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아는 왜 몸에 악마를 가뒀나…제작자가 풀어준 '검은 수녀들'[엔딩크레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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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5.02.12. 오전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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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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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제작사 영화사 집의 오효진 제작이사
제작자에게 듣는 영화 '검은 수녀들' 탄생기 <하>
왜 유니아는 자기 몸에 악마를 가두고 자신을 불태워야 했을까
영화 '검은 수녀들' 스틸컷. NEW 제공

영화 상영이 끝난 후 올라가는 엔딩크레딧에는 한 편의 영화를 관객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참여한 여러 사람의 이름이 담겨 있습니다. '엔딩크레딧'에서는 영화가 스크린에 걸리기까지 달려온 다양한 영화인들과 영화에 숨겨진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 스포일러 주의
 
악마 들린 부마자와 가톨릭 사제가 등장하는 오컬트 영화에서 하이라이트가 되는 장면 중 하나는 구마 의식이다. 저주 어린 말들을 쏟아내며 기괴한 행동을 하는 부마자를 향해 사제는 성수 등 각종 성물을 이용하고 기도문을 외우며 묻는다.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구마 의식에 굴복한 악마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면, 사제는 이름을 통해 악마를 부마자의 몸에서 몰아내고 구마 의식을 완성한다.
 
오컬트 드라마 '검은 수녀들' 역시 구마 의식이 등장한다. 그러나 주체자가 다르다. 그동안 영화에서 봐왔던 사제가 아닌 '서품도 받지 못한' 수녀가 의식을 진행한다. 거기다 전작인 '검은 사제들'이 돼지의 몸에 악마를 가두고 물로 뛰어들어 구마했다면, 이번에는 수녀가 직접 자신의 몸에 악마를 가두고 불길에 몸을 던진다.
 
'검은 수녀들'을 둘러싼 치열하고 첨예한 논쟁이 생겨난 건 바로 이 구마 의식의 완성이다. 유니아 수녀가 왜 하필 자기 몸, 정확히는 자궁에 악마를 가둬야 했는지에 대해 많은 관객이 물음표를 던졌다. 일각에서는 불편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영화의 제작과 각색을 맡은 제작사 영화사 집의 오효진 제작이사는 유니아의 구마에 담긴 진짜 메시지는 '전복'이었다고 설명했다. 그가 말한 '전복'이란 단어에는 어떤 의미가 숨어있을까. 그리고 '검은 수녀들' 속 여러 상징적인 요소에는 어떤 이야기를 담았던 걸까.
 

영화 '검은 수녀들' 스틸컷. NEW 제공
 

유니아는 왜 '유니아'가 됐을까

 
▷ 등장인물인 유니아, 미카엘라, 바오로 이름에는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최초의 여성 사도로 불린 '유니아', 3대 천사(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중 하나이자 사탄을 물리친 전사 미카엘의 여성화된 이름인 '미카엘라',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다가 회심하고 개종한 '바오로'. 세 사람의 이름에 담긴 의미가 영화 속 캐릭터의 행보와 닮았다.
 
각 인물의 이름에 담긴 의미를 반영한 건 맞다. 맨 처음 박수민 작가(원안)와 정한 이름이다. 처음엔 너무 거창한 거 아닌가 싶었는데, 곱씹어 볼수록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맞았다. 기획 초반부터 끝까지 몇 년 동안 바뀌지 않았던 건 그 이름들이다. 세례명은은 다 각자의 의미를 담아서 선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유니아라면 그런 세례명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 유니아가 구마 의식에서 사용하는 '베드로의 열쇠'도 재밌는 요소였다. 베드로 역시 원래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다가 회심해 사도가 된 인물이다. 유니아가 이러한 열쇠를 역시나 박해하다 회심해 사도가 된 이의 이름을 가진 바오로에게 받고, 그 열쇠를 통해 악마를 물리친다는 것 역시 눈여겨볼 지점이었다. 극 중 바오로는 초반에는 부마자를 부정하고, 유니아를 비난하다가 나중에는 유니아에게 구마 의식의 전권을 넘긴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 있었다.
 
영화 속 바오로는 유니아에게 열쇠를 건네줌으로써 그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 행위 자체도 사실 종교적인 의미나 가톨릭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다면, 그냥 축복만 내리고 가는 행위 정도로 보인다. 그래서 바오로가 아무것도 안 했다고 생각했을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
 
바오로가 유니아에게 열쇠를 건네며 구마를 맡긴 것도 다른 사제가 알게 된다면 본인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결정이다. 나는 그게 바오로가 종교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간 행동이라 본다. 남성인 사제가 단순히 능력 있고, 부마자를 구하겠다는 마음이 충실한 여성 수녀에게 성사만 내리는 게 아니다. 이 과정에서 무언가 매개체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성물들 가운데 무엇을 매개체로 할지 고민하다가 베드로의 열쇠가 있는 타로 카드에서 힌트를 얻었다. 가장 종교적인 색채의 그림으로 복각된 타로 종류인데, 그런 걸 연결하면 상징적으로 의미도 있고 재미가 있을 거라고 봤다.

