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 쓰더니…확 변한 일본인들 '한끼 50만원' 줄서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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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07.14. 오전 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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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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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현지시간) 일본 도쿄의 쇼핑 구역 오모테산도에서 쇼핑백을 든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AFPBBNews=뉴스1
만성 디플레이션에 시달리던 일본에서 수요 주도형 인플레이션의 신호가 보인다는 진단이 나왔다. 소득 증가를 기대하는 일본 소비자들이 가격 상승에도 기꺼이 지갑을 열면서다. 물가 상승을 낯설어하던 일본이 디플레이션 사고방식에서 탈출하는 전환점에 섰다는 분석이다.

12일(현지시간) 로이터는 최근 점점 더 많은 일본의 호텔, 식당, 소매업체들이 가격을 인상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은 소득이 증가할 것이라고 믿으며 지출에 관대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예컨대 도쿄의 프랑스식 레스토랑인 로부숑의 경우 1인당 저녁 코스 식사 메뉴 가격이 400달러(약 51만원)까지 올랐지만 두 달 치 예약이 꽉 찬 상태다. 도쿄타워 근처에서 일본 전통식을 판매하는 식당인 우카이 역시 세트 메뉴 가격이 2만2000엔(약 20만원)으로 지난해 11월보다 24%나 올랐지만 매니저는 "고객들은 가격 인상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가격이 올라도 고객들은 임금이 오르고 보너스도 받기 때문에 계속 우리 식당을 찾는다"고 말했다.

로이터는 이런 현상은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수십 년 동안 디플레이션에 시달리던 일본 경제가 전환점을 맞이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리는 장기 불황에 시달렸다. 소득도 물가도 오르지 않는 상황이 수십 년 동안 계속되면서 소비자들은 무기력에 빠졌고 작은 가격 인상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기업들은 비용이 증가하더라도 가격 인상에 따른 반발을 두려워해 쉽게 가격 인상에 나서지 못했다. 이는 인건비 축소로 이어졌고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 소비자들은 점점 지출을 꺼렸다. 기업들은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가격을 낮췄고 소비자들은 가격이 더 떨어질 것을 예상해 소비를 최대한 늦췄다.

하지만 일본의 뿌리 깊은 디플레이션 사고방식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물가가 오르고 있다는 확신이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다. 일본의 물가상승률은 1년 넘게 일본은행의 목표치인 2%를 웃돌고 있다. 지난달 일본은행 조사에 따르면 일본 가계 가운데 1년 후 물가가 더 오를 것으로 예상한 비율은 86.3%에 달해 1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일본 월별 물가상승률 추이/사진=트레이딩이코노믹스
임금도 오르고 있다. 일본 재계와 노동계의 봄철 임금 협상인 춘투에서 올해 임금 인상률은 3.58%를 기록해 1994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다만 일본 언론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물가를 감안한 근로자 실질임금은 14개월 연속으로 줄어들고 있다. 기업들은 노동력 부족과 고물가 상황에서 인력 확보와 직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임금을 더 올려야 한다는 압박에 직면했다.

노무라는 최근의 임금 인상은 "일본 경제의 상징적인 구조 변화를 나타낸다"면서 "일본의 잠재 노동력은 2021년 말부터 급격한 감소세로 전환했다. 이는 앞으로 임금 상승 압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득 증가를 기대하는 소비자들은 지출에 대담해지고 있다. 도쿄에 사는 직장인 사노 아키히토는 로이터에 자신이 다니는 식품회사도 올해 임금을 인상했다면서 "새 골프클럽을 마련했다. 이건 나를 위한 선물"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올해 1분기 GDP(국내총생산)는 연율로 2.7% 증가했는데, 개인 소비 회복은 성장세의 주요 이유로 꼽혔다.

이제 관심은 디플레이션 사고방식 타개를 위해 수년 동안 전례 없는 돈풀기에 나섰던 일본은행이 정책 변화에 나설지다. 일본은행은 최근 인플레이션도 일시적일 것으로 확신하며 완화적 통화정책을 고수해왔다.

일본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출신인 세이사쿠 가메다는 "서비스 가격 상승이 확대되고 있다. 일본은 임금-물가 상승 사이클의 전환점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일본은행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일본은 현재 임금 인상이 동반되는 물가 상승에서 진전의 신호를 보고 있다"면서 "이제 관건은 이것이 추세가 될지 여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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