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세계 최초로 '낙태권' 헌법 명시…"마이 보디 마이 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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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3.05. 오전 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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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상·하원 16년만에 합동회의 소집… 찬성 780표·반대 72로 개헌안 가결
마크롱 "보편적 메시지에 자부심"…교황청 "생명 빼앗을 권리 없다" 격양
4일(현지시간) 프랑스 상·하원이 낙태 자유 보장을 담은 헌법 개헌안을 가결하자 파리 에펠탑에 '마이 보디 마이 초이스(my body my choice·내 몸이니 내가 선택한다)'는 슬로건에 불이 들어왔다. 2024.3.4. ⓒ AFP=뉴스1 ⓒ News1 김성식 기자


(서울=뉴스1) 김성식 김예슬 기자 = 프랑스가 세계 최초로 낙태(임신중절)권을 헌법에 명시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는 개헌 이후 '마이 보디 마이 초이스(my body my choice·내 몸이니 내가 선택한다)'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낙태를 죄악시 해온 가톨릭계는 거세게 반발했다.

로이터·AFP 통신에 따르면 4일(현지시간) 프랑스 상·하원은 이날 파리 외곽 베르사유 궁전에서 특별 합동회의를 열고 '낙태 자유 보장'을 담은 헌법 개정안을 찬성 780표 반대 72표로 가결했다. 양원 합동회의는 극히 중대한 경우에 소집되는데, 이날 16년 만에 열렸다.

이로써 프랑스 헌법 제34조에는 '여성이 낙태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는 조건은 법률이 결정한다'는 조항이 추가됐다.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이 찬성하면 헌법이 개정되는데, 관련 개헌안이 지난 1월과 지난달 28일 각각 하원과 상원을 통과한 바 있어 이날 개헌은 예상된 수순이었다.

개헌안 가결 소식에 의원들은 기립 박수로 찬사를 보냈다. 마크롱 대통령은 세계 최초로 낙태권을 헌법에 못 박은 이번 조치가 전 세계에 "보편적 메시지를 보내는 프랑스의 자부심"이라며 오는 8일 세계 여성의 날에 이번 개헌을 기념하는 특별 공개 행사를 열겠다고 밝혔다. 비슷한 시각 에펠탑에선 '마이 보디 마이 초이스'란 슬로건에 불이 들어왔다.

표결에 앞서 연설을 진행한 가브리엘 아탈 총리는 "우린 모든 여성에게 당신의 몸은 당신의 것이니 아무도 결정을 대신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며 의원들을 상대로 찬성표를 행사할 것을 호소했다. 이어 낙태가 합법화되기 전 고통을 겪었던 모든 여성들에 대해 국가 도덕적 채무를 지고 있으며 전세계적으로 낙태권이 침해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상·하원 의원들이 4일(현지시간) 파리 인근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린 특별 함동회의에서 낙태 자유 보장을 담은 헌법 개헌안이 가결되자 기립 박수를 보내고 있다. 헌법에 낙태권이 명시된 건 세계 최초다. 2024.3.4. ⓒ 로이터=뉴스1 ⓒ News1 김성식 기자


지난해 마크롱 대통령은 낙태권을 헌법에 명시하겠다고 공언했다. 여론도 긍정적이었다. 프랑스 여론조사 단체 IFOP의 2022년 11월 조사에선 프랑스 국민의 86%가 낙태권을 헌법에 포함하는 데 지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프랑스에선 1975년부터 낙태가 합법화돼 이번 개헌으로 실질적인 변화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극우진영의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하원의원은 낙태권에 대한 국민 여론에 힘입어 마크롱 대통령이 정치적 점수를 얻으려 한다고 비판했다. 르펜 의원은 이날 투표를 앞두고 기자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에 찬성표를 행사하겠다"면서도 "프랑스에선 낙태권이 위협을 받지 않기 때문에 이를 역사적인 조치라고 부르는 건 과장"이라고 말했다.

일부 우파 의원들은 낙태에 대한 국민 여론이 워낙 긍정적인 탓에 찬성 압박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공화당 소속 제라드 라흐쉐 상원의장은 지난 1월 프랑스앵포와의 인터뷰에서 "낙태권 자체는 지지하지만 프랑스에서 낙태권이 위협을 받지는 않는다"며 "헌법에 모든 사회적 권리를 나열할 수 없는 만큼 이번 개헌을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2022년 6월 낙태권을 인정한 기존 판결을 50년 만에 뒤집은 가운데 프랑스가 세계 최초로 낙태권을 헌법에 적시하자 세계 여성계는 이를 높이 평가했다. 클라우딘 몬테일 세계여성(Femmes Monde)협회 대표는 이날 AFP에 "1971년 관련 운동을 벌인 이래 언젠가 낙태권이 헌법에 명시될 거라곤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고 소회를 털어놓았다.

반면 보수 가톨릭계는 격양된 입장을 내놓았다. 교황청은 프랑스 의회의 '낙태권 개헌' 투표 직전 성명을 통해 "보편적 인권의 시대에 생명을 빼앗을 권리는 없다"며 "모든 정부와 모든 종교 전통이 생명 보호가 절대적인 우선순위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파스칼 모리니에르 가톨릭 가족협회 대표는 여성과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의 패배라고 주장했다. 프랑스 가톨릭 주교들은 이날 하루 생명을 기리는 금식 기도를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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