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언론이 조장하는 저출산 현상

입력
수정2024.01.05. 오전 9:34
기사원문
이문수 기자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혼자 사는 성인 남녀의 일상이 유쾌하게 그려진다. 결혼한 남녀는 하루가 멀다 하고 피 터지게 싸운다. 이혼한 남자들이 모여 대수롭지 않게 결혼 경험을 희화화한다.’

퇴근 후 별생각 없이 텔레비전을 켜고 채널을 돌리고 있노라면 문득 혼란스러움이 밀려올 때가 있다.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황금시간대 인기 프로그램 대부분이 결혼과 가족제도, 출산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짙다. MBC ‘나혼자 산다’와 ‘오은영리포트-결혼지옥’, SBS ‘신발 벗고 돌싱포맨’이 대표적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성소수자의 짝짓기 프로그램 ‘메리퀴어’가 나오면서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최근 tvN에서는 2억9000만원의 상금을 내걸고 결혼을 앞둔 사람끼리 경쟁시키는 ‘결혼전쟁’까지 선보였다. 결혼에 들어가는 평균 비용인 2억9000만원을 지원하겠다는 건데 남녀간 혼례를 유물론 시각으로 접근한 것 같아 씁쓸하다.

기자가 ‘프로불편러(전문적으로 뭐든지 불편해하는 사람)’라서 그렇게 느끼는 걸까. 비단 아기 울음소리가 그치고 노인만 가득한 농촌을 자주 접하는 직업군이라서가 아니다. 다양한 인구 지표가 죄다 적신호인 상황에서 이런 예능이 달가울 리 없다.

‘2022년 합계출산율 0.78’이라는 숫자는 이제 소수점 아래까지 외울 정도가 됐다. 부부가 최소 2명을 낳아야 지금 인구가 유지되는데 1명도 낳지 않는다는 얘기다.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는 1995년 9.4건에서 지난해 3.7건으로 60%가량 쪼그라들었다. 2030년에는 모든 국민을 나이별로 줄 세웠을 때 딱 중간에 있는 사람의 나이, 즉 중위연령이 50세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암담하다.

언론 매체의 존재 이유가 현재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에만 있지 않다. 국가 백년대계를 함께 고민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이 더 크다. 역경을 딛고 결혼이라는 대사를 치른 신혼부부, 서사가 끊이질 않는 좌충우돌 다둥이네 가족, 문화 충격을 딛고 한국 사회에 안착한 다문화가정을 황금시간대에 편성해도 충분히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표현의 자유나 문화 다양성을 앞세워 ‘남녀가 결혼하고, 후대를 키우며 미래를 그리는’ 그런 인류 보편 가치를 혐오하거나 부정하는 듯한 언론 행태를 되짚어볼 때다. 더는 언론이 눈앞의 시청률에만 급급해 저출산을 조장하는 홍위병으로 나서서는 곤란하다.

이문수 전국사회부 차장 moons@nongmin.com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오피니언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