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글서글하고 쾌활, 살인은 상상도 못해”
“동거녀를 와이프라고 소개, 사이 좋아 보였다
왜 안보이냐 물으니 장모님 간호한다더라
살해후 시신 파묻어놓고도 태연… 소름”
이수정 교수 “사이코패스 가능성, 안잡혔으면 더 죽였을 것”
“서글서글하고 인상도 좋은 사람이었는데, 강호순같은 살인마였을 줄이야…”
27일 경기도 파주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주민 A씨는 기자에게 이른바 ‘택시기사 옷장 시신’ 사건의 피의자 이모(32)씨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A씨는 “그렇게 착하고 밝던 사람이 2명이나 살해한 혐의를 받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며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A씨와 이씨는 각자의 반려견을 함께 산책시키며 평소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이씨는 지난 20일 음주운전 접촉사고 합의금을 주겠다며 택시기사를 집으로 유인한 뒤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택시기사 시신은 “남자친구 아파트 옷장 안에 죽은 사람이 있다”는 여자친구의 신고로 발견됐다. 이씨는 전 여자친구이자 집주인이었던 50대 여성도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이씨는 이날 “지난 8월 전 여자친구를 살해했으며, 시신을 파주시 천변에 유기했다”고 자백했다.
A씨는 이씨에 관해 “키는 175㎝ 이상이었고, 항상 웃으며 쾌활한 모습을 보였다”고 기억했다. 그러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게 다 거짓말이었다“며 연쇄살인범 강호순을 떠올리기도 했다. 강호순은 자동차 안쪽에 시베리안 허스키와 나란히 찍은 자신의 사진을 붙여 놓았고, 호감형 외모와 친근한 말투로 여성들의 경계를 푼 후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A씨에 따르면 이씨는 전 여자친구를 ‘와이프’로 소개했는데, 그는 4~5달 전부터 보이지 않았다. 이씨가 “8월 초 전 여자친구를 아파트 집 안에서 살해했다”고 진술한 것과 정황이 들어맞는다. 그럼에도 이씨는 “장모님이 치매에 걸려서 와이프가 간호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A씨는 “지금 생각하면 여자친구를 살해한 뒤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거짓말한 거다. 소름 돋는다”고 했다.
이씨는 또 이웃 주민들에게 자신을 ‘자전거 매장을 여러 개 운영하는 사장’이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A씨는 “이씨에게 따로 직장이 있는 것 같지 않았는데, 자전거 매장을 여러 개 운영한다고 하더라. 본인은 출근을 하지 않고 점장을 두고 매장을 운영한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씨가 살해한 전 여자친구의 신용카드로 거액을 대출받은 정황이 드러났다. 이씨가 거주하던 전 여자친구 소유의 아파트에는 3개 카드사에서 1억원 상당의 가압류가 설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A씨는 이씨와 전 여자친구가 항상 붙어 다녀 금실 좋은 부부처럼 보였다고 했다. 그는 “둘이 커플 아이템도 많이 하고, 매일 같이 운동 다니고, 자전거 및 캠핑 여행을 즐겼다. 여자친구는 조용조용한 성격이었고, 이씨는 말도 많이 하고 자신감 넘치는 스타일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최근에 젊은 여자랑 같이 다니는 걸 자주 목격해서 속으로 ‘바람피우는구나’ 생각했다”고 했다.
단지 내 경비원들도 이씨를 ‘웃는 얼굴로 대형견을 산책시키던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한 경비원은 “매번 진돗개처럼 생긴 개를 산책시키고 다녔다. 결코 누군가를 살해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또 다른 경비원은 “살해범이 이토록 평범하게 생길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했다.
이와 관련,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28일 조선닷컴에 “사이코패스 성향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했다. 다만 음주운전을 제외하고 비슷한 범죄로 전과가 없는 점을 들어 ‘사이코패스 검사’로 불리는 PCL-R 검사에서 충족 기준 25점은 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체크리스트는 총 20개 항목으로 구성되며, 만점은 40점이다. 이 교수는 “이씨는 약 20점 정도 나올 것 같다”며 “범죄 전과가 없는 일반인 대상으로 검사했을 때 평균적으로 5점 미만이 나온다는 점을 고려하면 굉장히 높은 수치”라고 했다.
이 교수는 “누가 옷장에 시신을 둔 채 여자친구를 집으로 부르느냐”며 “현재까지 드러난 행각을 보면 이씨는 굉장히 위험한 사람으로 보인다. 추가 피해자 여부를 철저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만일 이번에 걸리지 않았다면, 추가 살인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이씨가 거주하던 아파트 단지는 고요했다. 주민들은 아파트 앞에 세워져 있는 경찰 과학수사대 차량과 취재진 모습을 보고 의아해하기는 했지만, 동요하는 분위기는 없었다. 이씨와 같은 아파트에 살던 한 노인은 사건 소식을 듣고 “주민끼리 왕래가 크게 없어 사건이 일어난지도 몰랐다. 동네 자체가 되게 조용하다”며 “집 값 떨어질까 무섭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