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293개 단지 ‘무량판 구조’ 지하주차장, 초유의 대규모 점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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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08.22. 오후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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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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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이후 착공한 곳이 대상

주차장 무너진 검단 아파트 - 지난 5월 2일 인천 검단신도시 LH 아파트 지하 주차장 붕괴 현장에서 사고조사관이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하중을 지지하는 철근이 누락되면서 발생한 이 사고로 인해 정부는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LH 아파트 91곳을 점검했고, 앞으로 전국의 민간 아파트 293곳도 점검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공공 아파트의 지하 주차장에서 치명적 하자인 ‘철근 누락’이 다수 발견되자, 정부는 민간 아파트로 안전 점검 대상을 확대하기로 했다. 전국적으로 293개 단지, 추정 규모로 22만 가구가 입주한 아파트들의 지하 주차장 안전성에 대해 사상 초유의 대규모 점검을 벌이게 될 전망이다.

293개 단지 지하 주차장 안전 점검

국토교통부는 31일 “민간이 발주한 무량판 구조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대해서도 전수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점검 대상 LH 아파트의 16%에서 문제가 발견된 만큼, 민간 아파트도 안전하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국토부는 8월 말 발표를 목표로 철근 누락 여부를 집중 점검할 계획이다.

정부는 무량판 구조를 지하 주차장에 본격 적용하기 시작한 2017년 이후 입주했거나, 공사 중인 민간 아파트들의 주차장을 조사 대상으로 잡았다. 입주 완료된 아파트는 188곳, 공사 중인 단지는 105곳으로 파악됐다. 국토부는 이 아파트들에 입주한 가구 수에 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업계에선 대략 22만4000여 가구로 추산하고 있다. 분당신도시 계획 당시 주택 수(9만7500가구)의 두 배가 넘는 규모다. 한 가구 평균 2.34명을 기준으로 하면 51만여 명 국민의 주택이 대상인 셈이다.

그래픽=양인성

국토부는 주민들이 추천하는 안전진단 전문기관을 통해 1차 점검을 하고, 점검 결과 LH와 유사한 하자가 발견되면 정밀 진단을 통해 보수·보강 공사에 착수할 계획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점검 비용은 건설사들이 부담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주민들의 참여 여부다.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단지라면 시공사와의 협상을 통해 보수·보강 공사를 할 수 있지만, 이미 입주가 완료된 단지는 자체 비용(하자보수 예치금)으로 공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주민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철근 누락 사실이 공개될 경우, 집값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는 일부 입주민들이 이에 반대할 수도 있다. 김광석 리얼하우스 대표는 “과거 서울 일부 아파트에서 건설사의 하자를 폭로하려는 세입자 입주민과 집값 하락을 우려한 자가 입주민들이 대립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집값에 예민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하자 아파트로 낙인찍히는 것을 우려해 안전 점검이나 보수·보강 공사에 소극적으로 임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무량판 구조, 부실 단초됐나

이번에 드러난 ‘철근 누락’은 들어가야 할 철근을 일부러 빼돌려 팔아 챙기는 이전 사례와는 다르다. 이번에 빠진 철근은 꼬챙이 모양의 길다란 철근이 아니라 천장에 들어간 철근들을 서로 엮어 하중을 버티게 하는 ‘전단 보강근’이라는 이름의 부품이다. 실제 한 현장에서 누락된 ‘전단 보강근’을 팔아도 1000만원 남짓밖에 안 된다.

일각에서는 무량판 설계가 부실 시공과 붕괴 사고를 야기한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지만, 대다수 전문가는 ‘공법 자체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보를 설치하면 최소 60㎝ 정도의 공간이 필요하고 자재도 많이 들기 때문에 무량판이 공간 활용도나 시공비, 공사 기간 측면에서 유리하다. LH가 2017년부터 지하 주차장에 무량판 구조를 도입한 것도 원가 절감과 공기(工期) 단축이 목적이었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공법 자체만 놓고 보자면 무량판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제대로 짓기만 한다면 다른 공법들에 비해 오히려 장점들이 많은 공법”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25년 경력의 한 설계사는 “지난 정부에서 집값을 잡기 위해 공공 임대주택 공급 확대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LH 업무 과부하가 걸려 현장을 제대로 감독하지 못해 이런 불상사가 발생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한 건설 현장 소장은 “철근 사이에 보강근을 끼워넣는 작업은 다른 철근 작업에 비해 복잡하기 때문에 숙련도가 떨어지거나 의사소통이 잘 안 되면 제대로 시공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무량판 공법

보 없이 기둥 위에 지붕을 바로 얹는 방식이다. 기둥과 맞닿는 부위에 압력이 몰리면서 구멍이 뚫릴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보강하기 위한 철근(전단 보강근)을 시공한다. 건설 비용과 시간이 적게 들고, 공간을 많이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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