영화 '검은 수녀들' 스틸컷. NEW 제공
 

수녀를 향한 악마의 공격, 역으로 공격한 유니아


▷ 악마가 유니아와 미카엘라, 특히 유니아를 향해 쏟아내는 말들은 여성들이 듣기에 여러 가지로 불쾌함과 혐오를 느끼게 하는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언어가 많다. 물론 유니아는 그 모든 말에도 쿨하게 무시하며 반응조차 하지 않는다. 타격감이 없는 거다. 너는 떠들어라, 난 내 할 일 한다는 태도다.

그리고 악마가 말하는 내용들을 살펴보면 가톨릭이라는 종교와 연관해서 생각할 할 때, '해방의 기도' 내용과도 관련이 있고 악마가 싫어하는 존재인 성모마리아와도 연결된다. 이러한 것들을 고려했다고 해도, 언어의 수위를 놓고 고민되는 지점이 있었을 것 같다.
 
실제 과거의 구마 사례나 녹취 등을 되게 많이 찾아봤다. 자료를 보면 악마가 신앙심 가득한 여자들을 창녀의 이미지에 빗댄다든지 성모 마리아에게 빗대어서 성적으로 모욕적인 말을 많이 한다. 이러한 사실에 기반해서 한 거지 다른 의도가 있었던 건 전혀 아니다.
 
악마로서는 사제가 아닌 서품도 받지 못한 수녀가 구마를 하러 왔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자기 딴에는 유니아의 신념을 무너뜨리는 공격을 한다고 생각했을 텐데, 유니아는 고작 그런 말밖에 못 하냐며 전혀 타격받지 않는다. 그런 유니아의 모습이 중요했다. 신념을 무너뜨리고자 했지만 이에 영향받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여성 캐릭터에 방점이 있었다.
 
▷ 유니아가 악마를 향해 하는 기도 역시 이런 부분이 반영된 건가?
 
초반에 부마자인 희준의 엄마가 투신한 병원 옥상을 올려다볼 때 유니아가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니, 더러운 영아 당장 떠나거라"라고 한다. 같은 기도를 유니아가 몸속에 악마를 품고 미카엘라와 애동을 떠나보낸 뒤 돌아서서 다짐할 때 한 번 더 한다.
 
그런데 이때 기도는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모마리아의 이름으로 명하니, 더러운 영아 당장 떠나거라"이다. 사실 '성모마리아의 이름으로'라고 하는 건 가톨릭 교리에는 맞지 않는 건데, '인간 유니아'로서 내내 그를 향해 마리아에게 빗대어 모욕한 악마에서 자신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대답해 주듯이 하는 일종의 '선언'이다. 그렇기에 처음 기도와 마지막 기도가 다른 것이다.

영화 '검은 수녀들' 비하인드 스틸컷. NEW 제공
 
▷ 유니아의 건강 상태와 해방의 기도 내용, 성경 속 여러 이야기와 영화에 등장하는 삼신과 삼신의 상징 목화꽃의 의미 등에 비춰 본다면 유니아가 자기 몸에 악마를 가둬 구마하는 방식은 유니아다운 선택이자, 종교적으로는 상징적인 행태의 구마 방식일 수 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나를 가장 증오하는, 그리고 그렇게 욕했던 자궁에 악마를 가둬 죽이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종교적인 요소들과 목화꽃이 부마자와 유니아에게 다르게 반응했다는 점 등을 살펴봤을 때는, 생명의 상징 안에 죽음의 상징인 악마를 가둬 구마한다.

그러나 종교적인 측면에서 보는 것과 달리 이를 외부적인 시선에서 바라봤을 때는 충분히 아쉬움과 갑론을박이 일어날 수 있는 지점이다. 경계를 넘는 수녀인데, 결국 종교적인 한계 등에 갇혀있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유니아의 신념과 용기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구마를 보여주고자 하면서 신체, 그것도 자궁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우선 앞서 이야기했듯이, 악마가 마리아를 빗대어 여성을 공격하는 일은 실제 녹취 등을 많이 살린 부분이다. 그게 악마가 가진 시선을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또 악마를 잉태하는 방식은 고전 오컬트 영화에서 클리셰처럼 많이 등장한 방식이다. 그런데 고전 오컬트 속에서 여성은 악마의 부활이나 악마성을 이을 도구나 희생자로 활용됐던 것이 대부분이다. 유니아의 방식은 이를 전복하고 오히려 악마를 가둬서 죽이겠다는 역공격의 형태다.
 
개봉 이후 논란과 비판에 대해서는 알고 있고, 지금도 이에 대한 고민이 다 끝난 건 아니다.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봐야겠지만, 전복의 이미지 이전에 관객들에게 여성의 임신과 유산을 떠올리는 이미지가 먼저 와닿았다면 우리가 어떤 방식을 취해야 했을까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도 고민하고 있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기존 클리셰에 대한 전복과 종교적인 신념을 무너뜨리려는 악마에 대한 역공격, 그리고 이를 유니아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는 게 더 중요한 메시지였는 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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