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노인일자리 ‘공공형’ 콕 집어 6만개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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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08.31. 오후 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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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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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어르신이 노인일자리 지원 이력서를 작성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내년에 6만개 넘는 공공형(공익활동형) 노인일자리가 사라진다. 정부가 주도하는 공공형 일자리를 줄이고 민간이 만드는 시장형(민간형) 일자리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하기로 하면서다. 취업이 힘든 고령자들이 생계를 위해 찾는 ‘복지 일자리’가 축소되면서 고령층 복지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1일 정부의 ‘2023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 직접일자리 규모는 98만3000명으로 올해(103만명) 대비 4만7000명 감소한다. 직접일자리 중에서 노일일자리 수는 올해보다 2만3000개 줄어든다.

그러나 ‘공공형’ 노인 일자리만 떼어보면 올해 60만8000개에서 내년 54만7000개로 6만1000개 줄어든다.

공공형 일자리는 75세 이상 고령자들이 비교적 낮은 보수를 받고 적은 시간 일하는(27만원/30시간) 일자리다. 단순 환경미화부터 초등학교 등교길 안전지킴이, 키오스크 도우미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다. 지원 대상은 65세 이상 기초연금 수급자로 공공형 일자리 참여자 대부분이 생계비 마련을 위해 일한다. 2020년 노인실태조사를 보면 일하는 노인의 73.9%는 생계를 위해 취업한다고 답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지난 25일 예산안 브리핑에서 “노인 일자리의 절대적인 규모는 크게 변화가 없다”며 “다만, 직접적인 단순 노무형 일자리는 소폭 줄이고, 민간형 일자리는 조금 더 늘어나는 흐름으로 가져가기 위해 일부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월 2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23년 예산안’ 관련 사전 상세브리핑에서 정부예산안을 발표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그간 ‘질 낮은 일자리’로 비판 받아온 공공형 노인일자리는 윤석열 정부 ‘구조조정 1순위’ 사업으로 꼽혔다. 추 부총리는 국회의원 시절에도 “노인 직접일자리가 (제대로 된) 일자리로 둔갑해서 대한민국에 대단한 일자리가 많이 늘어난 것처럼 되고, 많은 사람의 착시현상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공형과 민간형(시장·사회서비스) 일자리는 대상과 성격이 다른 일자리로 봐야 한다. 시장형·사회서비스형 노인일자리는 은퇴한 베이비부머 세대를 위한 이른바 ‘신 노년세대 맞춤형’ 일자리다. 지원 연령도 만 60세 이상으로 넓혔다. 민간형 일자리 예산은 실버카페 운영비를 지원하거나 노인을 고용하는 기업에게 인건비를 보조하는 데 쓰인다.

‘젊은 노인’을 타깃으로 한 일자리이기 때문에 75세 이상 고령자가 대부분인 공공형 일자리 참여자들이 진입하기엔 장벽이 높다. 현재 공공형 일자리에서 일하고 있는 김정태씨(가명·82세)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 중에서 일자리 나기만을 기다리는 분들도 많은데 없어진다고 하면 정말 큰일”이라며 “내 일자리도 없어질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공공형 노인일자리의 폐지 기준은 아직 정하지 않은 상태다. 내년 노인일자리 사업은 2개월여 뒤부터 모집을 시작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구체적인 일정과 폐지 대상에 대해서는 논의를 하고 있다”며 “지역별 특성에 따라 일자리 폐지 대상과 기준을 달리할 것”이라고 했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일반인들에게 27만원은 큰 금액이 아니겠지만 공공 일자리에 생계를 의존하던 노인들에게는 소중한 생계 수단”이라며 “상대적으로 더 취약하고 어려운 분들의 일자리를 한꺼번에 많이 없앤 것이어서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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