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군 자살률, 태백시의 6배…강원랜드 카지노 영향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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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6.05.09. 오전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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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광촌 살리려 강원랜드 만들었는데…"도박중독·자살 초래"

(정선=연합뉴스) 류일형 기자 = 폐광지역을 살리기 위해 만든 강원랜드 카지노의 그늘이 너무 짙다.

지난 20년 동안 5조 원에 가까운 돈이 이 지역에 투자됐지만, 지역 인구는 급감하고 도박중독에 빠져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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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지노 도박으로 패가망신…종착역은 '자살'

카지노 도박으로 인한 자살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3월 2일 오후 11시 23분께 대구시 서구 한 주택 2층 방에서 A(40·여) 씨와 딸(15)이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A 씨 남편 B(46)씨가 이날 오후 8시 30분께 강원도 원주 모 병원에서 투신해 숨지자 신원 확인을 위해 가족을 찾아갔다가 이들 시신을 발견했다.

B 씨는 이날 오전 11시 20분께 강원도 정선 강원랜드 근처 승용차 안에서 착화탄을 피우고 자살하려다 행인에게 발견돼 원주로 옮겨져 치료받던 중 8층 옥상에서 투신했다.

차 안에서는 '가족한테 많이 미안하다. 3월 2일 우리 가족은 끝났다'는 내용의 유서와 강원랜드 카지노 입장권 2장이 발견됐다.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들떠 있던 지난해 12월 23일 오후 3시께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사북리 한 모텔 객실에서는 투숙객 김모(48·노동) 씨가 목을 매 숨져있는 것을 모텔 주인이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김씨는 작년 한 해만 50여 차례 강원랜드 카지노를 출입하는 등 도박에 빠지면서 빚을 져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먼저 간다. 부모님과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김씨는 도박 게임에 빠져 적지 않은 빚을 졌고 가정 불화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7일에는 태백시 황지동 한 아파트 인근 야산에서 박모(41) 씨가 나무에 목을 매 숨졌다.

2000년 육군 대위로 전역한 뒤 주식 투자로 큰 돈을 번 박 씨는 2003년 3월부터 2009년 7월까지 강원랜드 카지노를 출입하면서 전 재산 18억 원을 모두 날렸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박 씨는 2010년 국회의사당 앞에서 "강원랜드 카지노의 내국인 출입을 제한해달라"며 흉기로 자해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수차례 원정 도박에 나서는 등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공공근로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오다 끝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 정선군, 강원도내 자살률 1위

강원도자살예방센터 통계에 따르면 2014년 정선군의 10만 명당 자살률은 무려 61.8명으로 강원도 17개 시·군 가운데 1위를 기록했다. 가장 낮은 태백시(10.5명)의 6배에 가까운 수치다.

정선군은 2007년에도 70.6명으로 1위, 2009년(58.6명) 3위, 2010년(79.2명) 2위 등으로 꾸준히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 2007~2014년 8년간 평균도 57.6명으로 1위 영월군(59.1명)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발생지를 기준으로 하는 경찰 통계에서도 정선군은 2011년 17명으로 군 단위 10개 경찰서 가운데 6위였으나 2013년 41명으로 급증, 1위를 기록한 데 이어 2014년에는 37명으로 2위를 기록했다.

원인별 통계에서 자살 이유를 특정하기 어려울 때 분류되는 '미상'이 정선지역은 2013년 23명으로 전체 자살자의 절반을 넘었다.

2014년에도 '미상'이 10명으로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많아 강원랜드 카지노와의 상관관계를 짐작하게 한다.

국회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0년 10월 강원랜드 개장 이후 2009년 10월까지 정선지역에서만 도박 빚 등으로 자살한 사람이 모두 35명이었다.

강원랜드 주변에서의 5대 강력범죄는 2003년 36건에서 2008년 192건으로 5배 이상 증가했다.

강원지방경찰청 관계자는 "강원랜드 카지노에서 돈 잃고 자살하는 사람들은 있다. 최근 통계로 볼 때 정선지역의 자살자가 예전보다 많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강원랜드 주변에서 찜질방 같은 곳에서 생활하다 유서도 안 쓰고 자살하는 경우 보통 '원인 미상' 등으로 처리되는데 도박중독에 따른 자살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연세대 원주 세브란스기독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민성호(54) 교수는 "강원도의 자살률 1위 불명예는 고령화 비율과 상대적으로 낙후된 의료체계, 낮은 소득, 소외된 이웃에 대한 무관심 등과 관련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민 교수는 "강원랜드가 있는 정선군의 자살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이 도박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자살의 원인이 복합적이어서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 '폐광촌 살리려 강원랜드 만들었는데…'

국내 석탄 수요가 급감하면서 정부는 1989년부터 탄광 구조조정을 본격화했다. 1989년 332개던 탄광이 1995년 27개로 급격히 줄면서 '산업전사'로 불리던 광부들은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었다.

남은 탄광마저 1995년 2월 감산 결정을 하자 지역주민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했다.


그 결과 무너진 폐광촌 재생을 위해 1995년 12월 말 10년 한시법으로 폐광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특별법(폐특법)이 제정되고, 국내 유일의 내국인 출입 카지노 강원랜드가 개장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강원랜드 덕분에 지난 20년간 폐광지역 경제 회생을 위해 국비, 도비, 기금 등 총 2조5천366억원이 투자됐다. 강원랜드의 직·간접 지원액도 1조6천억원이 넘는다.

그러나 폐광지역 인구는 갈수록 줄어들고 주민들은 "여전히 살기 힘들다"고 말한다.

경제도 경제지만, '사람 살 데가 못 되는 도박도시'라는 오명과 도박중독에 빠져 가정이 파괴되고 끝내 스스로 목숨마저 끊는 현실은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다

◇ "대책 마련 시급하다"

도박으로 인한 자살을 막기 위한 대책이 급하지만 관련 통계마저 미흡한 실정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자살예방센터 등이 인용하는 통계청 통계는 유족이 주소를 기준으로 제출한 사망신고서를 근거로 집계된다.

반면에 경찰의 자살 통계는 발생지 기준이다. 같은 지역 자살률 통계가 다른 이유다.

자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등에다 기초자료인 통계까지 부실하다 보니 자살예방을 위한 정책 수립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경찰이 강원랜드 관련 자살자 숫자를 '물타기' 하고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강원랜드 주변에서 도박중독 예방활동을 펴고 있는 '도박을 걱정하는 성직자들의 모임' 대표 방은근(58·고한 남부교회) 목사는 "정선경찰서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2014년 정선지역 자살·변사자 수가 88명에 달하고,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강원랜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경찰은 자살자 수만 따로 특정하지 않고 변사자와 섞어 물타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월 경찰서에 직접 찾아가 2015년 자살 통계를 내놓으라고 정보공개를 청구했으나 석 달이 지나도록 자료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도박을 걱정하는 성직자들의 모임은 도박중독예방을 위해 오는 11일 강원랜드 본사 앞에서 도박피해자들과 함께 '도박자살자를 위한 추모예배'를 하는 것을 시작으로 정기적으로 추모예배를 갖기로 했다.

함승희 강원랜드 대표는 지난해 11월 12일 취임 1주년 확대간부회의에서 "영업수익을 줄이더라도 도박중독 예방활동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ryu625@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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