밉지 않은 욕심쟁이… 마흔 앞둔 최여진, 스무살 때보다 아름다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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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12.10. 오전 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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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운동하는 女子’ 상징 된
이대녀의 롤모델 최여진

지난달 12일 서울 송파구 FB시어터. 사진 촬영을 위해 무대에 올라가자 끼가 폭발한다. 어릴 때부터 무대에 서는 직업을 갖고 싶었으나, 노래를 못해 포기했었다는 배우 최여진은 퍼포먼스 공연 ‘푸에르자 부르타 웨이라 인 서울’로 꿈을 이뤘다고 했다. /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바이라 세 야, 바이라 세 야!”

지난달 12일 서울 송파구 FB시어터. 신나는 북소리와 함께 공연이 시작되자, 하늘에서 꽃가루와 함께 배우들이 등장해 날아다닌다. 와이어에 매달린 배우들은 관객과 닿으려 아슬아슬하게 손을 뻗는다. 무대와 객석 경계도 없고, 벽과 천장 구분도 없다. 모든 공간을 무대로 활용하는 이 공연은 ‘푸에르자 부르타’, 현지어로 ‘잔혹한 힘’이란 뜻이다. 인간의 본성, 그 어딘가에서 나오는 맹목적 힘을 동작으로 표현하고, 배우와 관객은 70분간 몸과 감정의 느낌을 주고받는다. 미국 팝스타 마돈나와 비욘세가 공연에 출연하기도 했다. 2003년 아르헨티나에서 시작해 전 세계 36국에서 650만명이 본 이 공연은 특유의 중독성으로 ‘N차(여러 회) 관람 열풍’을 일으켰다.

지난 9월부터는 한국에서 공연 중이다. 하늘을 나는 배우 중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배우 최여진(39)이다. 2018년, 2019년에 이어 올해로 세 번째 내한 공연 게스트를 맡았다. 미국 공연 당시 마돈나와 비욘세가 한 역할이다. 최여진을 보려고 온 팬들이 공연 중 그의 이름을 환호한다. 데뷔 21년 만에 드라마는 물론 연애·춤·축구·골프 예능, 해녀 체험 방송까지 전방위로 종횡무진하며 20대 여성들의 “욕심 많은” 롤모델로 떠오른 최여진을 만났다.

디자이너 케이킴이 제작한 한복 스타일의 무대 의상을 입고 크레인에 매달려 공연하고 있는 배우 최여진. /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밉지 않은 욕심

-이 유명한 공연에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제안이 들어와 먼저 영상으로 봤는데 너무 충격적이었다. 이렇게 시공간을 뛰어넘는 행위 예술이 있다니! 공간 활용도나 관객과 함께하는 연출도 신선했다. 비욘세, 마돈나가 했다는 역할을 내게 제안한 것도 영광이라 무조건 하겠다고 했다.”

푸에르자 부르타는 ‘퍼포먼스 공연’이다. 최여진은 꽃가루 사이로 날아다니는 ‘보요’ 장면 외, 공중에서 내려온 커다란 수조에서 헤엄치며 연기하는 ‘마일라’, 크레인에 매달려 춤을 추며 공중을 도는 ‘더 크레인’ 장면 등을 연기한다. 그냥 봐도 아찔하다.

-연습량이 상당했을 것 같은데.

“의외로 없었다. 이 공연은 대부분이 애드립이다. 몸을 쓸 줄 알고, 춤을 출 줄 아는 배우들이 당시 분위기와 음악, 열기에 맞춰 선보이는 즉흥 공연이다. 공연 전 회의를 통해 어느 정도 배우들끼리 분위기를 맞추지만, 그 안에서 표현하는 행위는 자유다. 그렇다 보니 매일 새롭고 다른 느낌일 수밖에 없다. 배우 역할도 매번 바뀐다. N차 관람이 이어지는 건 이 때문이다.”

