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플라자] 노가다 바라건대… ‘대기업 기술교육원’ 민간 개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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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4.02. 오후 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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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경기도 시흥시에 위치한 한 중소기업에서 용접을 하고 있는 노동자./뉴스1

본업이 현장직이었던지라 같은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수기를 간간이 보곤 한다. 최근 접한 책은 도배사 배윤슬 작가의 ‘청년 도배사 이야기’와 목수 송주홍 작가의 ‘노가다 가라사대’였다. 두 작가는 건설 노동자란 대분류만 공유할 뿐, 성별이며 나이부터 삶의 궤적까지 모두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 서사가 있다. 둘 다 초짜부터 시작해 한 사람의 직업인으로 거듭나는 세월을 거쳤다. 그리고 그 고난의 시간은 ‘시다’ 시절보다 훨씬 상승한 임금으로 돌아왔다. 배윤슬 작가는 2년 전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일당 8만원으로 시작해 2년 동안 “두 배 언저리쯤 올랐다”고 밝혔고, 송주홍 작가 또한 ‘노가다 가라사대’에서 ‘노가다 3년 차 연봉’이라며 약 4200만원의 실수령 소득을 인증했다. 두 작가 모두 어엿한 ‘숙련 노동자’가 된 셈이다.

나라가 휘청일 대규모 불황이 닥치지 않는 한 어느 현장이나 숙련 노동자는 부족하다. 특히 현재 조선업 같은 경우엔 정말이지 ‘없어서 난리’다. 문제는 이 숙련 노동자가 늘어나는 요인엔 개인 노력보다 환경이 훨씬 중요하다는 점에 있다. 인터넷 은어로 ‘노가다 수저’라는 말이 있다. 부모가 경력 20년 이상의 숙련 노동자라 기술 습득이 훨씬 수월한 이를 뜻한다. 빠르게 숙련을 쌓으려면 상사인 ‘사수’를 잘 만나야 하고, 실전 기회도 많이 주어져야 한다. 이 기회 여부에 따라서 누구는 몇 년 만에 ‘빠꼼이’가 되고 누구는 계속 ‘시다’로 남게 된다.

이토록 격차가 벌어지는 이유는 기술 전수 경로가 오로지 현장에서 도제식으로 알음알음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사수빨’이 절대적인 현장은 효율적인 숙련 노동자 양성이 불가능하다. 더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많은 중도 탈락자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숙련이 필요한 업종에서 고용주는 비숙련 노동자를 꺼린다. 초짜일 땐 제대로 일을 못 할뿐더러 기껏 키워놓으면 다른 곳 가버릴까 전전긍긍한다. 반면 비숙련 노동자는 일은 힘든데 숙련이 쌓여도 임금 오를 기미가 안 보이니 회사를 나가버린다.

이러한 이해관계 비대칭은 국가가 나서서 어느 정도 보정해 줄 수 있다. 도제식 교육에만 의존하지 말고 직업교육을 강화하면 된다. 안타깝게도 현재 대한민국의 직업교육 현실은 암담하다. 대부분 자격증 위주 과정이고 정작 실전엔 별 도움이 안 된다. 취업까진 책임질 테니 나머진 회사 가서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이렇다 보니 실무자는 직업교육을 외면하고 자격증 필요한 학생들이나 구직자들만 몰려들기 일쑤다. 숙련 노동자 양성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 없다.

그럼 숙련 노동자 양성을 위해 정부가 무슨 방법을 써볼 수 있을까? 먼저 대기업의 기술교육원을 민간 전체 대상으로 개방하는 방법이 있다. 제조업 대기업들은 자체 기술교육원을 운영한다. 시설도 좋고 교육 수준 또한 훌륭하지만 정작 활용에 소극적이다. 기껏해야 신입 몇 달 가르쳐서 하청업체 입사시키는 정도로만 쓰인다. 소 잡는 칼로 닭 모가지만 치는 격이다. 이 기술교육원을 보다 많은 노동자의 직업훈련소로 쓴다면 숙련 노동자 양성이 한층 수월해질 것이다. 기업과 협상이 어렵다면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폴리텍대학에 주말 실무자 교육 과정을 추가하는 방법도 있다. 이 외에도 머리를 맞대보면 더 많은 해결책이 나올 것이다. 안 그래도 요즘 윤석열 정부가 노동 개혁안을 내는 족족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노동시간이나 실업급여 같은 큼직큼직한 의제 말고 이런 작은 문제부터 돌아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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