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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관리자는 계면활성제와 같은 존재

2023.02.13. 오전 8:00
by 더케이뷰티사이언스

Image by tirachardz on Freepik

중간 관리자는 계면활성제와 같은 존재

더케이뷰티사이언스, 2020년 10월호 80p

나용주 아모레퍼시픽 싱가포르 연구소 Open Innovation manager

우연이었다. 서점에서 이 책 저 책을 뒤적이던 날이었다.(효능 소재를 찾는 ‘스크리닝’Screening 과정이나 기술 트렌드와 업계 동향을 모니터링하는 ‘인텔리전스’Intelligence와 비슷한 일이다). 꽤 오랜시간동안 제자리에 서서 책을 들었다 놨다 하다 보니 조금 지쳤다. 이젠 땅위로 올라가야겠다 싶어 종종걸음으로 회전문을 향해 나섰다. 책이 수북이 쌓인 매대賣臺 끝을 거의 지나갈 때 였다. 그 틈새로 표지는 화려하지 않아도 눈길을 확 잡아 끄는 책이 있었다. 제목은 『나는 연구하는 회사원입니다』(레인북 출간), 부제는 ‘연구직 회사원이 부딪치는 필연적 고민들’이라고 붙어 있었다. 책 앞날개부터 펼쳤다. “국내 화장품 회사로 취직, 첫 직장에서 16년 넘게 연구직 회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연구직으로 근무하면서 화장품 소재 효능을 밝히고, 새로운 소재 가치를 발굴하는 업무를 주로 수행했다.” 저자는 나용주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 소속으로 싱가포르 APAC R&I 연구소에서 Open Innovation manager로 일하고 있었다. 이 책은 ‘다음Daum 브런치brunch’에 올려둔 그의 글 모음집이었다. 지난 9월 8일 현재 브런치 구독자는 5576명이나 된다. 필명은 nay. 나용주1 연구원에게 무턱대고 이메일을 보냈다. 인터뷰 하자고. 그는 세심하게 답변해 주었다.


1 나용주 연구원은 1975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생화학과(1994~1998년, 학사)와 카이스트 생명과학과(1998~2004 석·박사)에서 공부하고 2004년부터 현재까지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에서 일하고 있다. 주요 연구 내용은 ‘기미 개선을 위한 c-kit 저해제 개발’, ‘피부 미백을 위한 최적 제형개발 연구’, ‘아멘토플라본의 피부 항노화 연구’, ‘시스템 생물학을 이용한 모낭 스템셀 활성 연구’이다. 주요 논문은 다음과 같다. △Protective Effects of Amentoflavone on Lamin A-dependent UVB-induced Nuclear Aberration in Normal Human Fibroblasts, Bioorg Med Chem Lett. 2011 △Effects of Ortho-Dihydroxyisoflavone Derivatives From Korean Fermented Soybean Paste on Melanogenesis in B16 Melanoma Cells and Human Skin Equivalents, Phytother Res. 2012 △Depigmentation Effect of Kadsuralignan F on Melan-A Murine Melanocytes and Human Skin Equivalents, Int J Mol Sci. 2013 △A Systems-Biological Study on the Identification of Safe and Effective Molecular Targets for the Reduction of Ultraviolet B-induced Skin Pigmentation, Sci Rep. 2015 △Panax ginseng extract antagonizes the effect of DKK‑1-induced catagen-like changes of hair follicles. Int J Mol Med. 2017


화장품 연구원으로서의 생활과 고민을 소개한 책은 국내에 거의 없는데요.

2015년 7월부터 브런치brunch 플랫폼에서 꾸준히 글을 쓰고 있습니다. 회사 이야기를 다룬 작가와 글은 참 많은데, 회사 내 연구원을 다룬 내용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더군요. 저도 어느 정도 연차가 차고(현재 17년차), 지나 온 시간들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갓 회사에 입사했을 때를 생각해 보면, 아무 것도 모르고 학교에서 회사로 환경이 바뀌었는데 전혀 준비가 안되어 있었더라구요. 회사에서 좌충우돌 겪으며 나름대로 성장해 왔던 길을 다른 분들에게 안내해 드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결심을 하고 제일 처음 쓴 글이 ‘회사 연구원이 되고 싶은 사람을 위한 조언’이었습니다. 이후 시리즈로 쭉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계기라면 계기가 되겠네요

회사 소속 연구원이라 책을 내는데 힘들지는 않았나요?

