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댑(Dapp)은 태생적으로 성공하기 힘든 모델일까요?

2023.03.09. 오전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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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로서 바라본 블록체인 회사들

비트코인을 처음 접했던 것은 2014년입니다. 당시 미국에서 어학연수 중이던 저는 뉴욕에서 공부 중이던 선배와 연락이 닿아 한 달 동안 같은 집에서 살게 됐습니다. 온라인 음성 채팅으로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하길 즐기고, 한물 간 게임의 희귀 아이템을 팔아 비싼 식당에서 데려가던, 조금은 Geek스러웠던 선배였습니다. 그는 어느 날 수학 문제를 풀면 비트코인이 채굴되고 이것을 USB에 지갑처럼 담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엉뚱하면서도 비범하게 느껴지던 그 개념은 이내 다른 잡담들과 함께 잊혔지만, 한동안 꽤나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었습니다.

유난히 주식 시장이 좋았던 2020년, 잊고 있던 비트코인을 다시 만났습니다. 당시 저는 꽤 많은 시간을 투자와 리서치에 썼었는데, 당시 월스트리트에 꽤나 큰 반향을 일으켰던 린 알덴(Lyn Alden)의 리포트를 통해 비트코인이 투자 가능한 자산이라는 개념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이후 저는 여느 가상자산 투자자들(코인쟁이)과 마찬가지로 이쪽 세계에 꽤나 심취하게 되었고, VC에 합류한 이후엔 본격적으로 국내외 블록체인 회사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안타깝게도 회사 지분이 아닌 가상자산에는 투자하지 못하게 한 국내 창업투자회사의 법적 규제 때문에 기대보다 많은 투자 기회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솔직한 이유는 투자하고 싶은 회사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메인넷을 개발한다는 회사들은 고객의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구축해 주는 서버 SI 회사처럼 느껴졌고,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를 개발하는 이른바 댑(Dapp) 회사들은 자신들의 서비스가 블록체인 위에서 구현돼야 하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원점으로 돌아가 블록체인에 대한 맹목적 믿음에 의심을 던져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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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서비스는 왜 블록체인을 써야 합니까?

어느 순간 댑 개발사들은 기업 소개에 유행처럼 웹3(Web 3.0)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앞다퉈 말하는 웹3란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블록체인 위에서 만들어진 서비스를 통칭하는 용어처럼 사용되는 웹3는 보다 개인화된 서비스를 만들기 위한, 인터넷 발전 방향의 거대한 합의입니다. 이용자들이 서비스 참여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고, 서비스 운영에 대한 거버넌스에도 참여할 수 있게 하자는 웹3의 개념은 상당히 합리적이며, 실제로 인터넷 분야의 핵심 오피니언 리더들을 포함한 진취적인 대중들의 지지를 받고 있기도 합니다.

웹3서비스는 “어떻게 참여자에게 합리적인 보상을 부여하고, 얼마나 공정한 절차로 이러한 보상 체계를 만들 수 있을지”라는 주제에 사뭇 심취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보상을 둘러싼 서비스 제공자와 사용자 간의 이해관계 조정과 신뢰 확보가 중요한 숙제인데, 이른바 신뢰 비용을 낮추기 위한 방법으로 이들이 주장하는 것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탈중앙화 거버넌스의 구축입니다.

블록체인을 도입해 스마트계약으로 서비스 참여에 대한 보상을 보장하고, 거버넌스 토큰을 소유하고 있다면 많은 운영 현안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구조는 꽤나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다만 블록체인만이 이런 미래를 만드는 데 유일한 해법이라는 과격한 주장은 건설적인 논의를 진행하는데 걸림돌이 됩니다. 오히려 주주 자본주의를 넘어 고객 자본주의라는 말을 탄생시키며 투명성과 합리성을 발전시켜온 주식회사의 전통적인 거버넌스 또한 웹3 철학과 크게 동떨어져 있지 않아 보입니다.

결국 블록체인의 사용 유무는 투자자에게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 되지 못합니다. 블록체인의 사용은 여지없이 전제가 된 상황에서, 그럴듯한 사업 모델만 끼워 맞춘 서비스들은 프로덕트-마켓 핏(Product-market fit)과 지속가능성 어느 한쪽으로도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술 주도형(Tech-driven)으로 자신감 있게 시작한 많은 기업들이 아쉬운 퇴장을 하는 것을 다양한 분야에 걸쳐 봐왔습니다. 특히 그저 경제적 보상만 한다고 해서 이용자들을 서비스에 끌어올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영상을 올리면 광고 수익을 주는 유튜브, 리뷰를 달면 포인트를 주는 무신사는 웹3와 아주 크게 다른가?

일론 머스크가 올린 트위터 CEO 사임에 대한 투표. 서비스 참여자들에게 거버넌스를 주는 것은 과연 민주적이고 좋기만 한가? 그리고 이런 행위에 블록체인이 꼭 필요할까? 출처=트위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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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댑들이 성공했었을까요?

잠시 개발자로 일했던 2018년 당시, 운영진으로 활동한 개발자 학회에서 지금은 유명해진 블록체인 보안 회사의 대표님을 동문(Alumni)으로 알게 됐습니다. 이상하게 블록체인에 관심이 갔던 저는 대표님께 세미나를 요청드렸고, 감사하게도 시간을 내주신 덕에 기술과 산업에 대한 소중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당시 가장 성공한 댑이던 ‘크립토키티’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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