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칼럼] 우주항공청이 제2의 국민연금이 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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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3.25. 오후 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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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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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항공청은 가고 싶죠. 그런데 사천까지 갈 생각하면 고민이 됩니다.”

얼마 전 만난 한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원의 이야기다. 지금 직장인 항우연이 자리한 대전에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이 연구원의 한 마디는 우주항공청이 가진 딜레마를 그대로 보여준다. 한국판 미국항공우주국(NASA)을 목표로 삼는 우주항공청이 넘어야 할 장벽이기도 하다.

우주항공청 설립 작업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달 말이나 내달 초에는 관련 특별법을 입법예고할 계획이다. 상반기 국회 제출, 연말 우주항공청 출범의 로드맵도 나왔다.

우주항공청은 일반적인 외청 형태의 공무원 조직이 아니라 민간 전문가 조직을 표방한다. 그런데 출범 전부터 회의적인 전망이 나온다. 입지 때문이다. 우주 분야 최고의 민간 전문가들을 영입하겠다는 우주항공청의 본부가 경남 사천으로 결정되면서 과연 뛰어난 민간 전문가를 영입할 수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최근 국민연금의 행보를 보면 단순한 기우로 볼 수도 없다. 국민의 노후자금 920조원을 굴리는 국민연금은 공무원보다 실제로 돈을 굴리는 민간 투자인력의 전문성이 중요하다. 그런데 국민연금의 작년말 운용직 현원은 319명으로 정원(380명)도 못 채웠다. 서울 여의도 한복판에서 억대 연봉을 받으며 일하던 사람을 전북 전주, 그것도 전주 시내에서도 한참 떨어진 곳에서 일하라고 하니 도무지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민연금의 최근 10년 수익률은 연평균 4.9%에 불과하다. 규모로는 국민연금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연기금 중에 꼴찌다.

기자의 고향은 경남 진주다. 1년에 몇 차례 고향을 갈 때마다 사천에 있는 삼천포나 더 멀리는 남해까지도 다녀온다. 사천은 산 좋고 물 좋고 볼 것 많은 곳이다. 그런데 한국판 NASA의 본부가 있어야 할 곳인가 생각하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정부는 사천에 있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함께 우주항공청을 묶어 우주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고 하지만, 정치적인 고려로 입지가 결정됐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미 결정된 입지를 바꾸는 건 불가능한 데다 불필요한 논쟁만 일으킬 것이다. 그렇다면 지방자치단체가 자신들이 우주항공청을 유치할 자격이 있는지 이제라도 입증해야 한다. 한 경제부처 고위공무원이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자자체들이 공공기관 유치를 위해 앞다퉈 손을 들고 정치권을 통해 온갖 압력을 행사하면서도 정작 유치한 공공기관이나 공공기관 직원들을 위해 교통비 감면이라도 해줬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우주항공청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민간 전문가의 영입이 필수다. 정부는 민간 전문가를 영입하기 위해 특별법에 각종 특례 조항을 넣으려고 고민하고 있다. 경남도와 사천시도 남의 일처럼 볼 게 아니라 지자체가 줄 수 있는 혜택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힘을 보태야 한다.

[이종현 과학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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