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ME UP
공연계의 미래를 기대하게 만드는 여섯 명의 배우를 만났다.
무엇이든 시작해도 좋을 봄날처럼,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이들의 이야기.
editor 이윤슬 photographer 문겨레
선유하
데뷔작 뮤지컬 <그림자를 판 사나이>(2019)
현재작 뮤지컬 <베어 더 뮤지컬>
배우로서 무대에 오른 첫 순간, 데뷔 무대는 어땠나요.
뮤지컬 <그림자를 판 사나이> 앙상블로 데뷔했어요. 등장하기 전 무대 뒤에서 공연의 첫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데, 제 심장 소리가 귀에 들리더라고요. 무대 위에 올라서 처음 조명을 받은 순간부터 그 공연이 끝날 때까지 내내 심장 소리가 멈추질 않았어요. 그걸 떨림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살아 있음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을 전환하니 희열감이 들더라고요. 요즘도 첫 공연 날 떨릴 때면 데뷔 날의 그 감각을 떠올리곤 해요.
처음 배우를 꿈꾸게 된 계기가 있나요.
중학교 1학년 때 친구 관계로 상처를 많이 받고 힘들었던 때가 있었어요.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수련회 장기 자랑 같은 무대에 서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그 시기 이후로 자존감이 낮아져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두렵더라고요. 그 과정을 엄마도 걱정스럽게 바라보셨어요. 그러다 저를 ‘마루’라는 청소년 극단 오디션에 데려가셨죠. 극단이 뭔지도 몰랐고 연기를 해본 적도 없었는데 무작정 오디션을 봤어요. 당연히 연기는 망했는데, 제가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니 뽑아주셨어요. 운 좋게 들어가서 함께 하는 언니, 오빠들에게 화술을 배우고, 무대에서 움직이는 법을 배웠어요. 그때 ‘우리 읍내’, ‘스카팽’ 같은 희곡도 많이 읽었습니다. 극단 활동 덕에 자연스레 꿈을 키웠죠. 연기를 시작하며 친구들에게 상처받았던 것도 많이 아물었어요. 이제는 오히려 고마운 마음도 들어요. 한때 되게 미웠지만 덕분에 꿈을 찾을 수 있었으니까요.
인상적이었던 오디션이 있나요.
이번 <베어 더 뮤지컬> 오디션이요. 제가 오디션 3수를 했거든요.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다!’ 하는 생각으로 봤어요. 그래서 더 후회 없이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오디션을 보고 나오는 길에 기분이 너무 좋은 거예요. 세 번 중에 스스로 가장 만족스러웠어요. 무대 연기와 매체 연기를 하나씩 자유롭게 준비해야 했는데,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일세와 넷플릭스 ‘더 글로리’의 혜정 역 대사를 학교 배경에 어울리도록 살짝 바꿔서 가져갔어요. 제 평소 이미지와 전혀 다른 분위기에 도전해 봤는데, 그 부분을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이번에 맡게 된 <베어 더 뮤지컬>의 아이비는 어떤 인물인가요.
대본을 읽으면 읽을수록 안타까워요. 겉모습은 차갑고 도도해 보이지만, 알아갈수록 참 감정 표현에 솔직하고 본인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이비의 가장 큰 결핍은 외로움이라고 느꼈는데, 그게 좋은 방법으로 치유되지 못해 마음이 아프죠. 아이비가 겪는 일을 경험해보진 못했지만 그 고통과 슬픔, 아픔을 더 진실하게 표현하고 싶어요. 제가 힘들었을 때 느낀 감정을 잘 대입해서 연기해보려 합니다.
학창 시절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와닿는 부분도 많을 것 같아요.
작품에서 학생들이 극중극을 준비하잖아요. 제가 예술고등학교에 다녔는데, 그때도 정기 공연이 있었고 오디션을 봤거든요. 이야기 자체가 제 고등학교 시절과 많이 닮아 있어요. 친구들과 선의의 경쟁을 했던 때가 떠올라서 좋더라고요. 사실 저 고등학교 다닐 때는 로리 캐릭터와 비슷했어요. 야무진 반장 느낌.(웃음)
지금까지 연기해 온 캐릭터 중 스스로와 가장 닮았다고 생각되는 건 무엇인가요.
최근에 했던 화가 시리즈의 뮤지컬 <에곤 실레>의 발리 역이 저랑 닮은 것 같아요. 순수하고 행복을 잘 느끼는 인물이거든요. ‘여름을 찾았어’라는 넘버를 엄청나게 좋아하는데요, 여름이 극 중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의미하지만 제게는 행복 같기도 했어요. 저는 계속해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거든요. 뭔가를 더 표현하려 애쓰지 않고 제 긍정적인 부분을 더해 연기할 수 있어 마음이 편안했어요.
앞으로 도전해 보고 싶은 작품이나 캐릭터가 있나요.
최근에 피지컬시어터 <네이처 오브 포겟팅>을 너무 재밌게 봤어요. 눈빛과 호흡, 움직임만으로 표현되는 작품을 처음 봤거든요. 다 같이 숨죽이면서 시간이 흘러가는 걸 보는데,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하더라고요. 꼭 참여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로 1인극을 처음 접했는데, 정말 경이로웠어요. 경력이 쌓이고 더 깊어진 다음에 도전해 보고 싶은 작품이에요.
데뷔 후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뮤지컬 <홀연했던 사나이>를 했을 때 제가 정말 자존감이 낮았어요. 첫 공연 이틀 전, 밤 10시에 연습이 끝났는데 개인적으로 연습실에서 더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노래가 너무 걱정되더라고요. 그때 (한)보라 언니가 “이틀 전에 누가 연습실에 가. 체력을 잘 비축해야지.” 하셨는데, 그래도 저는 불안해서 가보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언니가 저를 따라오신 거예요. 새벽 1시가 넘도록 알려주셨는데, 그 따뜻함이 너무 감사했어요. 덕분에 공연을 끝까지 무사히 한 것 같아요. 그때 기억이 잊히지 않아요.
배우로서, 또 개인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선함을 잃지 않는 거요. 그래야 제가 어떤 역할을 맡더라도 그 인물을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고, 또 제가 좋은 사람이어야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다고 생각해요. 아우라가 따뜻하고 선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10년 후의 선유하 배우는 어떤 모습일까요.
순간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지금처럼 차근차근 제게 오는 배역을 깊이 있고 진실하게 소화하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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