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김일성 神’ 지우는 김정은, 말기적 이상 증상

입력
수정2024.04.22. 오전 9:45
기사원문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 112돌을 맞은 15일 '수도의 거리마다에 경축의 환희가 넘쳐흐른다'라면서 보도한 평양 거리 사진. /노동신문 뉴스1

북한이 김일성에게 써왔던 ‘태양’이란 표현을 지워가고 있다. 노동신문 등은 지난 15일 김일성 생일을 ‘태양절’로 부르는 대신 대부분 ‘4·15′ 또는 ‘4월 명절’로 표기했다. 통일부는 “의도적 삭제”라고 분석했다. 김일성이 태어났다는 만경대도 ‘태양의 성지’에서 ‘애국의 성지’로 바뀌었다. 1997년 김일성 생일을 ‘태양절’로 이름 붙인 사람이 김씨 왕조 2대인 김정일이다. 김일성을 ‘태양’ 같은 신(神)적 존재로 우상화해 김씨 일가 독재를 정당화하려 했다.

김정은도 집권 초엔 김일성을 흉내 냈다. 김일성을 연상시키는 옷과 머리를 하고 나오더니 연설 스타일도 따라했다. 김일성처럼 “이밥에 고깃국”을 약속했고 “인민에게 미안”하다며 눈물까지 글썽였다. 부족한 권력 정당성을 신격화한 김일성 모방으로 메우려 한 것이다. 북 주민들도 상대적으로 괜찮았던 김일성 시대를 떠올리며 잠시 희망을 품기도 했지만 금세 지옥 같은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경제난은 날로 심각해지는데 김정은은 북·중 국경 1400km를 전부 철조망으로 막았다. 이젠 탈북조차 어렵다. 내부 불만이 팽창하고 있다.

이런 위기 속에 김정은은 김일성의 ‘신’ 자리를 자신이 차지하려 한다. ‘태양 김정은 장군’이란 플래카드가 등장했고 노동신문 등은 “주체 조선의 태양”이란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김정은은 올해 태양절에 참배도 하지 않았다. 북은 17일 평양 아파트 준공식을 맞아 ‘친근한 어버이’라는 제목의 김정은 우상화 노래를 발표했다. 그동안 ‘어버이’는 김일성을 묘사할 때 쓰던 표현이었다. 김정일도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김정은은 김일성의 ‘태양’과 ‘어버이’ 호칭을 동시에 제 것으로 만들고 있다.

태양은 모든 존재의 근원으로 넘볼 수 없는 권력을 뜻한다. 김정은은 김일성의 태양이 기울고, 자신이 뜨고 있다는 선전을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 권력의 근원이 김일성이다. 권력을 세습해놓고 김일성을 벗어나려 한다면 김정은의 권력 정통성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전근대적 김씨 왕조에서 벌어지는 말기적 이상 증상이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오피니언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