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위무사가 될 만하면 끌어안는다
조국혁신당과 복수혈전 연대 구축
박 의원에게 다시 기회가 왔다. 애초에 ‘희망고문’으로 정해진 것이었지만 정 전 의원의 공천이 취소됨으로써 박 의원에게 재도전의 길이 열렸다. 사실 운동경기라면 우승자가 실격처리 될 경우 차점자에게 그 자리가 돌아가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이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박 의원은 수모와 치욕을 감수하면서 다시 경선에 나섰다. 상대는 노무현재단 이사인 조수진 변호사였다. 박 의원은 득표수 30% 감산, 조 변호사는 25% 가산이라는 조건이라면 상식적 의미의 경쟁이 아니다. 게다가 전국 권리당원 70%·강북을 권리당원 30% 비율이 적용됐다. 전국 ‘개딸’들 동원령을 내린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이걸 민주당은 ‘시스템 공천’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그게 공정성·형평성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시스템을 손 안에 쥔 사람이 이 대표니까.
지난달 20일 박 의원 등에게 하위 10%를 통고했던 임혁백 민주당 공천관리위원장은 다음날 그렇게 결정한 근거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자신은 평가위원회로부터 최종 명단만 받았다고 답변했다. 그러니까 평가방식과 과정은 모르는 채 주는 명단을 가지고 통고를 했다는 말이었다. 명색이 공관위원장이라면서!
대선 후보 경선, 당 대표 경선의 경쟁자였던 박 의원은 절대로 키워줄 수 없다는 이 대표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공천 과정 및 결과였다는 게 보다 솔직한 답변이었을 것 같다. 민주당 식 시스템 공천이란, 자신이 속한 영역 안에서 라이벌은 만들지도 키우지도 않는다는 권위주의적 리더십과 동의어로 들린다. 잠재적 도전자 싹 자르기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런 이 대표도 경기도 안산 갑 경선에서 친문 전해철 의원에게 이긴 양문석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다.
당내에서 양 후보의 막말에 대해 심각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이 대표는 18일 “책임을 물을 것인지는 국민들께서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날 마포 갑 이지은 후보 지원차 연남동 경의선숲길에 갔다가 기자들의 질문에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어쨌든 이 대표의 정치 인식과 행태는 대의민주정치의 근간을 심하게 뒤흔드는 역풍이 되고 있다. 그는 공공연히 국회의원직과 당대표직을 자신의 사법적 보호막으로 삼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는 자신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기소 등을 가리켜 ‘검사독재’ ‘정치보복’ ‘야당탄압’ ‘검찰공화국’이라고 매도하며 당 소속 정치인들의 자신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부추겼다. 당내에서 ‘친명횡재 비명횡사’로 불리는 공천과정이 바로 그 예이다.
이 대표는 당내의 비명계 인사들은 아주 차가운 표정으로 쳐내면서도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와는 협력의 손을 잡았다. 조국은 당 밖의 인사이니까 당권경쟁이나 대선후보 경쟁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일까? 그 이전에 좌파 정치세력 안에 반이재명 전선이 형성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보이지만 그의 정치의식 단면을 보여주는 행보다.
조 대표는 지난 3일 창당대회에서 대표 수락연설을 통해 “개인적 수모는 견뎌낼 수 있지만, 윤석열 정권의 역주행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세력과 민주당 이 대표는 ‘윤석열 정권 폭정 종식과 심판’을 명분으로 손을 잡았다. ‘사인(私人)정치 연대’인 셈인가? 하긴 이 대표의 정치적 동인(動因)도 별로 다르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이-조의 악수는 복수혈전의 맹약으로 보이기도 한다.
자유민주정치는 그 유전자 속에 자기 파괴의 인자를 갖고 있다. 물론 다른 정치체제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인류가 찾아낸 가장 자유롭고 안전한 자유민주정치체제가, 바로 그 속성 때문에 파괴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새삼 전율하게 된다. 책임성·도덕성이 배제된 자유민주정치는 자유의 과잉·범람으로 파괴의 위기를 맞는다. 좌파정치세력이 그 집행자 노릇을 해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4·10총선이 그 답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