-왜 많은 춤꾼을 두고 최여진에게 제안했을까.

“배우로서 표현력과 춤과 운동으로 단련된 몸을 쓸 줄 알아서 그런 것 같다. 매번 내가 욕심을 부려 출연 장면을 늘려간다. 특히 와이어에 매달려 춤을 추는 ‘보요’ 장면은 부상 위험도 있고, 기술도 있어야 한다고 해서 처음엔 안 시켜줬다. 그런데 내가 너무 하고 싶었다. 공연 없는 날에도 나와서 연습에 참여했다. 그 결과 올해부터는 ‘보요’에도 출연하고 있다.”

-욕심 많다는 이미지가 요즘 각종 예능에서 최여진을 찾고, 20대 여성들의 롤모델로 떠오르게 된 배경 같다.

“원래 난 남자들보다 여자들에게 인기가 더 많았다.(웃음) 사실 난 20대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런데 욕심 많고 노력하는 내 모습이 과거에는 좀 깍쟁이 같은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그런 적극성이 빛을 발하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욕심을 드러내는데 왜 미워 보이지 않을까.

“종이 한 장 차이인 것 같다. 보기 좋은 욕심은 무언가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투자하고, 좌절하면서도 올라가는 것이다. 미워 보이는 욕심은 내가 올라가기 위해 누군가를 질투하고 깎아내리는 것이다.”

-원래 꿈은 뭐였나.

“어릴 땐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경제적 형편이나, 피지컬(신체)에서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꿈을 접었다. 그러다 배우가 됐다. 원래는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었는데 내가 노래가 안되더라.”

-데뷔작 ‘미안하다, 사랑한다’부터 히트작이 됐다.

“나한테는 이름 석 자를 알리게 해준 고마운 작품이다. 배우 일은 참 재미있는데, 내 고정된 이미지 탓인지 주어지는 역할이 제한적이었다. 도시적이고, 누구 괴롭히고, 남자 뺏고, 바람피우고…(웃음).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게 훨씬 더 많은데, 그저 아쉬울 뿐이다.”

-어떤 역할이 하고 싶었나?

“가난하지만 가족애 넘치고 명랑한 캔디 같은 역할! 그랬더니 대표님이 그러더라. ‘네가 그런 역할을 한다면, 네 상대역이 될 부잣집 딸 역은 너보다 더 이미지 센 사람이 맡아야 할 텐데, 누가 있을까?’ 그 말에 ‘아, 없네’라며 포기했다(웃음).”

-캔디 같은 역할을 얻기 위해 성형 수술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게 내 개성이니 고치면 그냥 끝인 것 같아서. 그래서 남들이 내게 원하는 역할에서 최고가 되고 싶었다. 더 화려하고, 트렌디하고, 걸크러시하게!”

악착같던 20대

-부잣집에서 풍요롭게 자란 이미지다.

“전혀! 내가 아기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엄마 혼자 나와 오빠를 키웠다. 당시만 해도 이혼 가정이 흔치 않았다. 친구들에게 ‘아빠는 해외 출장 중’이라며 거짓말하기도 했다. 경제적으로도 힘들어 엄마가 자식 둘을 데리고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캐나다에서 엄마는 정말 열심히 일해 조그만 가게를 샀는데, 영어를 잘 못 해 사기를 당했다. 그때부터 온 가족이 트레일러에서 살았다. 집에 가구도 없고, 침대도 없고. 난 친구도 없어서 텅 빈 트레일러에서 혼자 한국 비디오를 빌려 보며 지냈다. 그때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을 보며 배우 꿈을 키웠다.”

-첫 경력은 2001년 슈퍼모델 선발 대회다.

“내가 중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해 가족 생활비를 보탰다. 한번은 친구 아버지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그 사장님이 슈퍼모델 대회 예선이 캐나다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예선을 통과하고, 미주 본선 대회에서는 3등을 했는데, 정작 한국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떨어졌다.”

