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 헌재소장 ‘표결’과 野 책임[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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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6일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이래 언제 새 대법원장이 취임할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게다가 오는 11월 10일 임기가 만료되는 헌법재판소장 후임으로 이종석 헌법재판관이 18일 지명돼 국회의 임명 동의를 앞두고 있다. 내년 1월 1일 임기가 만료되는 대법관이 2명이나 있는데, 대법원장이 임명돼야 그 후임자 제청 과정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다. 대법관 1명이 사건을 연간 4000건 이상을 감당하는 현실에서 사법 기능의 마비까지 우려된다. 대법원장이 법관의 인사권을 가진 상황에서 앞으로 이뤄질 법관 정기 인사의 파행도 빚어질 수 있다.

사법부를 둘러싼 여야 간의 힘겨루기는 이제 일상화했다. 또,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는 사법 적폐를 청산한다며 새로운 적폐를 쌓아 올렸다. 울산시장 선거 청와대 개입 의혹 사건에서 1심 재판만 3∼4년 가까이 하고 있다. 김선교 국민의힘 의원 사건의 경우 2심이 끝난 지 3개월 만에 대법원 판결이 나온 반면, 최강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경우 기소된 지 3년8개월 만에 확정 판결을 내렸다. 공직선거 관련 소송은 우선적으로 180일 이내에 처리하라는 법률 조항이 있는데도 4·15 부정선거 관련 소송은 3년이 지나서야 1회 변론기일을 잡았다. 더구나 원고 측 입증 기회를 적절히 제공하지도 않고 기각 판정을 해 버렸다.

최고 사법기관이 정권 입맛에 맞게 사건을 고의로 지연시키고 입증 책임을 조정했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도입한 법원장 후보추천 제도는 법원장급 인사를 인기투표식 임명 시스템으로 운영했다. 법원장들이 일선 판사들의 재판 지연에 대해 눈치만 보며 업무 지시를 하지 않는 행태까지 낳았다. 추천 시스템에 의해 최다 득표한 법관 명단이 공개되지 않고, 대법원장이 자의적으로 법원장을 임명하는 상황이 일반화했다.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후보추천 제도가 코드 인사로 변질된 데 대한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지금 사법부는 중차대한 역사적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국회 다수당의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초대형 비리 혐의로 기소된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대장동·위례·성남FC 사건 재판은 그 정치적 의미를 떠나 대한민국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공직자의 기본 업무 자세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선거관리위원회는 국민의 투표 결과를 엄중하게 공직선거에 반영해야 할 직원들이 조직적 자녀 채용 비리를 일으킬 만큼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선관위가 일부 정치 세력의 부정선거에 관련됐다는 의혹에 대한 수사가 마침내 이뤄지고 있다. 이 사건들에 대한 재판에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사활이 걸려 있다. 사법부 수장의 공백 상태에서 신적폐까지 쌓인 가운데 이런 재판이 진행되게 해선 안 된다. 대법원 및 헌재 수장을 조속히 앉혀 사법 기능을 정상화시킨 후 객관적 사실과 추상 같은 원칙에 따라 판결이 내려지도록 해야 한다.

국회 다수당인 제1 야당은 대통령과의 힘겨루기용으로 사법부 수장 임명 동의 권한을 활용할 속셈부터 버려야 한다. 역사적 사법 임무를 수행할 적임자가 업무를 속히 수행토록 할 책임은 대통령과 국회의 공동 책임이다. 역사적 책임을 방기하는 정치인과 집단에 대한 준엄한 심판은 국민의 책임이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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