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굴 위한 추경인가 [기자수첩-정책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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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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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코로나19 손실보상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안에 대해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데일리안 = 박진석 기자] 추가경정예산(추경)은 한 국가의 1년 예산이 확정된 후 생긴 부득이한 사유로 인해 이미 성립된 예산에 추가 변경을 가하는 예산을 말한다. 말뜻 그대로 기존에 편성한 예산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추가로 짜는 예산인 것이다. 소위 국가의 비상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통령 눈치를 볼 게 아니라 국민 눈치를 살펴야 한다”는 이유로 재차 추경 편성을 요구했다. 서민 추경이라는 명목인데 35조원 규모다.

이 대표는 “최근 국가부채보다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속도가 빠르다”며 “경제적 고통에 폭우와 태풍까지 이 어려운 현장에서 힘들게 삶을 꾸려가는 국민을 생각하면 당연히 추경으로 민생을 보듬고 국민 삶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이 공개한 추경 편성안은 총 30조원 규모 ‘민생회복 프로젝트’와 총 5조원 규모 ‘경제회복 및 취약계층 지원’으로 분류돼 있다. 고물가와 고금리·주거 불안 해결을 위한 민생 회복 추경, 미래 성장동력 확보·경기활력 충원을 위한 경제 도약 추경, 심화하는 경제 위기로부터 서민을 보호하기 위한 취약계층 보호 추경 등이 목적이라는 설명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본래 추경은 세입이 예상보다 크게 줄었거나, 예기치 못한 지출요인이 생겼을 때 편성하게 돼 있다.

국가재정법 제89조(추가경정예산안의 편성)에 따르면 전쟁이나 대규모 재해가 발생한 경우, 경기침체·대량실업·남북관계 변화·경제협력과 같은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에 사용이 가능하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지금 추경을 하는 건 민주당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기도 어려울뿐더러 시기 역시 적절치 않다. 일단 추경을 해서 돈을 지원한다고 하면 가구당 최대 100만원 수준, 혹은 그 이하일 가능성이 크다. 적은 돈은 아니지만 가계부채를 확 줄인다거나 삶이 갑자기 나아질 수 있는 수준의 금액은 아니다.

이렇게 빚을 내서 지원 받은 돈은 어차피 다시 갚아야 한다. 단순 계산으로 우리나라 국민(5155만 8034명)을 5000만명이라고 가정하고 35조원을 갚으려면 한 사람당 70만원씩 다시 내야 한다. 4인 가구 기준 280만원인데 비경제활동인구나 저소득층 등을 제외하면 사실상 70만원보다 더 많아질 수 있다.

또 이러한 지원은 결국 미래세대에 대한 부담으로 돌아온다. 대부분 가정에서 추경을 통한 지원을 받는다고 했을 때 내 아들이, 딸이, 우리 아버지가, 어머니가 나중에 그 돈 보다 되려 더 많은 돈을 갚아야 할 수 있다는 계약서를 써야 한다면 안 받을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본질을 봐야 한다는 소리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추경을 언급하는 것도 보기에 좋지 않다. 통상적으로 선거가 다가오면 정치권은 포퓰리즘에 혈안이 되기 때문이다.

이미 민주당은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보편 지급하는 기초연금법, 정부가 쌀값을 보장하는 양곡관리법, 학자금 무이자 대출법 등도 밀어붙이고 있다. 이것도 다 미래세대에 대한 노동력과 부담을 담보로 받아 세금으로 추진하는 법들이다.

현재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중심으로 정부 및 여당에서는 추경 편성을 거듭 반대하고 있다. 추 부총리는 “추경은 빚을 더 내서 빚잔치 하자는 말과 같다”며 “지금도 빚내서 사는데 더 빚을 내면 정말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추경에 대한 야당의 취지를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출산·고령화가 심각해 가만히 있어도 재정건전성이 위험한 상황에 미래세대를 위해서라도 (추경은)해서는 안 될 행위”라고 덧붙였다.

과전이하(瓜田李下)라는 말이 있다. 외밭에서는 신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뜻으로, 불필요한 행동을 해 다른 사람에게 오해받지 말라는 말이다.

추경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국민을 대리해 나라를 이끌어가는 국회의원들인 만큼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는 혜안으로 선택과 판단을 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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