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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속의 범죄자들.21.허술한 정부의 민낯, 국민방위군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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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9. 오전 10:20
by 인문학 콘텐츠 연구소

21.허술한 정부의 민낯, 국민방위군 사건

지금도 나라돈을 우습게 여기고 횡령하거나 마음대로 쓰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러니 대한민국 건국 초기에 국고는 그야말로 정부단체들의 쌈짓돈이나 다름이 없었다. 오늘 이야기할 '국민방위군 사건'을 살펴보자면 당시 정부가 얼마나 허술하고 방만하게 국정을 운영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지난 '보도연맹학살사건(https://naver.me/Gu0DiHAf

)'에 이어 다시 대한민국이 탄생할 당시 이승만 정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1949년 이승만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분산되어 있던 청년 단체들을 통합하여 '대한청년단'을 조직한다. 이 대한청년단의 총재는 이승만 자신이었으며, 장택상, 지청천, 전진환, 신성모, 노태준 등 이승만의 측근들이 최고위원 자리에 앉았다. 이 대한청년단은 정부의 적극적 지원 아래 200만 단원을 모집하는 성과를 거두지만, 애초에 목적이 이권 단체였기에 계파 갈등과 지분 싸움 등으로 분열되자 최고위원회를 대신해 단장제로 변경하게 된다. 1대 단장은 신성모였고, 2대는 안호상, 3대는 김윤근이 임명되었다.

국민방위군의 전신인 대한청년단 결성식(전라남도 지부)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

1950년 6.25 전쟁이 벌어지며 밀리던 국군이 겨우 전선의 안정화를 찾아갈 때 쯤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다시 전선은 열세를 맞이하게 된다. 이승만은 최후 결전을 위해 국민총동원을 발표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자진 입대 러시를 이루게 되는데, 미군정은 새로운 부대를 만드는 것보다 기존 부대를 확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충고한다. 이승만 정부는 중공군과 맞서 싸우려면 우선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독자적인 '국민방위군'을 설치하는데, 이들은 만 17세 이상 40세 미만의 제2국민병이 된다.

1950년 12월 21일, '국민방위군 설치법'이 공표되고 모집을 시작하자 국민방위군은 삽시간에 50만 명을 넘어서게 된다. 정부는 이들을 경북 일대에 51개의 교육대를 만들어 수용하였는데, 간부들은 대부분이 '대한청년단' 출신으로 구성되었다. 정부는 이들의 수장을 당시 '대한청년단' 단장이었던 김윤근을 추대하는데, 김윤근은 갑자기 준장에 임명되며 국민방위군 사령관이 되었고, 대한청년단 간부들을 자신의 참모진으로 꾸리게 된다.

국민방위군 주요 간부들. 앞줄 왼쪽부터 윤익헌 부사령관, 박경구 참모장, 김윤근 사령관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