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 트럼프식 충성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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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웅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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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웅빈 워싱턴 특파원

“뱀과 배신자로 가득 차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는 지난 3년간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자택 회의에서 참모들에게 자신의 첫 행정부에 대해 이런 불평을 끊임없이 반복했다고 한다. 트럼프는 본인 정책에 반대하는 관료나 참모 때문에 방해받아 여러 일을 망쳤다고 여긴다. 자신이 임명한 정무직 관료들의 ‘불충’에 대한 그의 분노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그래서일까. 트럼프 측과 긴밀한 관계인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의 보수 재집권 전략 ‘프로젝트 2025’에는 말 안 듣는 관료를 대량 해고하고 가치를 공유하는 ‘찐 보수’로 대체한다는 계획이 담겼다. 재단은 내년까지 인재 데이터 풀을 2만명까지 채워넣기로 하고 지원자들을 선별 중이다. 지원서에는 찐 보수가 맞는지 확인하는 몇 가지 질문이 있다. ‘미국은 출신 국가에 따라 이민자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미국은 해외에서 강력한 군사 주둔을 축소해야 한다’ ‘미국은 관세로 소비자물가가 높아지더라도 제조업 일자리 회복을 위해 이를 부과해야 한다’는 등의 진술에 동의하는지를 묻는 식이다.

‘남녀 임금 격차는 편견과 차별의 결과다’ ‘연방정부는 변하지 않는 두 가지 성별, 즉 남성과 여성만을 정책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등 평소 트럼프를 흠모해 왔다면 답이 빤한 선택지 질문이 즐비하다. 자신의 정치 철학을 설명하고 이에 영향을 미친 사람과 책을 언급하라는 주관식 질문도 있다. 이력보다는 지원자들의 이념을 검증하는 리트머스 용지 같다.

인재 풀에 이름을 올리려면 그간 사용해온 SNS 프로필도 제출해야 한다. 심사 과정에서 SNS 활동 이력도 살펴보려는 것이다. 재단은 충성도 검증을 위해 인공지능(AI) 힘을 빌리기로 하고, 빅테크 기업 오라클과도 계약을 맺었다. 어떤 알고리즘으로 지원자를 선별하는지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집권 2기 트럼프 행정부의 얼개를 유추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분석가들은 “트럼프 권력의 한계를 테스트하는 데 불안해하는 지원자가 걸러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트럼프는 재집권만 성공하면 ‘찐’ 추종자로 둘러싸인 권력 장막에서 마음껏 극우 정책을 펼칠 기세다.

공화당도 이미 트럼프 귀환 준비에 한창이다.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경선 시작도 전 트럼프가 당 후보가 될 것이며, 그를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고 지지 선언을 했다. 공화당발(發) 하원의장 교체 사태는 극우 강경파와 마가(MAGA·트럼프 충성파)의 ‘케미’를 절묘하게 보여줬다.

양측 결합은 정치 회의론을 키우고 있다. 출범 1년도 채 되지 않은 118대 의회에서 의원 36명이 차기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달에만 의회를 떠나겠다는 의원이 13명이라며 공화당이 선동한 의회 기능 장애 시기와 맞물린다고 지적했다. 상호 비난과 비방을 늘어놓는 의원들이 점차 파워게임 중심에 들어서며 정치 본령이 무너지자 의원들의 의회 탈출 행렬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25년 넘게 하원을 지킨 얼 블루머나워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정계 은퇴를 선언하며 “이 일을 좋아하지만, 정치는 더는 그만한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켄 벅 공화당 의원도 “너무 많은 공화당 지도자가 2020년 대선을 도둑맞았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길을 잃었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들 빈자리가 의회에 새로운 역동성을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는 금물이다. 악시오스는 “은퇴 물결의 잠재적 결과는 트럼프의 마가 운동을 받아들이고, ‘다 태워 없애버리겠다’는 사고방식을 끌어들일 공화당원의 확산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선거를 충성파 등용문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성공할지는 미국보다 먼저 총선을 치르는 한국이 증명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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