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반도체 통제에 흑연으로 맞선 中… 'K배터리'만 등 터지나 [뉴스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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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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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흑연통제 의도·전망

갈륨·게르마늄 수출 허가제 이어
12월부터 고순도 흑연 수출 규제
국내 흑연 수입 90%가량 中 의존
비용 탓 대체 수입처 모색 어려워
“에이펙 계기 제재 해소” 전망도

2025년 이후 물량 타국과 장기계약
다른 광물 규제 확대 가능성 우려
濠·加·칠레 기업과 투자 협력 강화


중국이 반도체 소재 핵심 부품인 갈륨, 게르마늄에 이어 이번엔 2차전지(배터리) 핵심 소재인 흑연 수출 통제 카드를 추가하며 ‘광물 무기화’ 전략을 점차 노골화하고 있다.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통제 조치가 일부 반도체 기업 대상 ‘잽’ 정도였다면 이번 흑연 수출통제는 각국 전기차 및 배터리 산업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제대로 ‘한 방’ 날린 것으로 평가되며, 특히 중국산 흑연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 더 큰 타격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중국 상무부와 해관총서(세관)는 20일 ‘흑연 관련 항목 임시 수출통제 조치의 개선·조정에 관한 공고’를 발표하고 이를 12월부터 적용한다고 밝혔다.
독일 잘츠기터에 위치한 폭스바겐 배터리셀 공장에서 한 연구원이 음극재 원료인 흑연 가루를 들어 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수출통제 대상 품목은 고순도(순도 99.9% 초과)·고강도(인장강도 30㎫ 초과)·고밀도(밀도 ㎤당 1.73g 초과) 인조흑연 재료와 제품, 구상흑연·팽창흑연 등 천연 인상흑연과 제품이다.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기존에 임시 통제되던 구상흑연 등 고민감성 흑연 품목 3종을 이중 용도 품목(민간 용도로 생산됐지만 군수 용도로 전환 가능한 물자) 통제 리스트에 넣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출 통제는 수출 금지와는 다르지만 흑연 제품 수출업자는 상무부에 수출 허가를 신청한 뒤 상무부와 국무원의 승인을 얻어야 제품을 수출할 수 있다.

흑연 수출통제 조치는 최근 미국이 발표한 추가 반도체 수출통제에 대한 맞불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17일(현지시간) 기존 수출통제 조치에 포함된 첨단반도체보다 사양이 낮은 인공지능(AI) 칩의 중국 수출을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추가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통제 조치를 내놓은 바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흑연 수출 통제는 한국 산업계에도 일정한 파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중국산 흑연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고, 중국은 흑연 매장량이 세계의 15%에 불과하지만 생산량은 60%에 달해 당장 대체 공급처를 찾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은 저렴한 인건비와 느슨한 환경규제 덕에 인조·천연 흑연 제품에 대한 높은 가격 경쟁력까지 확보한 나라다.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 허가제 때보다 상황이 더 심각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갈륨과 게르마늄은 반도체 소재 중 하나지만 중국의 규제가 한국 관련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다. 차세대 반도체에 쓰이는 갈륨은 아직 실험실 등에서 주로 쓰이며 사용되는 곳이 많지 않았고 게르마늄은 대체 수입처가 많아서였다.

이번 조치가 미국을 겨냥한 것인 만큼 한국 배터리 업계에 미칠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한국 배터리 제조사가 중국 기업과 다수의 합작회사를 구성한 상태라는 점도 긍정적인 전망의 배경으로 꼽힌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중국 야화, 거린메이 등과 함께 수산화리튬, 전구체 확보에 나서고 있으며 포스코퓨처엠과 LG화학 등도 중국 화유코발트 등과 함께 니켈, 양극재 합작공장 건설 등을 추진 중이다.

공급망 갈등의 두 축인 미국과 중국이 극적인 타협을 이룰 경우 12월 시행 예정인 수출통제 시작이 없던 일이 될 가능성도 있다. 미·중 정상이 대면하는 11월 샌프란시스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 정상회의가 그 변곡점이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릴리 맥엘위 중국 연구 석좌교수는 미국의소리(VOA)방송에 “(미국과 중국의) 두 조치 모두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미·중 간의 조치가 서로 맞불을 놓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전에 예측 가능했던 만큼 미·중 간 무역 정책의 소통법이 달라졌다는 것으로, 큰 문제로 확대될 가능성은 낮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중국어과)는 “미국도 8월에 이어 지난달 계속 제재를 추가하는 등 양국이 에이펙 정상회의를 앞두고 회담에서 꺼낼 수 있는 카드를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며 에이펙을 계기로 제재들이 해소될 수 있을 가능성을 점쳤다.
 
◆재고 확보 나선 국내 업계… ‘공급망 다변화’ 총력
 
중국이 이차전지 음극재의 핵심원료인 흑연 수출 통제를 발표하면서 국내 배터리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이번 통제가 질주하는 한국 배터리 산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2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난해 기준 2억4100만달러의 이차전지 음극재용 인조흑연, 천연흑연을 수입했다. 흑연은 이차전지의 4대 소재 중 하나인 음극재의 핵심 재료로, 한국은 거의 전량 수입한다. 중국 의존도는 93.7%다. 흑연의 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은 만큼 국내 배터리 업계의 타격이 불가피하다.
포스코퓨처엠 포항공장에서 한 직원이 음극재 원료를 만드는 흑연화로를 옮기고 있다. 포스코퓨처엠 제공
배터리 업계는 이번 조치가 수출 전면 금지가 아닌 수출허가 절차인 만큼 일단 예의주시하고 있다. 재고 사전확보 등을 통해 수입기간 지연에 대비한다는 입장이다.
 
앞서 중국이 지난 8월 첨단 반도체 소재인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을 통제하자 첫 달 중국의 수출량이 ‘제로(0)’로 떨어졌다.
 
국내에서는 포스코퓨처엠이 중국에서 수입한 흑연으로 음극재를 생산하고 있다. 포스코퓨처엠은 1.5개월치의 흑연 재고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배터리 기업들은 이 음극재를 이용해 배터리 완성품을 제조한다.
 
배터리 업계는 중국 외 국가 기업과 장기 계약을 통해 흑연 공급 확보에 대비해왔다. 이들 계약 물량은 모두 2025년 이후 국내에 들어올 예정이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지난달 아프리카에서 인상흑연을 연간 약 9만을 확보했다고 밝힌 바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 음극재 제조 기업인 노보닉스와 인조 흑연 개발을 진행 중이다. 삼성SDI는 호주 시라와 미국에서 천연흑연 음극재 공급을 위한 MOU를 맺었다.
 
업계는 중국이 향후 다른 광물로 규제를 확대할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 의존도가 높은 원재료를 중심으로 공급망을 다변화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최근 호주, 캐나다, 칠레 등의 기업과 협력을 강화하며 핵심 광물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으로, 전기차법(IRA·인플레이션감축법) 보조금 조건도 충족할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5월 호주 기업 그린테크놀로지메탈스와 리튬 정광 공급 및 지분 투자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을 통해 LG에너지솔루션은 5년 동안 그린테크놀로지메탈스가 생산하는 리튬 정광 생산량의 25%를 공급받는다. SK온은 호주 기업 레이크 리소스 지분 10%를 투자하고, 친환경 고순도 리튬 23만을 장기 공급받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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