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유출돼 큰 파문을 일으켰던 ‘삼성생명 내부전략보고서’에는 보험업계가 추구해 온 민간의료보험의 단계별 발전 전략이 잘 기술돼 있다. 6단계로 구성됐는데, (1단계)정액방식의 암 보험, (2단계)정액방식의 다질환 보험, (3단계)후불방식의 준 실손의료보험, (4단계)실손의료보험, (5단계)병원과 연계된 부분 경쟁형 의료보험, (6단계)정부보험을 대체하는 포괄적 의료보험이 그것이다. 2005년 당시는 손해보험회사만 실손의료보험 상품을 판매할 수 있던 3단계에 해당했다. 그런데 2005년 보험업법 개정으로 생명보험회사도 실손의료보험 상품을 판매할 수 있게 됐다. 이 때문에 2007년부터 민간의료보험은 4단계에 접어들었다.
곧바로 보험업계는 5단계 실현을 위한 승부수를 띄웠다. 참여정부 때 유시민 장관이 내놓은 ‘의료법 개정안 제61조’가 그것인데, 핵심은 보험회사가 비급여 진료에 대해 의료기관과 직접 계약할 수 있도록 규정한 부분이었다. 우리나라는 의료법 제27조에서 ‘누구라도 영리를 목적으로 환자를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게 소개·알선·유인하는 행위 및 이를 사주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한다. 따라서 보험회사는 가입자를 매개로 의료기관과 계약할 수 없다. 그런데 유 전 장관의 ‘의료법 개정안 제61조’는 예외를 두어 보험회사가 의료기관과 직접 계약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려고 했다. 당시 시민사회가 격렬하게 반대했고 결국 무산됐다.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 같은 시도가 있었지만 시민사회 저항과 국회 반대로 거부됐다.
민간의료보험 5단계인 ‘병원과 연계된 부분 경쟁형 의료보험(국민건강보험과 경쟁)’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국민건강보험과 같은 작동 구조를 가져야 하는데, 이게 가능해지려면 다음의 두 가지 조치가 필요하다. 첫째, 국민건강보험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대응하는 민간의료보험의 심사평가기구가 필요하다. 국민건강보험에서 의료기관은 심평원에 진료 자료를 전송하고, 심평원은 심사평가를 통해 지급액을 결정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급한다. 국민건강보험은 심사평가를 통해 국민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보험재정을 알뜰하게 관리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민간의료보험은 보험회사의 이익과 영향력 극대화를 위해 심사평가 기전을 활용하길 원한다. 이는 미국식 민간의료보험 체계로 가기 위한 필수 관문인데, 우리나라 보험업계의 숙원이다. 이것이 갖춰지면 민간의료보험 5단계로 올라설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의료기관과 계약을 체결하는 것처럼 보험회사도 계약을 맺도록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이 필요하다. 이렇게 되면 보험회사는 가입자를 매개로 의료기관과 의료서비스의 내용 및 가격을 계약하게 되는데, 여기서 심사평가 기전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것이 미국식 민간의료보험 체계인데, 바로 ‘의료민영화’다. 현행 민간의료보험은 보험회사가 가입자와 실손보험 계약을 맺고 의료 이용에 대해 약관에 따라 산출된 비용을 지급하는 사적 계약 관계다. 여기서 의료기관은 보험회사와 무관하며, 보험회사 제출용 자료를 환자에게 발급할 따름이다. 이는 민간의료보험이 국민건강보험과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인데, 민간의료보험 5단계로 올라설 수 없게 한다. 그런데 보험업법이 개정되면 의료기관은 보험회사의 심사평가기구에 진료 자료를 제출해야 하고, 이것이 제도화되면 보험업계는 미국식 민간의료보험 구축이라는 오래된 꿈에 성큼 다가설 수 있게 된다. 바로 민간의료보험 6단계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