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동안 숨겨왔던 보물 '코로나 때문에' 공개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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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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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만에 대장판전 개방하는 합천 해인사
국보 팔만대장경 직접 볼 수 있는 기회
주말에만 인원수 제한해 해설프로그램 진행


여름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함께 가기 좋은 국내 여행지를 찾고 있다면, 경남 합천을 눈여겨보자. 합천 여행은 가야산이 주인공이다. 홍류동 계곡을 따라 시원한 바람이 부는 해인사에 들러 팔만대장경을 구경한다.
경남 합천 해인사에는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다


한번 가봤다고, 너무 유명하다는 이유로 해인사를 외면하진 마시길. 지금 해인사는 전과 다르다. 600년 동안 굳게 닫혀있던 법보전의 문을 공식적으로 활짝 열고 주말마다 탐방객을 받고 있다. 법보전으로 들어가 교과서 속 사진으로만 존재하던 팔만대장경을 마주할 때는 전율이 느껴졌다. 오랫동안 전설로만 전해지던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팔만대장경의 의미와 가치는 둘째치고, 오래도록 금단의 공간이었던 법보전에 발을 디뎠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분되는 순간이었다.
해인사 장경판전 법보전 내부


‘팔만대장경’이라는 이름이 주는 힘은 강력하다. 대체 팔만 개의 목판을 어떻게, 왜 만들었으며, 800년이 넘는 동안 어디에 어떻게 보관을 했을까.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겨난다. 호기심을 안고 어렵사리 해인사까지 찾아갔지만 정작 보게 되는 건 나무 창살 안에 갇힌 팔만대장경이었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팔만대장경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나무 창살 안에 꼭꼭 숨겨진 모습이었다. 허나 이제는 다르다. 유네스코도 인정한 인류 최고의 보물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됐다.

금단의 공간이 개방된 건 2021년 6월부터다. 해인사는 대장경 순례프로그램을 통해 매주 주말 한정된 인원에게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법보전을 개방하고 있다. 대장경 순례프로그램은 해인사에 처음 가는 사람에게도 좋고 이미 다녀간 여행자에게 더더욱 추천한다.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문화재를 보호해야 하는 것이 맞긴한데, 너무 꽁꽁 싸매고 접근을 막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것 같다. 이번에 나무 창살 안으로 들어가 직접 팔만대장경을 보고 났더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팔만대장경 연구하는 스님의 인솔 아래 장경판전 곳곳을 다니며 이야기를 듣고 눈앞 10㎝ 거리에서 실물 대장경판을 마주한 순간 감동이 배가 됐다.

“지금 주지스님(현응)이 오시고 나서 공개를 결정했어요. 팔만대장경을 국민과 함께 향유해야 한다는 취지에서였죠. 코로나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국민들께 위로를 드리고자 했습니다. 실제로 일반 스님들도 장경판전 안으로 들어가 볼 기회가 적어요. 이 안은 오롯이 부처님의 공간입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 연구원 보존국장 일한 스님이 말했다.

해인사 대적광전


일주문을 지나 관음전과 범종각, 응진전과 석탑을 지나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보다 더 높은 곳에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장경판전이 있다. 1962년 팔만대장경이 국보로 지정된 이후 일반인의 장경판전 출입을 ‘공식적으로’ 막았다. 이후 큰 법회나 대장경세계문화축전 기간에만 한시적으로 개방했었다. 팔만대장경이 만들어진지 약 800년 만에, 해인사에 보관한 지 600여 년 만에 처음 일반에 공개하는 거다.

법보전 안으로 들어가 팔만대장경을 직접 볼 수 있는 '대장경 순례프로그램'은 해인사 홈페이지에서 신청 가능하다.


매주 토·일요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 회당 10~20명으로 제한해 탐방을 진행한다. 초등학생 이상만 참가할 수 있다. 해인사 일주문 맞은편 세계문화유산 표지석 앞에서 탐방을 시작해 일주문~국사단~대적광전~대비로전을 거쳐 장경판전 수다라장과 법보전까지 간다. 탐방 시간은 약 50분이다. 예약은 해인사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고 유의사항을 엄격히 따라야 한다. 법보전 안에는 물병 등 액체류, 라이터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사진 촬영도 안 된다. 대장경판은 물론 벽과 경판이 보관된 책장 등 무엇하나 손으로 만져서는 안 된다. 슬리퍼나 하이힐, 반바지와 민소매 티, 레깅스 등을 입은 사람은 법보전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해인사 일주문과 봉황문


너무 예민한 거 아닌가 생각이 들었지만, 그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국보 1호 숭례문이 방화로 인해 삽시간에 다 타버릴 줄을. 실제로 팔만대장경은 줄곧 협박에 시달려왔다. 지난 5월에는 프로그램이 중단되기도 했다. 한 남성이 문화재청에 ‘팔만대장경에 불을 지르겠다’는 협박 전화를 걸어왔기 때문이었다. 해인사는 유난히 불에 많이 탄 절이기도 하다. 802년 신라 때 창건된 것으로 알려진 해인사는 여태까지 7번이나 전소된 적이 있다. 신기하게도 전소됐을 때마다 장경판전만은 온전히 살아남았다.

