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클래식 칼럼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겸 비올리스트로 활동 중인 박소현입니다. 네이버 블로그의 '프로그램 노트에 담긴 클래식'을 맛있게 각색하여 올리고 있으니 원글도 많은 사랑 부탁드리겠습니다^-^
'수플레 (Souffle)'는 달걀 흰자에 설탕을 섞어 만든 '머랭 (Meringue)'에 다양한 재료를 넣어 오븐에 구운 프랑스 요리를 뜻합니다. 보통 치즈를 넣으면 식사처럼 먹을 수 있으며, 바나나나 초콜릿과 같은 음식을 함께 넣으면 달달한 디저트로서도 일품인 음식이죠.
한창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고 전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무적으로나 권고, 또는 자발적으로 격리 생활을 이어갔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집에서 직접 요리하는 광기 어린 음식 챌린지가 유행하였는데요. 그 중 달고나 커피와 함께 가장 많이 유행하였던 음식이 바로 '1000번 저은 수플레 오믈렛'입니다.
비교적 요리 방법이 쉽고 우리가 흔히 접하는 달걀 부침 요리인 '오믈렛 (Omelet)'을 더욱 부드러운 식감으로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SNS에서 그 인증샷을 많이 올렸으며, 지금도 흔히 찾아볼 수 있게 된 음식입니다.
달걀의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한 후 흰자를 1000번 정도 저어 머랭처럼 거품이 부풀어 오르게 만듭니다. 이 흰자 머랭에 노른자를 섞어 기름이나 버터를 두른 후라이팬에 익혀주면 '1000번 저은 수플레 오믈렛'이 완성됩니다. 성향에 따라 흰자 머랭을 절반만 노른자와 섞어 구운 다음 남은 흰자 머랭을 나중에 넣어 크림의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이렇게 '1000번 저은 수플레 오믈렛'을 그대로 먹는 경우도 있지만, 기호에 따라 딸기나 바나나, 베이컨 등 다양한 부재료들을 함께 곁들여 먹기도 합니다.
팔이 빠질 듯 아프지만 기계가 아닌 직접 1000번을 저어 만드는 광기 음식 '1000번 저은 수플레 오믈렛'과 어울리는 클래식 음악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러시아 작곡가 '쇼스타코비치 (Dmitri Dmitriyevich Shostakovich, 1906-1975)'의 유일한 첼로 소나타 'Sonata for Violoncello & Piano in d minor, Op.40'은 어떨까요?
https://youtu.be/VNW2SEB8cp8
쇼스타코비치는 소비에트 연방 시절에 활동하던, 소련을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소비에트 연방 최고 회의위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거침없는 작곡 경향이 반영된 작품들은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경고나 금지령을 종종 받곤 했는데요.
쇼스타코비치는 후기 낭만의 특징을 지닌 음악뿐만 아니라, 12음계를 적극 수용하여 강한 대비가 두드러지는 음산하면서도 독특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해 나갔습니다.
그의 교향곡과 현악사중주, 협주곡 등 속에서는 스탈린과 소비에트 정부의 정책으로 예술활동이 억압받던 상황에도 풍자와 자유로운 감정 표현들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쇼스타코비치는 현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를 단 3개 작곡하였는데, 그 중 바이올린을 위한 작품이 2곡이며, 단 하나의 작품만을 첼로와 피아노를 위하여 작곡하였습니다. 쇼스타코비치의 유일한 첼로 소나타는 그가 28세였던 1934년, 자신의 친구이자 첼리스트였던 '빅토르 쿠바츠키 (Viktor Kubatscky, 1891-1970)'을 위하여 작곡하였습니다.
이 곡은 전형적인 소나타 형식을 지닌 4악장의 작품으로 현대적인 요소들을 이러한 고전적인 형식에 잘 섞어놓았기에, 쇼스타코비치의 작품 중 최고의 실내악 작품으로 평가하는 비평가들도 적지 않습니다.
1악장 'Allegro non troppo'는 전체적으로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난데없이 등장하는 생뚱맞은 음들로 인하여 이 평화가 침범받거나, 단조와 장조를 넘나드는 어지러운 분위기가 그려집니다.
2악장 'Allegro'에서는 열정 넘치는 리듬과 쿵쾅거리는 피아노의 진행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빼앗긴 듯한 첼로가 자신의 역할을 되찾기 위하여 피아노와 실랑이를 벌이는 듯한 표현들을 통하여 쇼스타코비치 특유의 삐딱한 풍자를 그리고 있습니다.
3악장 'Largo'는 드디어 고요한 암흑에 도달하였지만, 곡의 중반에 등장하는 야만성이 엿보이는 스케르초의 광기를 첼로의 낮은 저음으로 노래합니다. 이 악장에서는 피아노의 반주가 매우 소극적으로 포함이 되어 첼로의 음색만을 통하여 인간 세계의 공허함을 그리고픈 작곡가의 심리를 엿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악장 'Allegro' 역시 쇼스타코비치 특유의 반어법과 광기가 잘 드러나고 있는데, 특히 불협화음들과 협화음들의 공존을 통하여 우울한 듯 하면서도 유쾌한 쇼스타코비치 특유의 음악을 느낄 수 있습닌다.
쇼스타코비치의 첼로 소나타는 쇼스타코비치 특유의 심술궂으면서도 낭만적이며 난해한 음악 세계를 잘 느껴볼 수 있는 '쇼스타코비치의 광기'가 가득한 작품입니다. 우리가 '코로나 블루'를 이겨내기 위해 '참 쓸데 없지만 보통 하지 못하는 일들 하기'를 통하여 견뎌내었던 챌린지들을 대표하는 '1000번 저은 수플레 오믈렛'과도 많이 닮아있는 작품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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