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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고급 화장품 매장 ‘내분전(內粉廛)’

2023.11.14. 오후 2:22

조선시대의 고급 화장품 매장 ‘내분전(內粉廛)’

화장품과학자가 쓴 ‘K뷰티 히스토리’ ⑨

더케이뷰티사이언스 2023년 11월호 118p

이준배 코스맥스, 기반기술연구랩장(이사)

21세기 K-뷰티의 성지(聖地)는 단연코 서울 ‘명동(明洞)’이다.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 관광객들 역시 명동에서 많은 화장품을 구입해 간다. 2015년 1월 9일자 동아일보에 따르면, 명동 내 화장품 매장은 2007년 27개소에서 2015년 134개소로 5배 증 가했다.

이러한 성장의 요인으로는 2010년대 명동 화장품 매장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원브랜드숍의 눈부신 성장과 중국 및 일본 관광객에 의한 인바운드 수요가 결정적이었다. 하지만, 2010년대 온라인 화장품 시장이 오프라인을 넘어서고, 코로나19(COVID-19) 팬데믹(pandemic)에 의한 인바운드 수요 감소는 명동 화장품 상권을 거의 붕괴시켰다. 2023년 1월 20일자 중앙일보에 따르면, 2022년 10월 기준 명동 내 화장품 매장은 단지 28개소에 불과했다. 명동의 화장품 상권이 16년전인 2007년으로 다시 회귀한 것이다. 그나마 코로나19가 사그라들면서 명동의 화장품 상권도 다시 부활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십수 년 간 명동 화장품 상권의 흥망성쇠를 보면서 문뜩 조선시대 화장품 시장에 대해 궁금해졌다. 비교적 기록이 많이 남아있는 한양의 시장을 중심으로 이번에는 조선시대 한양의 화장품 시장을 소개한다.

ⓒ필자 재구성

한양의 시장 ‘시전(市廛)’

조선시대 화장품 시장을 알아보기 전에 먼저 도읍지인 한양의 상권에 대한 알아본다. 조선시대 상권에 대한 내용은 2005년 발행된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문화사 3권『 거상, 전국 상권을 장악하다』에 있는 내용을 기초로 하였다. 먼저 태조 이성계(1335~1408, 재위:1392~1398)가 조선을 건국하고 2년이 지난 태조 3년(1394년) 8월 24일, 새로운 도읍지로 한양이 결정되었다. 이후 본격적인 도읍지 개발을 위해 9월 9일 권중화(1322~1408)와 정도전(1342~1398)을 한양으로 보내 종묘, 사직, 궁궐, 그리고 시장과 도로의 터를 정하게 하였다. 그 해 10월 25일, 태조는 개성을 떠나 한양으로 출발하였고, 3일 후인 10월 28일 드디어 한양에 도착하였다. 이후 한양은 한성부(漢城府)로 불려졌고, 한성부는 5부(部)와 그 아래 52방(坊)으로 행정구역이 정비되었다. 하지만, 왕자의 난을 거친 이후 정종원년(1399년) 3월 개경으로 다시 환도하면서 한양 상권은 일시적으로 황폐해진다. 한양이 다시 활기를 회복한 계기는 태종이 다시 한양으로 들어온 태종 5년(1405년) 10월 11일 이후로 추정할 수 있다.

미국인 버튼 홈즈(E. Burton Holmes, 1870~1958)가 그의 저서『 Travelogues』에서 소개한 1900년대 초반 종로 일대 모습. 사진 왼쪽의 붉은색 사각형이 종루(鐘樓, 오늘날의 ‘보신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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