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폭격으로 바뀌는 미국의 중국 압박[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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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미중 첫 대면 정상회담을 하기 전 악수하고 있다. 발리=로이터 연합뉴스


올해 상반기 미국의 대중국 정책의 가장 큰 특징은 트럼프식 무차별 '융단폭격'에서 중국의 급소를 골라 때리는 바이든식 '정밀폭격'으로의 진화가 특히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미국은 이를 '디리스킹'이라고 명명하고 정책 간판을 바꿔 걸었는데, 맞는 중국 입장에선 아프기는 매한가지였을 것이다.

최근 박진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의 전화 통화에서 왕 부장이 미국을 격렬히 비판하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디커플링'(脱钩)을 한국이 '보이콧'(抵制)하길 바란다고 했다(중국외교부 8월 31일 자). 미국이 말로는 '디리스킹'이라고 하지만 하는 행동은 사실상 여전히 '디커플링'의 기조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매 맞는 입장에서 본 것이니 가장 정확할 것이다.

오히려 '디리스킹'이라고 미국이 간판을 바꿔 걸자, 이를 미중의 갑작스러운 '데탕트'로 착각하고 유난히 긴장을 하고 대응책 마련에 부심했던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한국이다. 이게 미국의 다른 동맹국들 사이에서 꽤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던 모양이다. 쿼드(Quad) 국가에 속한 한 인사가 이에 대해 필자에게 물어오며 한마디 했다. "한국은 미국이랑 대화 안 해요?"

미국의 전략적 의도를 다른 동맹국들은 대체로 공유하고 있는데, 왜 한국만 그렇지 않은지 궁금해하는 것이다. 한국이 정보에서 소외되었다기보다는, 강대국들의 결탁에 유린당한 역사적 트라우마를 가진 한국적 감수성이 국제정치 상황 판단을 굴절시킨 것이다.

중국 쪽을 보자면, 미국의 대중국 억제 정책에 중국이 효과적인 대응 전략을 아직 찾지 못한 점이 주목할 만하다. 중국은 두 가지 점에서 당황했다. 첫째, 미국의 동맹 강화가 예상보다 신속하게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둘째, 미국의 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압박이 예상보다 강력했다는 점이다. 특히 중국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첨단 산업 분야인 반도체 기술 규제는 더욱 심각한 문제로 작용한다.

중국은 미국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찾고 있다. 미중 고위급 회담은 열렸지만 중국은 여전히 군사 핫라인 재개를 거부하고, 미국의 '가드레일' 안전망을 인정하지 않았다. 중국이 협조하지 않는 한 미중 관계는 미국의 의도대로 전개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중국은 미중 군용기 간 충돌 위험 상황을 의도적으로 조성하여 미중 관계의 불안정성을 증대시키고, 이를 통해 발생한 상황에 대한 책임을 미국에 돌리려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실제로 동남아시아 학자들 중에는 미국의 중국 압박 정책이 지역 안정성을 해친다고 보는 경우도 있다.

올 하반기 미중 관계의 가장 큰 이벤트로는 11월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꼽힌다. 바이든과 시진핑 간 '독재자' 논란으로 인해 시진핑의 참석 여부가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중국 측에서는 시진핑 참석 시 미국 측이 얼마나 예우를 갖춰줄 수 있는지, 단체 회의 장소가 아닌 별도 장소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따로 개최하여 중국을 특별대우 해줄 수 있는지 여부에 관심이 많다는 얘기도 들린다. 상황에 따라서는 미중 정상이 활짝 웃으며 악수하는 사진도 나올 수 있겠다. 하지만 미중 관계의 본질적인 개선은 여전히 요원할 것으로 보인다.



이성현 조지HW부시 미중관계기금회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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