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되돌아 보는 74년 전의 ‘선거 십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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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4.09. 오후 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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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마침내 선거가 내일로 다가왔다. 예전과 비교할 때 이번 선거를 지켜보는 일은 참으로 피곤하고 짜증스러웠다. 선거가 정치적 변화와 개선에 대한 희망과 기대감을 주기는커녕 22대 국회에서는 얼마나 더 심하게 싸우고 대립할까 하는 걱정을 갖게 했다. 우리 정치의 질(質)이 나빠졌다는 것을 이번 선거 과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선거라는 것이 국회의원이라는 공직 담당자를 뽑는 일인데 주요 정당이 내세운 기억나는 공약이 솔직히 없다. 상대방에 대한 거친 비방과 공격만이 난무했다. 우리의 유능함을 강조하기보다 상대편에 대한 적대와 증오를 부추기는 선거 운동이었다. ‘저자들이 밉다면 우리를 찍어라’ 이런 선거 전략이었다. 주요 정당 대표가 대통령 탄핵을 공약처럼 내세우는 일도 처음 겪었다. 우리 당 지지자가 아니면 누구든 적으로 간주하는 거부와 배제의 정치가 지배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정서적 내전 상태’에 빠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정당 운영 후진성 보여줬던 총선
“인격도 교양도 보잘것없으면서…”
1950년 ‘이런 사람 뽑지 말자’ 운동
우리 정치는 그때보다 나아졌나

임기 중반에 실시되는 선거가 중간평가의 속성을 갖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만,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렇게까지 대통령이 선거 경쟁의 중심에 놓이는 일은 드물다. 소통과 공감이 부족한 윤석열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불만이 일차적 원인일 것이다. 윤 대통령으로서도 그간 자신의 통치 스타일에 대해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을 것 같다. 하지만 총선이 마치 대통령 선거 운동하듯이 진행되는 데에는 근소한 차이로 승패가 갈린 2년 전 대통령 선거 결과가 마음 깊이 받아들여지지 못한 탓도 있는 것 같다. 더구나 민주화 이후 예외적인 5년 만의 정권교체였다. 여기에 윤 대통령의 승자독식, 불통의 리더십이 불을 질렀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번 선거에서는 후보자보다 정당의 영향력이 훨씬 큰 것 같다. 정파적 양극화에 대선 같은 경쟁이 더해지면서, 엉망진창이었지만 각 당의 공천은 내부적으로는 비교적 큰 잡음 없이 끝이 났다. 불만이 있어도 이러한 ‘전쟁 같은 선거’에서 당의 승리를 위해 희생을 강요당했던 셈이다. 하지만 이번의 공천은 우리 정당의 검증과 평가라는 것이 얼마나 형식적인 것인지, 정당 운영이 얼마나 후진적인지 잘 보여주었다. ‘그 나물에 그 밥’이었던 국민의힘 공천도 문제였지만, 후보 선정 기준이 파벌이라는 이른바 ‘비명횡사’의 모습을 보여준 더불어민주당의 공천은 공직 후보 선정에 대한 정당의 공적 책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했다.

보스에 대한 충성심이 후보 선정 기준이 되다 보니 역량이나 도덕성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었다. 저잣거리의 장삼이사보다도 수준이 훨씬 낮은 언행을 보이면서도 부끄러움 없이 공직을 맡겠다고 나선 이들이 너무 많이 눈에 띄었다. 수신(修身)도, 제가(齊家)도 제대로 하지 못한 이들이 치국(治國)을 하겠다고 나선 모습이다.

이런 선거운동, 이런 후보들을 지켜봐야 하는 유권자는 괴롭다. 선거 막판까지 접전 지역이 많은 것도 이 당도 저 당도 다 마음에 들지 않는 유권자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투표하러 가기를 주저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투표를 안 하면 그만큼 내가 형편없다고 생각하는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은 더 높아질 수 있다. 좋은 후보를 뽑아야 한다.

우리 국민의 두 번째 선거였던 1950년 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성일보는 “이런 사람은 뽑지 말자”는 선거 캠페인을 벌였다. 1950년 5월 5일 자 신문에 게재된 ‘선거 십계명’이라고 지칭한 캠페인의 내용 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인격도 교양도 보잘것없으면서 권세나 돈으로 민중의 환심을 사고 또는 민의를 누르려 드는 자.” “국사는 제쳐놓고 국회의원을 명예직처럼 팔고 다니며 세도나 부리고 이권 운동에나 힘쓸 뿐 진실성과 책임감이 희박한 자.” “어느 정당, 단체 또는 배경의 도구로서 편협된 태도를 갖는 자.” “역사의 방향과 국내의 정세를 판단하는 지식이 부족하고 민의와 그 실정을 정확히 파악지 못하는 자.”

선거 십계명의 내용 하나하나가 내일 선거일을 앞둔 우리에게도 큰 공감을 준다. 이 문구를 읽다 보면, 민주화 40년이 멀지 않다고 하는 오늘날 우리의 정치가 과연 이때보다 나아지기는 한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선거 경쟁 때 죽고 살기로 싸우더라도 선거가 끝이 나면 결과를 받아들이고 타협과 합의라는 정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할 텐데, 그러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다. 선거 결과가 어떠하든 지난 2년간 보아온 것보다 더 심각한 여야 간 대립, 대통령-국회 간 충돌이 예상된다. 이번 선거운동을 보면서 느꼈던 피곤함과 짜증스러움이 앞으로 4년 내내 이어질 것 같다. 내일이 선거일이다. 선거 십계명에 한 번이라도 더 눈을 돌려 정말 좋은 후보를 뽑아야 한다. 결국 모든 결과는 유권자들이 짊어져야 할 책임이기 때문이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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