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시진핑 테크 전쟁[오후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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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논설고문

지난달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은 미 5대 빅 테크 CEO들이 트럼프 대통령 바로 뒤에 앉은 장면이 압권이었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애플의 팀 쿡,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창업자,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가 장관 후보자들까지 제치고 앞에 앉았다. 좁은 취임식장인데도 저커버그와 베이조스는 부인과 약혼녀까지 대동했다. 이들 기업 시가총액은 12조 달러(약 1경8000조 원), 5명의 개인 재산만 1조 달러(약 1500조 원)에 이른다. 그 기술과 자금력을 총동원해 글로벌 패권을 거머쥐겠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포석이다.

한 달여 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반격에 나섰다. 지난 17일 ‘레드 테크(붉은 기술)’ 수장들을 불러모아 세를 과시하는 좌담회를 연 것이다. 샤오미의 레이쥔 회장, 유니트리(휴머노이드 로봇업체)의 왕싱싱 회장, 화웨이의 런정페이 창업자, 세계 1위 전기차인 비야디(BYD)의 왕촨푸 회장, 배터리 1위인 CATL의 쩡위친 회장 등이 시 주석 연설을 열심히 받아 적었다. 인공지능 딥시크를 개발해 ‘국민 영웅’으로 떠오른 량원펑, 5년간 시 주석 눈 밖에 났던 알리바바의 마윈까지 참석했다.

그동안 시 주석은 국진민퇴(國進民退)로 민간기업을 억압했다. 반(反)간첩법으로 외국 자본도 대거 탈출했다. 미국이 관세 전쟁을 도발해오자 시 주석이 다시 레드 테크 CEO들과 손잡은 것이다. 과거 좌담회 단골손님이던 부동산 재벌은 모두 빠졌다. 시 주석은 이날 국진민진(國進民進)으로 급변침을 선언했다. “민영 기업은 중국 경제 발전의 중요한 구성 요소”라며 앞으로 부동산보다 첨단기술 쪽으로 경제를 대(大)개조하겠다고 밝혔다.

친(親)기업 훈풍에 레드 테크들의 주가가 치솟고 있다. 지난 3주간 홍콩 증시에서 알리바바, 텐센트, 샤오미, BYD 주가는 30%씩 폭등했다. 좌담회 이후 불길이 상하이 증시로 옮겨붙고 있다. 부동산 거품에 짓눌려온 중국 증시가 전기차, 배터리, 로봇, 인공지능 등에서 대약진을 이뤄냈다며 환호하고 있다. 하지만 승패를 가리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미·중 관세 전쟁이 양국 빅 테크들의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머지않아 중국의 기술 굴기(굴起)가 실제 성공했는지도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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