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수 MLB일기<24> “그 2할 5푼이 뭐라고…”

입력2015.09.07. 오후 5:55
수정2015.09.07. 오후 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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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시즌 반전 스토리를 쓰고 있는 추신수. 2할5푼이 올시즌 목표가 아닌데, 어느 순간 목표처럼 돼버린 현실에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고 한다.>
 
오늘(9월 7일, 한국시간) 치른 LA 에인절스와의 원정 3차전은 참으로 힘든 경기였습니다. 어쩌면 에인절스란 팀 자체가 우리한테는 계속 두드려야 하는 벽일지도 모릅니다. 두드리고 넘어서고, 다시 두드리는 쉽지 않은 팀. 에인절스도 남은 경기에서 충분히 반등의 기회가 있다고 보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거겠죠. 어제 에인절스와의 2차전에서 2-1로 어렵게 이길 때만 해도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1위팀인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2게임 차로 좁혀졌는데 오늘 패하면서 다시 3게임 차로 벌어졌습니다. 숫자로만 계산할 경우 ‘그까짓 것 3게임 차 정도야’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경기를 하는 선수들 입장에선 3게임 차를 좁혀가는 게 굉장히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만 이기는 게 아니니까요.

미디어에선 우리 팀이 현재 아메리칸리그 와일드카드를 목표로 하는 것처럼 보고 있지만, 레인저스 선수들은 와일드카드를 입에 올리지 않습니다. 아직 27게임이 남았고, 우린 여전히 지구 우승을 갈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캔자스시티 로열스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처럼 지구 우승을 굳혀가고 있는 팀들이라면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남은 일정동안 선수들을 돌아가며 쉬게 하는 방법으로 체력을 비축할 텐데 레인저스처럼 매 게임마다 전력을 다 쏟아 붓는 경기를 펼치는 팀들은 지금이 가장 고비가 아닐까 싶습니다. 매 게임을 결승전처럼 치르다보면 체력도 점점 고갈되고, 그로 인해 몸에 하나둘씩 이상 신호가 오기 마련이죠. 더욱이 날씨는 여전히 덥고, 원정과 홈을 넘나드는 빡빡한 스케줄 등은 전력에 여유가 없는 팀들한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베테랑들이 많은 레인저스는 선수들끼리 다양한 방법으로 그런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려고 노력합니다. 어쩌면 그런 경험 속에서 평소보다 더 진한 동료애를 느끼며 마음을 다잡아 가는지도 모릅니다. 온몸이 욱신욱신 쑤시고, 어깨에 쇳덩이를 얹은 것처럼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방망이를 잡고 타석에 서고, 마운드에 올라 혼신의 힘을 다해 공을 뿌려대는 것은 오로지 그 목표 한 가지 때문입니다.

지난 9월 5일 에인절스와의 1차전에서 지긋지긋했던 2할5푼의 벽을 넘어섰습니다. 이날 정말 많은 축하와 격려 문자를 받았습니다. 경기 후 숙소에서 여기저기서 온 축하 문자들을 읽으며 절로 헛웃음이 나오더군요. 추신수란 사람이 언제부터 2할5푼 쳤다고 축하 문자를 받는 상황에 이르렀나 싶었습니다. 기록을 찾아보니 지난 4월 10일 오클랜드전에서 2할5푼을 찍고, 그 후론 하향세를 면치 못했네요. 부상이든 부진이든,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성적표입니다.

부산고 시절 투수란 보직을 안고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했다가 갑자기 타자로 포지션을 변경하라는 코칭스태프의 권유에 어쩔 수 없이, 이곳에서의 생존을 위해 방망이를 집어 들었지만, 그때도 제 마음 속에는 2할5푼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루키 시절부터 타자로 새로운 도전을 해나가면서도 제 목표는 2할5푼이 아닌 3할을 향해 가 있었습니다. 마이너리그를 거쳐 빅리그로 콜업된 후에도 제 시선은 3할이었습니다. 때론 그 3할을 찍은 적도 있었고, 못 미치더라도 이해가 되는, 인정받는 성적표를 안고 시즌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랬던 제가, 지금은 2할5푼에 축하 문자를 받게 되다니요. 그 문자들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많은 생각이 오갔던 시간이었습니다.

모든 게 갖기 전에는, 닿기 전에는 간절함이 생깁니다. 그러나 막상 갖게 되면, 닿게 되면 그 간절함은 감소하기 마련이죠. 그러나 이번에는 좀 다릅니다. 2할5푼의 라인을 넘어서니 밑에는 쳐다보고 싶지 않습니다. 무조건 더 높은 숫자를 향해 오르고 싶을 뿐입니다. 그건 욕심이 아닌 제가 해야 할 몫입니다. 비싼 몸값의 선수가 당연히 해야 할 숙제인 것이고요.

오늘 경기에서 1번 타자로 나온 드류 스텁스란 선수에 대해 아시나요? 그 친구는 제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 됐을 때 신시내티에서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 됐던 선수 중 한 명이었습니다(당시 애리조나와 함께 삼각 트레이드). 그런 사연이 있는 선수를 시간이 흐른 후 지금은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같은 유니폼을 입고 만났네요. 메이저리그 생활을 오래 하면 할수록 선수들과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의 동료가 내일의 적이 되는 건 부지기수이고,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료가 되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죠. 여기도 작은 사회나 마찬가지라 우리 팀 선수들뿐만 아니라 상대팀 선수들과도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게 필요합니다.

지금은 시애틀로 이동 후 원정 숙소입니다. 여기서 4연전을 치르고 홈으로 돌아가는데, 몸은 힘들어도 제가 일기를 통해 지구 우승이니, 와일드카드를 거론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합니다. 일단은 2할5푼3리의 숫자까지요^^.

<공에 맞아도 출루만 할 수 있다면야...>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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