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은 경고 사인만? 장 건강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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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하버드대 의대 아이삭 치우 교수팀은 통증을 감지하는 뉴런이 대장의 점액 생성을 촉진해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photo 게티이미지


우리 몸의 큰 부상을 막기 위해 신체에 보내는 신호인 통증은 질병이나 상처 등 해로운 자극을 감지해 경고하는 중요한 감각이자 우리에게 건강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알려주는 일종의 방어 메커니즘이다. 그런데 통증이 잠재적 위험을 피할 수 있도록 돕는 단순한 경보 벨 이상이라면 어떨까. 최근 생물학 국제저널 '셀(Cell)'지는 '통증 자체가 보호의 한 형태'라는 하버드대 의대의 흥미로운 연구를 내놓았다.

통증 뉴런이 점액 분비해 장 보호

배가 아프다는 건 위장 기관이, 다리가 아프다는 것은 다리가 쉬고 싶다는 몸의 신호다. 통증은 조직을 손상시키는 자극이 통증 감지 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할 때 느낀다. 신체 부위가 손상되면 포타슘 이온, 세로토닌, 히스타민 등의 통각 유발물질이 만들어지는데, 이들이 채널을 통해 신경세포 안으로 들어오면서 세포는 통증 신호를 인식하게 된다.

치통, 피부염, 관절염 등의 염증성 통증에 관여하는 '캡사이신 채널'은 통증을 유발하는 대표적 채널이다. 만약 통증이 없다면 우리는 아픈 부위를 깨닫지 못해 치명적 상처를 입거나 질병에 걸리게 될 것이다. 고통스럽다고 통증을 마냥 싫어할 일만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구나 최근 하버드대 의대 아이삭 치우(Isaac Chiu) 교수팀은 통증이 단지 잠재적 위험을 경고하는 간접적 역할에 그치지 않고, 더 직접적인 방법으로 신체의 보호와 치유를 돕는다는 사실을 밝혔다. 장염에 걸린 생쥐 모델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을 통해서다. 통증을 감지하는 뉴런(신경세포)이 위장·소장·대장 등의 소화기관을 보호하는 점액 생성을 촉진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점액은 다시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우리의 장과 기도에는 샴페인 잔처럼 생긴 배상세포(goblet cell)로 가득하다. 배상세포는 단백질과 당분으로 구성된 젤 같은 점액을 분비하는데, 이 점액은 장의 표면을 감싸 상처나 손상으로부터 보호하는 보호막 역할을 한다. 또 장 속에 정상적으로 서식하는 미생물군의 균형에도 영향을 미친다.

연구팀은 이들 배상세포가 장내 통증을 감지하는 뉴런과 직접 신호를 주고받으며 점액을 배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배상세포 표면에는 'RAMP1'이란 수용체가 있다. 이 수용체가 통증 뉴런이 활성화될 때 분비되는 '칼시토닌 유전자 관련 펩타이드(CGRP)'라는 물질과 결합하는 덕분에 직접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CGRP가 보호성 점액의 분비로 이어지는 신호 전달 경로의 주요 자극제인 셈이다.

통증 뉴런은 고통스러운 자극에 반응해 CGRP 생산량을 점점 늘린다. 증가한 CGRP와 수용체 RAMP1이 결합하면 배상세포가 자극돼 점액의 분비량도 증가한다. 통증 뉴런은 섭취한 음식 등을 통해서도 활성화될 수 있다. 고추의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은 통증 뉴런을 활성화시켜 배상세포가 점액을 더욱 분비하게 한다. 기계적 압력과 화학적 자극, 급격한 온도 변화에 의해서도 활성화된다.

그렇다면 상처나 염증이 발생하지 않아 통증이 없을 때 배상세포에서는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연구팀은 평소에도 장 속에 정상적으로 서식하는 미생물들이 통증 뉴런을 자극해 배상세포의 점액 분비를 일으키게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순환 과정을 통해 일정량의 점액 분비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정상 미생물군의 균형뿐 아니라 장내 미생물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게 치우 교수의 설명이다.

연구팀은 이후 유전자 조작을 통해 통증 뉴런을 없애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생쥐의 장내 배상세포에서는 점액을 아주 적게 분비했다. 그 때문에 건강한 장내 미생물 조성의 균형도 깨졌다. 또 통증 뉴런이나 RAMP1 수용체를 제거한 쥐는 대장염에 더 잘 걸린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증세도 훨씬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장내 미생물 불균형이 있는 사람들이 대장염에 더 잘 걸릴 수 있음을 알려주는 연구이기도 하다.

한편 연구팀은 통증 뉴런을 없앤 쥐에게 다시 CGRP를 주입해 보았다. 그 결과 점액의 분비량이 빠르게 회복되었다. 이는 배상세포가 통증 뉴런과 직접 '대화'하며 장내 미생물을 유지할 뿐 아니라 염증에 대항하는 직접적 역할도 하는 증거라고 치우 교수는 말한다.

진통제가 장에 미칠 부정적 영향

치우 교수팀의 이번 연구 결과는 장 염증이 있는 사람들의 주요 증상 중 하나는 통증이지만 반면에 통증이 우리 몸을 직접적으로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통증에 감사하면서 자신의 몸을 좀 더 소중히 다뤄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이 같은 결과는 통증을 치료하는 방법에 대해 신중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통증을 해소하려면 통증이 일어나는 여러 단계 중 한 부분을 차단하면 되지만 다른 부분에 피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통증을 없애려고 신경을 차단시킨다고 하자. 그러면 배상세포의 점액 분비가 줄고 장내 미생물의 균형도 깨져 위장·소장·대장 등에 해를 끼칠 수 있다. 특히 통증 완화를 위해 사용되는 강력한 진통제들은 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만성 편두통 치료제의 상당수가 CGRP 분비를 억제하는 방식이다. CGRP가 배상세포 기능과 점액 생산의 중재자임을 감안할 때, 편두통 환자에게 편두통약을 오래 먹여서 이 보호 메커니즘을 만성적으로 차단한다면 내장 점막의 보호 장벽을 손상시키고 장내 미생물의 균형을 방해할 수 있다. 대장염 환자를 치료하는 데도 종종 진통제가 사용된다.

지난해 치우 교수는 탄저균에서 추출한 독소를 이용해 중증 통증을 관리하는 방법을 찾아내기도 했다. 폐에 치명적인 감염증을 일으키는 탄저균은 테러 무기로 쓰일 만큼 위험한 세균이다. 그럼에도 그는 유전자 조작 쥐를 모델로 탄저균 독소를 척수 신경절에 주입하는 실험을 했다.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통증 뉴런의 통증 신호를 바꿔 아예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이다. 신경세포가 죽는 등의 부작용은 관찰되지 않았다. 이 기술은 암이나 대상포진 등에 걸린 그야말로 심한 통증 환자에게 적용될 수 있다.

연구팀은 일반 통증 환자에게도 적용 가능한 명확한 치료법을 찾을 생각이다. 이에 더해 통증 뉴런이 배상세포의 또 다른 기능을 조절하는지의 여부와 염증성 장 질환에 약한 유전적 원인이 있는 환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없는지 등을 추가로 조사할 계획이다. 이들의 연구로 배상세포의 다양한 기능이 자세히 밝혀진다면 새로운 통증 치료법 또한 쉽게 개발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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