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폐해진 지구, 둘로 나눠진 인류... 갈망·증오 속 우리의 이야기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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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태양'에서 배우들이 열연을 펼치고 있다. (재)국립정동극장 제공 |
경기아트센터·경기도극단과 국립정동극장이 공동으로 기획·제작한 연극 ‘태양’이 서울 국립정동극장에서 지난 3일부터 관객을 맞이하고 있다. ‘태양’은 2021년 경기아트센터와 두산아트센터가 협력했던 초연 무대에서 관객들을 사로잡은 적이 있다. 이번 재연 무대는 초연에 비해 어떤 부분에서 달라졌고, 어떤 방식으로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지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다.
‘태양’은 21세기 초 바이러스로 초토화된 사회에서, 인류가 두 부류로 갈라진 상황을 그려냈다. 항체를 가진 우월한 존재들은 자외선에 약해 해가 진 뒤에만 활동하는 밤의 인간 ‘녹스’가 됐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햇빛 아래 살아갈 수는 있지만 도태된 낮의 인간인 ‘큐리오’로 불리게 된다.
흥미로운 설정을 도입해 희곡을 집필한 마에카와 도모히로 작가는 이 작품을 두고 “SF면서 우화이기도 하고, 지극히 일상처럼 느껴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바꿔 말하면, 이를 무대 위에 표현하는 데 있어 리얼리티의 라인을 어떻게 설정할지 매우 어려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태양’은 등장인물들과 배경에 대한 묘사를 구현하는 방식에 관한 고민이 필요한 연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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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태양'에서 배우들이 열연을 펼치고 있다. (재)국립정동극장 제공 |
연극은 내내 서사의 굴곡을 전달하는 데 집중하지 않는다. 무대 위를 오가는 사람들이 어떤 존재인지 관객의 마음에 새겨넣고자 한다. 누군가는 녹스로 살아가길 포기하고 태양을 눈에 담으려고 한다. 누군가는 녹스가 되기 위한 묘수를 찾아내고자 한다. 또 누군가는 날 때부터 이성과 논리로 무장한 녹스였기에 빈틈이 보이고 불완전해 보여도 감수성과 낭만으로 가득한 큐리오의 삶을 꿈꾼다. 이처럼 다양한 부류의 인간이 제작기 다른 생각과 신념을 무대 위에서 펼쳐 놓는 과정에 집중하기 때문에, 관객들은 자연스레 이야기에 집중하는 대신, 배우들의 언행 자체에 몰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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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태양'에서 배우들이 열연을 펼치고 있다. (재)국립정동극장 제공 |
그는 극을 관통하는 주제, 결말 부분의 묘사에 있어 2년 전 초연 때와 다르게 접근했다. 당시엔 두 부류의 화합 가능성을 논했지만,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그는 특히 2021년의 ‘태양’을 다시 무대에 확장해 올린 데 대해 “코로나19의 혼란 속에서 시작됐던 ‘태양’은 우리 사회에서 발견되는 틈을 온기로 채워넣으려는 작업이었다”면서 “하지만 2년 뒤, 예측 가능한 공포는 사회를 양분했고 인간의 부정적인 측면을 폭로하는 매개체가 됐다. 그래서 분열과 갈라짐으로 신음하는 인류의 모습을 그대로 조망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연극은 26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