적으론 하도급 구조를 해소하는 게 해결책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원칙대로라면 건설 현장은 일을 맡기는 원청 건설사와 실제 일을 하는 하청 건설업체로만 구성돼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재하청이 여러 차례 반복되고 있고 현장 노동자 임금은 많게는 7분의 1토막까지 깎입니다.

그러다 보니 노동자들은 직접 건설사와 논의할 수 있고 중간단계도 줄일 수 있도록 노조의 문을 두드리는 겁니다.

정부는 월례비뿐만 아니라 노조의 '채용 강요' 문제도 근절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노조가 채용에 관여하게 된 상황 자체가 이런 기형적 다단계 구조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앵커]
조금 전에 언급된 채용 강요를 비롯해, 노조를 둘러싼 다른 문제엔 어떤 것들이 또 있을까요?

[기자]
앞서 취재진도 건설현장에 만연한 채용 강요 문제를 다루는 보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건설현장을 찾아 집회를 벌이며 공사를 막고 금품이나 노조원 채용을 요구하는데요.

일종의 파업처럼 일을 중단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 폭력이 동원되면 당연히 불법이고요.

지난 17일에는 이게 채용절차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단도 나왔습니다.

재작년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이 다른 노조 조합원을 채용했다는 이유로 상대 임대회사가 맡은 현장 세 군데에서 파업을 벌였는데요,

당시 피해를 본 기사 이야기 직접 들어보시겠습니다.

[서영관 / 전국건설산업노조 소속 타워크레인 기사 (지난해 11월) : 임대사가 있는 다른 현장에 모든 타워를 다 세우고, 무조건 그 기사 다 내려라, 이런 내용을 들었어요. (그러니까 임대사는) 이쪽에서 내려왔으면 좋겠다. 다른 현장을 좀 갔으면 좋겠다고.]

법원은 이런 행동이 근로조건 향상을 위한 게 아니라 다른 노조 조합원 채용을 배제한 것이기 때문에, 정당한 쟁의가 아니라 오히려 차별과 불평등을 유발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처럼 고용조건 향상이 아니라 다른 노조와의 밥그릇 싸움을 벌이거나 폭력을 동원하는 경우에는 법원도 위법하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앵커]
노조 회계가 불투명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기자]
지난해 YTN 보도 이후 구속돼, 1심에서 징역 4년형을 받은 진병준 전 전국건설산업노조 위원장 사례가 대표적인데요.

노조비를 7억9천만 원 넘게 횡령했는데, 그동안 아무런 견제장치가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위원장이 친인척이나 측근을 노조 감사나 이사에 넣다 보니, 제대로 된 감시가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시기 한국노총 소속 다른 건설노조인 이승조 전 연합건설산업노조 위원장도 수십억 원을 횡령한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데요.

이 전 위원장은 오히려 지난 15일 상급 노조인 연합노련 위원장으로 당선됐습니다.

이처럼 범죄에 연루되더라도 노조 위원장에게 권한이 쏠려 있기에 끄떡없는 모습을 비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자정이나 견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노조의 권력구조, 불투명한 회계 등은 입법을 통해 개선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앵커]
자 건설현장 불법과 관련한 여러 문제 짚어봤는데 앞으로 개선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자]
정부 지적처럼 건설현장에 불법 행위가 만연한 건 사실입니다.

다만 이런 불법이 오직 노조로부터 기인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노동문제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그런 연장선에서 월례비 문제를 집중적으로 따져본 건데요,

계약하지도 않은 돈이 암암리에 오가고 이를 빌미로 관행보다 과도한 요구를 하는 기사들은 분명히 처벌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월례비 관행 자체가 기사들의 강압적인 요구로 생긴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또 월례비보다도 그 이면에 아무도 지키지 않는 안전수칙들, 복잡해진 공사현장 다단계 구조가 있다는 점을 직시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습니다.

건설현장 만연한 불법행위를 단속하겠다면, 건설사나 불법 하도급사들의 문제도 짚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다른 문제들 역시 노조를 처벌한다고 다 해결될 게 아니라,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이와 별개로 노조 회계나 임원 선출구조 개선 같은 노조 자체 문제에 대해서도 처벌만큼이나 법제도 정비가 중용해 보입니다.

[앵커]
지금까지 이준엽 기자와 이야기해 봤습니다.

[기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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