-본선에선 입상하지 못한 건가?

“그때가 한예슬, 한지혜, 공현주, 소이현 등 전설의 기수 시절이다. 지금 활발하게 활동하는 참가자 중 나만 비(非)수상자다. 그때 입상하면 모델뿐 아니라 SBS에서 배우로도 활동할 수 있었다. 떨어진 뒤 캐나다로 돌아갈 때 정말 절망스러웠지만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고 생각했다. 그 일이 모델이었다. 캐나다 다운타운 식당에서 한 달 반 동안 서빙하며 딱 100만원을 모아 한국행 티켓을 샀다. 열여덟 살, 그렇게 한국에 돌아왔다.”

-앳된 나이에 혼자 사는 삶이 두렵지 않았나?

“그때 난 독했고, 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당시가 패션계 부흥기였다. 국내외 패션지가 쏟아졌고, 쇼도 많았다. 그때 패션계는 키가 크고 볼에 살이 없는 샤프한 이미지를 선호했다. 그런데 난 키가 175cm로 상대적으로 작았고, 젖살이 덜 빠져 얼굴도 동글동글했다. 그래서 두 달 반 동안 이틀에 한 끼 먹고 8kg를 뺐다. 모델 피팅 옷을 입으면 다 흘러내릴 정도였다. 원래 마른 몸이었는데, 굶어서 8kg를 뺐으니 빈혈이 오고 난리가 났다. 그래도 그때부터 모델로 잘나갔다. 그때 너무 고생해 그 이후로는 다이어트를 안 한다.”

-그렇게 돈을 벌어 뭘 하고 싶었나.

“엄마에게 집을 사드리고 싶었다. 집 없이 떠돌아다닌 시절이 많아, 악착같이 돈을 모아 대출도 안 끼고 현금으로 집을 샀다. 원래 모델들은 몸값 높아지면 퀄리티 낮은 쇼는 안 한다. 그런데 나는 닥치는 대로 했다. 모델 시절이나 배우 때도 쉬어본 적이 거의 없다.”

더 아름다울 40대

-일만 한 20대가 후회되지는 않나?

“아니, 난 지금도 놀고 있는 20대를 보면 말한다. ‘지금 돈 벌고, 나중에 멋지게 놀라’고. 20대는 성공을 위해 밑거름을 쌓아야 하는 시기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돈이 많아야 함께 일하는 동생들 밥도 사주고, 가족에게도 든든한 힘이 돼주지 않겠나. 능력이 있어야 어딜 가도 떳떳하고 웃음도 나고 자신감도 생긴다.”

-번 아웃(탈진)이 온 적은 없나?

“서른 넘어서인가, 한 번 왔다. 그때 엄마가 그러더라. ‘이제 엄마 걱정 말고 네 삶을 살라’고. 그때부터 골프, 수상스키 등 자연에서 하는 운동을 시작했다.”

-그 덕에 요즘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부터 ‘댄싱 위드 더 스타’까지 ‘운동하는 여자’의 상징이 됐다.

“운동을 시작하면서 굶는 다이어트를 안 한다. 예능을 하면서는 발레리나 등 내가 배우 때 못 해본 것을 다 해볼 수 있어 좋았다.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내년이면 마흔이다.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20대는 다 예쁘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내가 적립해놓은 삶의 가치가 발현된다. 꾸준히 운동하고, 관리하고, 그런 것들이 내 삶에 녹아들어 있기 때문에, 난 오히려 지금이 옛날보다 훨씬 더 예뻐 보인다는 말을 듣는다.”

-비혼 예능도 찍었던데.

“그건 예능이니까, 하하! 나 같은 사람 만나면 결혼하고 싶다. 열정적으로 살고,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이상한 짓 안 하고, 멋있게 즐길 줄 아는. 그리고 개그 코드가 잘 맞아 즐겁게 살 수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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