해인사 장경판전


장경판전은 총 4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대적광전 뒤로 난 계단 위에 직사각형 형태로 건물 네 개가 모여 있는데 이곳이 장경판전이다.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건 수다라장이다. 수다라장 현판 아래 입구 모양이 독특하다. 아래로 갈수록 점점 넓어지는 넙데데한 원 모양이다. 일명 연화문이다. 연화문은 일 년에 딱 두 번 춘분과 추분 날 오후 2시쯤에만 볼 수 있다. 처마의 굴곡을 따라 그림자가 져 마치 연꽃 모양으로 빛이 들어오는 것 같은 모습이 된다.
장경판전 수다라장 앞에서


수다라장 안으로 난 길을 통과하면 정면에 법보전이 양 측면에 사간판전이 있다. 팔만대장경은 수다라장과 법보전에 보관하고 사간판전에는 고려각판이 모셔져 있다. 여기까지가 기존 해인사를 찾았던 사람들이 보던 풍경이고, 이제는 한 걸음 더 들어간다. 일한스님이 다시 한번 주의사항을 일러주고는 법보전 문을 열었다.

“흔히 팔만대장경이라고 부르지만 정식 명칭은 ‘고려대장경’입니다. 몽골의 침략으로 초조대장경이 소실되고 다시 만들었다 하여 ‘재조대장경’이라고도 불렸죠. 고려대장경이 해인사로 온 건 태조 7년, 1398년의 일입니다.”
해인사 장경판전


일한 스님이 팔만대장경이 가지런하게 꽂힌 서가 앞에 일행을 한 줄로 세워두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실제로 마주한 팔만대장경은 방대했다. 길이 60m, 폭 9m 건물 두 채를 가득 채울 정도였다. 벽에는 두 개 층으로 나눠 살창(나무로 살을 대어 만든 창)을 냈다. 건물 앞면 창은 위가 작고 아래가 크고, 뒷면 창은 그 반대다. 큰 살창을 통해 건조한 공기가 건물 안으로 들어와 골고루 퍼진 후에 밖으로 빠져나가도록 하기 위한 장치다. 바닥은 황토, 석회, 숯 소금을 가지고 깊이 60~90㎝로 다졌다. 지금도 현대적인 설비 없이 건물이 알아서 온도와 습도를 조절한다. 나무로 만들어진 경판이 600여 년 동안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다. “천장이나 창틀 한번 보세요. 거미줄 하나 없죠. 제가 아는 한 20년 동안 특별히 작업한 적이 없어요.”
법보전 내부


공간을 설명한 다음 스님이 경판을 꺼내 보여줬다. 가지런히 글자가 새겨진 보물이 눈앞에 놓였다. 고려대장경은 총 8만1258여 매다. 부처님의 설법과 계율, 부처님 말씀을 해석한 주석 등의 내용을 망라해 ‘불교계의 백과사전’이라 불린다. 경판은 가로 70㎝, 세로 24㎝, 평균 두께가 약 4㎝다. 경판을 쌓으면 높이가 3250m에 달한다. 백두산보다 약 506m가 높고 가로로 늘어놓으면 그 길이가 약 57㎞가 되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경판 양쪽 세로 부분에는 손잡이(마구리)를 달았다. 경판보다 약 5㎜가 두껍게 제작돼 경판을 겹쳐놓았을 때 바람이 통하는 공간을 만들어준다. 총 5200만 자의 글자가 새겨졌는데, 한 글자 파고 세 번 절하고를 반복했다고 한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글자를 판 거다.
법보전 앞에서 설명 중인 해인사 팔만대장경 연구원 보존국장 일한스님


설명을 다 듣고 스님을 따라 법보전 내부를 한 바퀴 돌아봤다. 장경판전에는 전기 시설이 없다. 인터넷 공유기처럼 생긴 기계들이 곳곳에 보이는데 이것은 풍향풍속계다. 10분 단위로 데이터가 연구원으로 전송된다. 요즘 연구원에서는 기후 문제가 대장경판 보존에도 영향을 줄 것을 대비하기 위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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