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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 사과’, 문해력의 문제가 아니다(2)

2022.08.31. 오전 10:00
by 토론의 즐거움

“억압받는 사람들, 착취받는 사람들이 리터러시를 가질 수 있도록 설득해야” 박권일

“반지성주의적이지 않은 세계로 가는 길도 반지성주의라는 조건 위에서 세워질 수밖에 없다” 강남규

“내가 내 돈을 주고 정당하게 소비하는 사람인데, 왜 소비하는 나를 불편하게 만드느냐는 것” 이재훈

1편 먼저 보기

이재훈 “네, 플라톤의 얘기가 능력주의와는 어떻게 연결이 될까요?”

박권일 “네, 그래서 길게 돌아와서 재훈 님이 아까 물어봤던 그 문제, 이를테면 진리의 어떤 능력주의적인 문제, 리터러시의 능력주의적인 문제에 대해서 잠깐 얘기를 하자면, 한국 사람들의 좀 독특한 특징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는데,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특징이기는 합니다마는, 한국인들은 진리에 대해 무관심하다고 생각해요. 진리라는 것이 자기의 이해 관심과 상관없이 존재한다는 생각, 이 세계에 자기라는 존재와 별개로 어떤 진리가 존재한다는 그런 생각이 한국 사람들에게 특히 희박해보여요. 반면에 진리나 교양이라는 것이 한국에선 출세나 돈과 명예의 수단으로서 의미가 크죠. 일제시대 때부터 지금까지 입신 출세주의라든가 교양주의라는 형태로 한국 사회에 굉장히 오랫동안 축적되어 왔던 어떤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양서들, 세계 문학 대전집 같은 이런 책들을 꽂아놓는 이유가 나의 교양과 지위를 과시하기 위한 거였죠. 일종의 과시재로서 진리가 필요한 것이지 진리 그 자체가 이미 있기 때문에 추구하는 게 아닌 거예요.

요컨대 진리나 지식을 오로지 무엇을 위한 도구로서 생각하는 문화가 기본적으로 한국 사회에 있다고 생각해요. 선비 문화라든가 당파 싸움 때문에 조선이 망했다는 얘기, 관념적인 사고, 도덕주의가 강하고 실생활과 무관한 추상적인 진리만 논하다 망국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들 하잖아요. 그리고 그런 조선시대의 문화가 대한민국까지 이어지면서 대한민국의 지금 문제가 비롯했다는 식으로 얘기해요. 심지어 한국은 제대로 근대화되지 못했다고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죠. 저는 오히려 반대라고 생각해요. 한국은 조선시대의 분위기와 문화를 이제 더 이상 갖고 있지 않아요. 오히려 그 반작용으로 굉장히 속물적인 실용주의 사회가 됐다고 봐요. 그러다 보니까 세계에 있는 진리 그 자체에 대해서 추구하는 경우, 이를테면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순수 학문을 추구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 큰 의미가 없다고 보는 거죠. 물론 다른 많은 근대 자본주의 국가 역시도 그런 실용주의적인 문화가 강합니다마는 한국은 유독 진리에 대한 무관심이 강하고 그런 것들이 결국은 지식이라든가 교양이라든가 단어의 의미라든가 이런 것들이 사실은 내 지위, 내 출세, 내 돈과 명예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사실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가치가 있다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죠. 어찌보면 과잉 근대화된 거죠. 그래서 이런 진리에 대한 무관심 자체가 결국은 심심 사태 이런 것들의 배경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무한도전>의 한 장면

강남규 “같은 맥락일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맞춤법이라든지 이런 단어를 모르는 거에 대해서 뭔가 상대방과 소통하려는 의지보다도 상대방이 나의 아래에 있다, 나는 상식적인 사람이고 저 사람은 무식한 사람이다… 이렇게 지위를 가르기 위한 사건으로 맞춤법 논란 혹은 어휘 논란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상식의 선이라는 걸 정할 수 있다면 그거는 진리의 몫일 텐데, 진리가 아니라 나의 어떤 쾌감 혹은 나의 만족 이게 어떤 상식의 선을 정하는 기준으로서 작동하는 모습들도 말씀하신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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