운이 좋게도 제 글을 좋게 봐주신 출판사 대표님이 올 초에 출간 제안을 주셨습니다. 꼭 책을 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막상 제안을 받으니 기쁘면서도 당황스럽기도 하더군요. 출간 제안을 받고 제일 먼저 떠오른 것 중 하나가 회사 이야기를 책으로 내도 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회사는 원칙적으로 겸업은 제한을 두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사규에 어긋나는 것은 아닌가 걱정했는데 개인 블로그 운영에 따른 서적 출간 등에 대한 저작권에 대해서는 다행히 문제가 없었습니다. 아마 규정이 까다로웠으면 출간을 조금 망설였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브런치에는 공개적으로 제가 다니는 회사를 밝히지 않고 있어요. 현직에 있다 보니 개인 자격으로 글을 쓰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자칫 회사의 공식 입장처럼 오해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가급적 누구나 맞닥뜨릴 수 있는 상황, 조직 생활, 커리어에 대한 개인적 고민 등과 같은 보편적인 것으로 구성했어요. 화장품 회사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연구직 회사원이나 또는 일반 회사원이라면 다 같이 공감할 만한 내용이 되기를 바라면서 주제를 찾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글쓰기 노하우도 물어봤다. 나 연구원은 ‘진정성’을 꼽았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글쓰기의 노하우라면 ‘진정성’이 가장 우선될 것 같습니다. 독자를 끌기 위해 재미 있게 쓰려고 없는 사실을 만들거나 있는 것도 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저는 글을 잘 쓰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면 사실 별로 재미 없다고 느껴지거든요. 독자분들이 댓글이나 ‘좋아요’를 눌러주시면 무척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싱가포르 APAC R&I 연구소 주재원인데,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2018년부터 싱가포르 아모레퍼시픽 APAC R&I 연구소 소속으로 근무하고 있어요. 싱가포르에는 국립 과학기술청인 ‘A*STAR Singapore's Agency for Science, Technology and Research’를 비롯해 그 산하에 피부 연구에 전문성을 가진 ‘SRIS싱가포르 피부연구소’가 있습니다.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우수한 대학으로 불리는 싱가포르 국립대NUS와 난양공대NTUN엔 실력과 전문성을 가진 연구자들이 많습니다. 이곳은 많은 글로벌 회사들의 헤드쿼터HQ, 본부가 자리하고 있는 국제적 거점 도시이기도 합니다. 세제 혜택이 많아 기업활동에 유리한 나라구요. 창업을 하는 사람들도 많고 글로벌 네트워킹에도 많은 장점이 있어요. 이곳에서 Open Innovation manager로서, 화장품 개발이나 회사 비즈니스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외부로부터 찾고 있어요. 앞서 언급한 연구기관들과 교류하면서 신기술 발굴과 공동연구 창출에 관한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해외 주재원 생활을 하면 어려운 점도, 좋은점도 있을텐데요.

회사 일이 항상 그렇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요. 해외에서 일을 추진할 때는 그 벽이 더 높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해외에 있으니 아무래도 한국에 있는 본사 연구소에 있을 때보다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 해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아웃 오브 사이트, 아웃 오브 마인드Out of sight, out of mind(눈에 보이지 않으면 곧 잊혀진다)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꾸준히 본사와 소통하려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업무 조율도 더 많이, 그리고 상세히 하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좋은 점이라면 아무래도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되는 것이겠죠. 평생을 가도 한 번 마주칠까 싶은 해외 연구자들을 알게 되어 무척 기쁘게 생각합니다. 주된 목적은 솔직히 회사의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 파트너로 관계를 맺는 것이긴 합니다만, 크게 보면 우리 회사의 고객을 넓히는 길이라서 더 소중하게 대하려고 합니다. 또한 그들이 가진 연구자로서의 고민, 즉 학계가 아닌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개발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 등이 무척 보람된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각보다 회사가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굉장히 궁금해 하더군요.

이 책은 ‘연구직 회사원’을 위한 지침서라고 보아도 될듯해요. 화장품 기업에서 연구원을 정의한다면요.

회사 연구원이란 고객의 바람을 과학과 기술의 힘을 빌어 현실화 하는 능력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기능이 있는 핸드폰이 있으면 좋겠어’, ‘저런 효능의 화장품이 필요해’라는 ‘고객의 생각(또는 꿈)들을 어떤 기술로 어떻게 접근해서 해결해 주지?’라는 고민을 하고, 여러가지 지식과 실험으로 해결하는 임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이지요. 화장품 연구원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 회사의 소명을 조금 바꿔서 대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름다움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최초와 최고의 기술을 연구 개발하는 사람들’. 이 정도면 어떨지요?

화장품 연구원이기 때문에 힘든점도 있고, 보람도 있을텐데요.

회사 입사 이후에 거의 모든 근무 기간을 효능 연구(신규 타깃·기전 개발, 소재 효능 발굴 등)에 집중했습니다. 화장품은 의약품이 아니기 때문에 무엇보다 ‘안전’이 제일 우선이지요. 효능을 무작정 높이기만 하는 관점에서 본인 욕심만 부리면 안됩니다. 효능을 높이는 기술도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효능이 우수한 소재를 찾아서 개발하는 연구원, 타깃까지 효과적으로 전달을 높이는 연구원과 유기적인 ‘협업’을 해야만 합니다. 제형 개발 연구원과 아이디어를 나누는 건 당연하구요. 좋은 효능을 고객에게 잘 설명하고 전달하려고 해도 혹시나 오해를 사지 않도록 제한된 표현만 사용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보니, 규제나 제도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팀과의 협의도 무척 중요합니다. 어려운 점이라면 이렇게 각자의 입장이 다른 상황에서 각 개발 단계별로 필요한 조율이겠죠. 자신의 영역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판단을 해야 하다 보니 가끔 예기치 않은 갈등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사일로Silo, 조직 이기주의·칸막이 현상’이라기 보다는 자기 부서의 미션을 충실하게 수행하려다 생기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면서 합의점을 찾아 가는 과정에서 보람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다 통과해서 제품이 출시되고, 내·외부 고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으면 그 때가 가장 기쁜 때입니다. 특히 화장품의 고객은 바로 제 곁에 있는 아내나 부모님이 되니까, 바로바로 피드백을 들을 수 있어서 좋고요. 무엇보다 가족들에게 인정 받는 제품을 만드는 회사의 연구원이라는 보람이 무척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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