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을 단순한 미용 문제가 아닌 만성 질환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혁신적인 비만 치료제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비만도 고혈압·당뇨처럼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질병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 14일 서울 그랜드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대한비만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리 캐플란 미국 보스턴 비만 및 비만대사 연구소 소장은 "비만은 단순히 개인의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비만 환자의 5~10%만이 스스로 체중 감량에 성공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20년간 연구를 통해 환자가 혼자서 비만을 해결하도록 하는 방식은 효과가 없다는 것이 증명됐다"면서 "비만 치료에는 보다 체계적인 의료 개입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비만 치료제 개발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지만, 높은 비용이 여전히 걸림돌이다. 병원에서 비만 치료제 '위고비'를 한 달간 처방받으면 약 60만 원이 소요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비만 치료제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캐플란 소장은 "비용 문제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라며 "장기 이식 수술에서 이식자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처럼, 비만 치료제도 가장 시급한 환자가 우선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자원을 배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만, '완치' 아닌 '관리' 필요한 질환
비만 치료제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비만율 자체가 낮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점도 지적됐다.
캐플란 소장은 "비만 치료제를 처방받은 환자는 이미 비만 상태이며, 치료를 통해 증상이 완화될 뿐 완치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비만은 당뇨병처럼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질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향후 10~20년 내에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치료제를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캐플란 소장은 한국에서 비대면 진료 등을 통해 비만하지 않은 사람이 비만 치료제를 남용하는 사례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그는 "치료제 자체의 안전성 문제보다는, 꼭 필요한 환자에게 가야 할 치료제가 불필요한 사람들에게 사용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리 캐플란 소장은 세계적인 비만 치료 권위자로, 미국 다트머스 가이젤 의대 내과 교수, 하버드 의대 부속 메사추세츠종합병원 비만 치료센터 총괄 등을 역임했다. 비만치료제 개발에도 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