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몰려갔던 개발자들, 대기업으로 U턴

입력
수정2022.08.10. 오전 10:31
기사원문
장형태 기자
TALK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IT 빙하기 도래, 이젠 대박 어렵다”… 테헤란로 구조조정 바람
한 웹소설 스타트업에서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있던 권갑중(51) 개발자는 지난 4월 LG유플러스 디지털통신플랫폼 담당(부장급)으로 이직했다. 권 담당은 개발자·디자이너 등과 팀을 꾸려 구독 관련 신사업을 하는 ‘사내 스타트업팀’을 이끌고 있다. 권 담당은 “안정적인 환경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다”며 “이번에 팀을 꾸리면서 스타트업계에 있는 후배 7명을 영입했는데 주저없이 옮겨오더라”고 말했다.

그래픽=김성규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해 스타트업계 빙하기가 시작된 가운데, 개발자 채용 시장에서도 ‘대기업 유턴’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반년 전까지만 해도 상장과 스톡옵션 대박을 좇아 대기업에서 강남 테헤란로와 판교 스타트업으로 줄줄이 나오던 개발자들이 다시 대기업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IT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개발자들이 초기 스타트업에서 대박을 노리기에는 너무 위험한 시기”라면서 “안정성과 새로운 도전 모두를 챙길 수 있는 대기업이 새로운 선택지로 떠오르고 있다”고 했다.

스타트업에서 대기업 돌아가는 개발자들

최근 권 담당처럼 스타트업에서 대기업으로 유턴하는 개발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실제로 본지가 개발자 채용 플랫폼 ‘그렙’과 회사 규모별 개발자 채용 공고를 분석해보니, 올해 상반기 스타트업 개발자 채용 공고는 전년 대비 26.4% 늘어나는데 그친 반면 대기업 개발자 채용 공고는 438% 늘었다. 헤드헌팅 업계 관계자는 “요새 자금난에 시달리는 스타트업들에서 팀 단위로 이직을 시도하는 개발자가 많다”며 “그동안 개발자를 잘 뽑지 못하던 대기업에서 이들을 적극 수용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최근 경영난에 빠진 국내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업체에서 통신 대기업으로 이직한 4년 차 개발자 A씨는 “다니던 스타트업이 어려운 경우는 여럿 겪었지만 지금은 업계 분위기가 너무 안 좋은 상황”이라며 “안정적인 곳으로 가야겠다 생각하던 차에 이직 제의를 받았다”고 했다.

대기업들이 사내 벤처기업을 적극 육성하는 것도 개발자 유턴과 관련이 깊다. 실제로 삼성·LG·현대차·GS·한화·코오롱·효성 등 대기업들은 사내 벤처 형식으로 메타버스, 블록체인, 모빌리티 등 다양한 신사업에 적극 진출하고 있다. 스타트업에서 LG유플러스의 사내 벤처로 이직한 신정호 담당은 “주변 선후배 개발자들이 선호하는 기업은 분사와 상장 가능성이 있는 사내 벤처를 적극적으로 육성하려는 공통점이 있다”면서 “대기업들이 분사 후 상장이라는 조건을 내걸고 개발자들을 적극 영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블록체인과 메타버스 신사업을 시작한 효성그룹 관계자는 “스타트업 출신 개발자 지원이 작년보다 1.5배 증가했다”고 했다.

스타트업 성지 테헤란로에 부는 찬바람

자금난에 빠진 스타트업들은 강남 테헤란로에서 슬슬 빠지는 모양새다. 월 수천만~수억원에 달하는 임차료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강남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돈이 없어 월급도 제대로 못 줄 판인 스타트업이 적지 않다”고 했다.

실제로 OTT 스타트업 왓챠는 최근 강남역 본사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사무실 규모를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재능 공유 플랫폼 B사는 최근 100명 가까운 직원을 절반 넘게 줄이고 본사를 강남에서 성동구 성수동으로 옮겼다. 투자 유치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배달 대행 플랫폼 ‘부릉’ 운영사 메쉬코리아는 지난달 연말까지 본사를 경북 김천시로 옮긴다고 밝혔다. 밴처캐피털 관계자는 “이익을 못 내는 스타트업이 줄일 수 있는 건 결국 임차료와 인건비”라며 “사람뿐 아니라 코로나 이후 테헤란로로 몰려왔던 스타트업들도 불경기로 인해 썰물처럼 빠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기자 프로필

TALK

유익하고 소중한 제보를 기다려요!

제보
구독자 0
응원수 0

전 인도특파원, 현 테크팀 반도체 담당. 성장하는 곳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IT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