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덕 칼럼] 기강도 리더십도 무너진 여성가족부… 폐지가 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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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11.28. 오후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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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버리 사태로 추락한 여가부
폐지·존속 政爭만 이어지며
사실상 방치, 기강 무너져
‘인구가족평등본부’로 축소?
책임은 권한에서 나오는 것
아무 힘 없던 金장관이 알 것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8월 7일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뉴스1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12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이정옥 당시 여성가족부 장관의 발언권을 여야 합의로 금지한 것이다. 전체 회의 동안 의원들은 장관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장관은 인사말조차 할 수 없었다. 입만 열면 망언(妄言)한 것이 이유였다. 이 장관은 ‘오거돈, 박원순 사건이 권력형 성범죄냐’는 질문에 “수사 중인 사건의 죄명을 규정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했고, 그로 인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비용 800억원은 “국민이 성(性) 인지성에 대한 집단학습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해 여론을 들끓게 했다.

이정옥 장관이 촉발한 여가부 폐지 논란의 정점은 2023년 김현숙 장관이 찍었다. 새만금 잼버리 대회의 졸속 책임을 묻는 기자들에게 조직 위원장인 그가 “세계스카우트연맹에, 전북도에 확인해 보겠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영상은, “잼버리 사태로 대한민국의 위기 대응 역량을 전 세계에 보여줬다”는 발언과 짝을 이뤄 희대의 조롱거리가 됐다. 현안 질의가 예정된 여가위엔 아예 나타나지 않아 장관을 찾아 나선 위원들에게 쫓겨 대변인이 화장실로 도망치는 촌극이 펼쳐졌다. 부끄러움은 여성의 몫이었다.

8월 25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권인숙 위원장과 야당 의원들이 전체회의에 출석하지 않는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을 찾아 국회를 돌아다니다 만난 여가부 대변인에게 장관의 위치를 묻고 있다./연합뉴스

여가부는 어쩌다 폐지돼도 마땅한 부서가 됐을까. 이정옥 전 장관의 또 다른 실언대로 “국민의 이해력이 부족해서”인가. 내부 사정을 들어보니 회복이 가능할까 우려될 만큼 조직의 기강이 와해 직전이었다. 잼버리 사태에 책임지고 물러나도 시원치 않을 고위 간부들이 “지도 감독을 못 한 건 맞지만 예산 집행은 조직위 사무국 책임”이라며 면피할 궁리만 한단다. 그뿐인가. 온 국민을 경악하게 한 신림동 성폭행 살인 사건에 발언해야 할 여가부는 단 한 줄의 입장문도 내지 않았다. 뜨거운 감자가 될 ‘필리핀 가사도우미’ 이슈에도 여가부가 어떤 논평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여가부를 거쳐간 공무원들은 태생적으로 허약한 맨파워를 지적한다. 위원회였던 조직이 김대중 정부 때 정책 집행 부서가 되고 노무현 정부 때 급속히 확대되면서 ‘여가부에선 웬만큼 숨만 쉬면 과장 된다’는 우스갯말까지 생겼다. 현장 경험 많고 일 잘하는 인재들을 발탁했다면 문제가 안 된다. 무능해도 명문대나 고시 출신, 혹은 운동권 연줄이면 초고속 승진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잼버리 파행의 실질적 책임자인 조직위 사무총장은 386세대 국회 보좌관 출신으로 문재인 정부 때 국장으로 승진했다가 퇴직 후 이정옥 전 장관에 의해 사무총장 자리를 꿰찬 인물이다.

맨파워가 약해도 강력한 리더십이 작동하면 조직이 무너지진 않는다. 그러나 역대 정권마다 여가부 장관은 대부분 선거 공신, 또는 대통령 내외와의 친분으로 임명됐다. 공보육 틀을 잡고, 호주제 폐지, 성매매방지법 제정을 주도한 지은희 외에 이렇다 할 장관이 떠오르지 않는 이유다. 그나마도 지 장관은 박원순에게 침묵하고 윤미향을 지지하면서 변질된 여성운동의 상징으로 지탄받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여가부 안에 부서의 운명을 걱정하는 직원은 많지 않다고 한다. 거대 야당이 폐지를 막아주는 데다, 설령 문을 닫더라도 작고 힘없는 여가부보다 크고 힘 있는 부서로 가는 게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유일한 걱정은 서울 아닌 세종시에 있는 부처로 통합될까 봐서라니, ‘웃픈’ 일 아닌가.

한목소리로 여가부 폐지를 반대하던 여성계도 잼버리 사태를 기점으로 의견이 갈리는 분위기다. 존속만이 능사는 아니란 얘기다. 거론되는 대안은 두 가지다. 우선, 독일의 ‘노인·가족·여성·청소년부’처럼 노인·인구 문제를 포괄하는 부서로 개편하는 방식이다. 정책 대상을 확장해 국민의 체감도를 높이고, 최악으로 치닫는 저출산 고령화 문제에 다각도로 접근해 해법을 모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대통령 직속 성평등 위원회’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방법도 있다. 다만 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위원장을 부총리급으로 하고, 정부 각 부처에 국장급 성평등 담당관을 두어 관리 감독이 철저하게 이뤄지도록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 독일의 경우 정부와 공공 기관은 물론 대학, 기업들까지 성평등 담당관이 의무적으로 포진돼 모든 정책 결정에 참여한다.

분명한 건, 현 정부가 제시한 복지부 산하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는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구, 가족, 성평등을 아우르는 방대한 정책이 일개 본부장의 지휘 아래 굴러갈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책임은 막강한 권한에서 나온다. 대통령이 폐지를 선언한 부서에 장관으로 취임해 아무런 권한도 없이 극도의 자기모순을 겪으며 만신창이가 된 김현숙 장관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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