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끝내 무산된 중대재해법 유예, 이런 게 민생 정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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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사자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법(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을 추가로 2년간 유예하기 위한 법 개정안이 끝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여야가 본회의 개회 직전까지 법안 처리를 놓고 협상을 벌였으나 이견 조율에 실패해 법안이 안건에서 제외됐다. 이에 따라 기존 2년간의 시행 유예 기간이 오늘 종료된 뒤 내일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이 법이 적용된다. 법 시행에 대응할 준비가 제대로 안 된 83만여 중소 사업장들이 대혼란에 빠지게 됐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몽니를 부린 탓이 무엇보다 크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정부와 함께 법안 처리를 줄곧 주장해왔으나 민주당이 산업안전보건청 신설을 비롯해 정부와 여당이 당장 받기 어려운 전제조건들을 내세웠다. 그렇다고 국민의힘이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거대 야당을 의정 상대로 두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 집권 여당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타협과 절충의 정치력을 발휘해야 했다. 민주당은 다음 달 1일 본회의 처리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지만 그때까지 여야가 이견을 좁힐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법안 처리가 계속 표류하게 되면 산업 현장엔 큰 진통이 불가피하다. 법 적용을 새로 받게 되는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800만명을 넘는다. 이들 사업장의 사업주는 인명피해 등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1년 이상 징역형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웬만한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동네 음식점, 카페, 카센터, 찜질방, 빵집 등의 사업주도 언제든 감옥에 갈 수 있다는 공포에 시달려야 한다. 게다가 중대재해 방지를 위한 시설과 장비를 갖출 여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소기업중앙회를 포함한 경제 6단체가 한목소리로 준비할 시간을 달라며 애타게 유예를 호소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여야는 어제 대표적인 선거용 선심 법안으로 꼽혀온 대구~광주 달빛철도 건설 특별법을 짬짜미로 통과시켰다. 그러면서 중대재해법 개정안은 묵살했다. 민생은 입에 발린 말일 뿐 한통속으로 세금 퍼주기에 더 바쁜 포퓰리즘 정치의 민낯이다. 영세 중소기업들의 한숨과 절규를 외면하며 벼랑으로 내몬 이들이 어느 나라 의원들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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