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소주병이 제법 쌓였을 때였다. 아빠는 김치찌개 돼지고기를 한점 입에 넣고 이야기 했다.
“ 세금 고지서 나오걸랑 그거 잘 챙경 전자렌지 위에 두라이.”
(세금 고지서 나오면 잘 챙겨서 전자렌지 위에 두렴)
아빠 부동산 명의에는 엄마도 아닌, 남동생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동생 이름으로 아파트 한 채도 있었다. 동생은 다 알고 있었고, 나는 몰랐다.
그때 나는 대학원 학비를 벌기위해 한달에 20만원을 받고 중국어 과외를 하고 있었다. 20만원 곱하기 몇을 하면 저 돈이 될까 잠깐 생각했다. 내가 100살까지 하루종일 과외만 해도 만져보지 못할 돈이었다.
그때의 나는 이미 세가지 사실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있었다.
첫 번째는 ‘부모님은 자신이 번 돈을 자신 마음대로 쓸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난 이미 성인이었고, 그 돈은 내가 번 돈이 아니었다. 두 번째는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부모님께 1억의 돈을 물려 받는다면, 10억의 돈을 스스로 벌 기회를 뺏긴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