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전체에 잔혹한 결과, 위로드린다”···‘간첩 누명 사형’ 오경무, 56년 만에 재심서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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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10.30. 오후 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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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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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간첩으로 몰려 사형을 집행당한 고 오경무 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진 3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유족이자 사건 당사자인 동생 A씨와 변호인단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당시 시대적 상황 하에서 가족의 정에 이끌려 한 행위로 가족 전부에게 가혹한 결과가 발생하게 된 점에 대해 깊은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조병구)가 30일 고 오경무씨와 여동생 A씨의 반공법(국가보안법) 등 위반 혐의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하며 이같이 말했다. 1967년 4월 검찰에 의해 기소된 지 56년 만이다. 재판부가 “무죄”를 외치자 재판정에 앉아 있던 A씨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눈물을 흘렸다. 무죄를 선고받고 함께 기뻐해야 했을 오빠 오경무씨는 33세였던 1972년 4월 사형이 집행돼 세상을 뜬 지 오래다.

사건은 지난 1966년 6월 6·25전쟁 때 사라졌다고 들은 맏형 오경지씨가 오씨 가족에게 나타나며 시작됐다. 오경지씨는 “일본에서 돈을 벌 수 있게 해주겠다”며 남동생인 오경대씨를 배에 태워 북한으로 데려갔다. 오경대씨는 입북 닷새 만에 풀려났지만, 오경지씨로부터 서울에서 회사원 생활을 하던 셋째 형 오경무씨를 만나게 해달라는 협박을 받았다.

오경무씨도 납북돼 40여일간 각종 사상교육을 받고 풀려났다. 그는 자수할 생각으로 회사 사장에게 얘기했으나 간첩으로 신고돼 기소됐다. 오경지씨를 만나게 해준 오경대씨와 이들에게 편의를 제공한 여동생 A씨도 재판에 넘겨졌다. 일가족 전체가 간첩으로 몰려 풍비박산난 것이다. 반공법 위반 등으로 15년의 옥살이를 한 오경대씨는 2020년 11월 53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지난해 3월 가족의 명예를 회복하고자 오경무씨와 A씨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다. 검찰은 지난 재판에서 오경무씨에게 징역 8년을, A씨에게 무죄를 구형했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에서 제출한 증거들은 전체적으로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해 유죄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며 “진술과 제반 정황을 보면 유죄로 보기에 충분한 증명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불법체포, 불법감금, 고문 등 불법수사가 있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법률 개정 이후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점이 명백한 경우 처벌하게 돼 있는데, 피고인들이 이같은 행위를 했다고 단정하기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선고 직후 기자회견에서 “너무나 아까운 제 오빠가 형벌에 의해 (사망했다)”며 “힘이 없어 아무 것도 손쓸 수 없었는데 이런 결과가 나와 실감이 안 난다. 너무나 소중했던 오빠였기에 저희 가족들이 너무 많은 고생을 했다. 지금은 다 가시고 아무도 안 계신다. 저 혼자 받아들이기엔 너무 벅차다”고 했다.

변호인인 서창효 변호사는 “검찰은 재심 과정에서 이 사건이 북한 공작원이 관여된 안보 사건, 실체 있는 사건이라고 주장해왔지만 실체 없음이 밝혀졌다. 수사기관이 안보를 내세워 간첩조작 사건을 만들어왔고 이 사건도 그 중 하나”라고 했다. 그는 “오늘 재판부는 국가폭력 피해자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했지만 고인이 된 오경무씨는 다시 이 세상에 돌아올 수 없다. 검찰은 지금이라도 과오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유족들에게 사과를 다 하길 바란다. 함께 기소된 다른 친인척들에 대한 직권재심 청구를 요구한다”고 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재판부의 판결문을 살펴본 뒤 추후 조치를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고 오경무씨에 대한 사형집행조서. 변호인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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