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역 흉기난동범 “불상 집단이 나를 청부살인하려 해”

입력
수정2023.08.03. 오후 10:40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용의자는 20대 배달업 종사 최모씨
연령·성별 등 안 가리고 무차별 공격
“신난 듯 뛰어다녀”···마약 검사 ‘음성’
흉기를 든 용의자 모습. 독자 제공


경기 성남 분당구 서현역 일대에서 3일 오후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14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이 중 12명이 중상이다. 용의자는 20대 초반 남성인 최모씨(22)로, 불특정 다수를 노린 묻지마 범행으로 분석된다. 불과 2주 전 서울 관악구 신림역 인근에서도 무차별 흉기 난동 사건이 벌어졌던 만큼 ‘나도 당할지 모른다’는 시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후 5시55분쯤 분당구 AK플라자 인근에서 ‘불상의 남성이 서현역 AK프라자에서 사람들을 찔렀다’는 112신고가 접수됐다. 이 남성은 AK프라자 내로 들어서기 전 경차로 인도를 지나가던 시민들을 들이받았다. 이후 차량이 움직이지 않자 AK프라자로 들어가 흉기를 휘둘렀다.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이날 6시5분쯤 용의자인 최씨를 범행 현장 인근에서 체포했다. 현재 최씨의 단독 범행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최씨는 배달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범행 동기와 관련해서는 별다른 진술을 하지 않은 채 “불상의 집단이 나를 청부살인하려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렸다. 경찰은 “용의자가 피해망상 등을 주장한다”며 “마약간이 검사 결과 음성이지만 정확한 감정을 위해 모발을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흉기 난동으로 모두 14명이 다쳤다. 차량 충격으로 인한 피해자가 5명, 칼부림으로 인한 피해자가 9명이다. 부상자들은 분당제생병원, 차병원, 서울대병원 등으로 이송됐다.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에서 무차별 차량충격과 흉기난동 사건이 발생한 3일 경찰이 사건 현장을 통제하고 있다. 이 사건으로 14명이 부상을 입었다. 조태형 기자


이번 범행은 지난달 21일 신림역 사건에 이은 ‘묻지마 범행’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서현역 일대는 평소에도 유동인구가 많은 곳으로 약속 장소로도 익히 잘 알려져있던 곳이다. 용의자가 차량으로 돌진한 곳도 버스정류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범행을 저지른 시간또한 통상 직장인들이 퇴근을 시작할 무렵이었다.

피해자들의 면면을 보더라도 용의자는 연령대나 성별과 상관없이 닥치는대로 공격한 것으로 보인다. 차량 충격으로 부상을 당한 5명 중 여성이 3명, 남성이 1명이다. 1명은 병원으로 이송되지 않아 신원을 알 수 없다. 연령대도 20대와 60대가 각각 2명이다. 이들 중 60대의 한 여성은 심정지로 이송됐으나 다행히 의식을 찾았다.

최씨의 칼부림으로 다친 피해자 9명도 남성 4명, 여성 5명이었다. 연령별로는 20대 5명, 40대 1명, 50대 1명, 60대 1명, 70대 1명이다. 피해 부위는 배와 옆구리, 등, 팔꿈치 등 다양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범행 표적이 20~30대 남성이었던 신림동 사건과는 다른 점이라는 데에 주목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돌고있는 범행 영상에는 긴박했던 당시 상황이 고스란히 담겼다. 검은색 후드티를 입은 용의자는 검은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쓰고 범행을 저질렀다. 용의자는 흉기를 들고 한 여성의 뒤를 쫓다 여성이 방향을 틀자 다른 남성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최씨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범행을 하면서 서현역 일대는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AK프라자 9층에서 근무하는 차모씨(28)는 “오후 6시5분쯤 퇴근했던 직원 몇명이 황급히 도망쳐와서 사건을 알았다”며 “(용의자가) 1층부터 뛰어다니면서 사람을 찌르고 다녔다고 하더라. 그 광경을 보고 놀라서 도망쳐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AK프라자 1층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있던 문모씨(44)는 “범인 손에 은색 30㎝ 되는 흉기를 들고 있었다”며 “체격은 말랐지만 누워있는 남자를 몇 번 계속 다시 와서 찌르는 것도 봤다. 누가 보면 신난 것처럼 방방 뛰어다녀서 다른 젊은 사람들도 접근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AK프라자 1층 출구 앞 번화가에서 영업 중인 상인 유모씨(69)도 “원래 6시 예약 손님이 있었는데 ‘누가 칼에 찔리고 등에 피를 흘리고 있어서 못 간다. 사장님도 얼른 도망가라’는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인가 하던 참에 백화점에서 100여명이 소리 지르면서 도망나오더라”며 “이 동네가 조용한 곳인데 이런 일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분당 제생병원에서 만난 한 피해자의 친척 A씨(20대)는 “직계 가족이 먼 곳에 있어 급하게 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왔다”며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잘 모르겠다. 이제는 길을 걸어다니면서 칼에 찔리지는 않아야 하나 걱정하며 다녀야 하는 건가 싶다”고 말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날 오후 8시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전국 시·도경찰청장 화상회의를 주재하며 이번 사건과 관련해 “사실상 테러행위로 가능한 처벌 규정을 최대한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윤 청장은 “이른바 ‘묻지마 범죄’, 이상동기 범죄에 대한 국민 불안이 극도로 높은 상황에서 이와 유사성이 있는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다”며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경찰의 책임자로서 매우 엄중하고 위급한 상황이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1일 서울 신림동 번화가에서는 조선(33)이 일면식도 없는 행인을 상대로 흉기를 휘둘러 1명을 숨지게 하고 3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이 사건 이후 신림동 인근에서 ‘20명을 살해하겠다’는 내용의 인터넷 게시글이 잇따라 올라와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서현역 사건 직후에도 SNS 등에 오는 4일 오후 오리역 인근에서 칼부림을 하겠다는 ‘살인예고’가 올라와 경찰이 긴장하고 있다.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