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난 건설사들… 부채비율 300% 넘는 기업 1년새 2배로
‘재무위험’ 회사 1년새 10개→22개
10곳중 6곳꼴 전년보다 부채비율↑
“지방 미분양 심각… 줄도산 우려
부동산 경기 침체와 고금리 여파로 자금난에 시달리며 휘청이는 건설사가 늘고 있다. 재무적으로 위험한 수준에 놓인 건설사는 1년 전보다 두 배로 많아졌고, 이 중 60% 이상의 건설사는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내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하반기(7∼12월) 분양 시장이 본격적으로 되살아나지 않으면 지방 중소형 건설사의 줄도산 우려가 커지고 있다.
동아일보가 23일 도급순위 300위권 건설사의 지난해 감사보고서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 부채비율 300%를 넘는 건설사가 22곳으로 전년(10곳)의 두 배 이상으로 뛴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감사보고서 미작성 15개 건설사는 제외한 수치다. 건설 기업은 금융사의 레버리지(부채)를 활용해 사업하는 경우가 많아 통상 300%를 초과하면 위험하다고 본다.
지난해 부채비율이 전년보다 늘어난 건설사는 165곳으로, 285개 건설사 10곳 중 6곳(58%)은 1년 전보다 자금 사정이 악화됐다. 김태석 한국투자증권 자산승계연구소 회계사는 “올 초 규제 완화 이후 수도권 분양 시장은 다소 숨통이 트였지만, 지방은 여전히 미분양이 심각하다”며 “지방을 중심으로 올해 말까지 재무건전성 악화를 버티지 못하는 업체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3월 기준 미분양 전국 7만2104채
10대 건설사조차 분양 일정 미뤄… “자구노력 전제속 정부 대응 필요”
#2. 올해 4월 전북에서 350채 규모의 아파트를 짓는 C사가 부도났다. 충남에서 시공능력 70위권의 중견 건설사로 통하지만 자금 사정 악화로 ‘흑자 부도’가 났다. 지난해 매출액 373억 원, 영업이익 25억 원을 올렸지만 1년 내 만기가 돌아오는 부채(유동부채)만 210억 원으로 전년(84억 원) 대비 2배 넘게 불었다. 이 기간 부채비율도 352.3%에서 718.1%로 치솟았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지방에서 이름 있는 종합 건설사도 부도났다”며 “영세한 중소 건설사들은 사정이 더 어려워 부도 회사가 더 나올 수 있다”고 했다.
건설사의 자금난은 분양 경기 침체의 영향이 크다. 건설사들은 분양 경기가 나쁘면 통상 경기 회복을 기다리며 분양 일정을 미루는데, 부동산 PF 대출 이자가 급등하며 이자 비용이 커지자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최근 서울 주요 단지의 분양 성적이 좋은 점 등을 들어 건설업계 위기가 한풀 꺾였다는 분석을 내놓지만 착시 효과라는 지적이 우세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미분양은 7만2104채로 2월 말(7만5438채)에 비해 소폭 줄었지만 여전히 위험선(7만 채)을 넘는다. 특히 미분양 물량 감소는 실제 분양 시장이 개선된 게 아니라 건설사들이 분양 계획 자체를 미룬 영향이 크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1∼4월 10대 건설사의 민영아파트 분양 물량은 1만5949채로 지난해 말 조사한 계획 물량(5만4687채) 대비 29%에 그쳤다. 미분양 리스크가 큰 지방은 5647채만 공급돼 계획 물량(2만7940채)보다 80%나 감소했다.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KISCON)에 따르면 올해 1∼4월 금융결제원이 공시하는 당좌거래 정지로 부도 처리된 건설업체는 총 5곳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곳)보다 많았다. 폐업한 건설사 역시 급증했다. 올해 1∼4월 폐업한 건설사(종합·전문)는 826곳으로 전년 동기(642곳)보다 28.7% 늘었다. 특히 종합건설사 폐업(111곳)이 전년 동기(66곳) 대비 70% 가까이 대폭 늘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건설업 폐업 관련 상세 현황 분석’ 보고서에서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가 아니면 일정 수준을 유지하던 폐업 수치가 지난해 4분기(10∼12월) 이후 증가했다”며 “건설업 폐업에 선제 대응을 해야 한다”고 했다.
건설업계의 자구 노력을 전제로 정부가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을 막기 위한 선제 대응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많았다. 건설업이 흔들리면 기업은 물론이고 근로자, 금융권, 지역사회 등으로 피해가 확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건설업은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15.4%를 차지할 정도로 산업 파급 효과가 크다.
우병탁 신한은행 WM사업부 부동산팀장은 “건설사는 미분양 주택을 분양가보다 훨씬 낮춰 시장에 내놓고, 정부는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는 무주택자에게 취득세나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을 주는 등의 방식을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