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전쟁’이 일깨운 정치개혁 과제[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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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성 前 한국교원대 총장

이승만 재인식 관객 100만 육박

사실 왜곡해 南 정통성 부정한

친북 역사관과 종북 척결할 때

3·15 악몽에 사라진 부통령제

러닝메이트 방식으로 살리면

헌정 위기와 정치 불안 줄일 것


김덕영 감독의 영화 ‘건국전쟁’이 관객 수 100만을 바라본다. 상영관에서 사라졌던 권순도 감독의 ‘기적의 시작’도 소환됐다. 다큐멘터리 작품들인데도 보고 나면, 절로 눈물이 흐르고 박수가 터진다. 감동과 회한이 겹치기 때문이다.

음미할수록, 민족의 운명을 어깨에 걸머지고 맹수들이 으르렁거리는 정글을 헤치며 희망과 번영이 넘치는 대한민국을 찾아 나서는 이승만의 늠름한 모습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더불어, ‘런(run)승만’으로 대표되는 왜곡된 그의 이미지를 바로잡지 못하고, 한반도 분단의 책임을 그의 1946년 정읍발언에 덮어씌운 사악함을 물리치지 못하고, 4·19혁명 때 다친 대학생들을 찾아가 울먹이는 그의 순도 높은 인간미를 감싸지 못한 미안함이 가슴을 후빈다.

이제 건국사의 재인식 필요성을 국민이 깨닫기 시작했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에 대한 재평가를 서둘러야 한다. 위대한 건국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로 비웃었던 돼먹잖은 친북 역사관을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한국사의 정통성이 북한에 있다는 듯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과 ‘친지김동’(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을 부르짖었던, 살인적인 독재 체제 추종 세력은 도려내야 한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추억은 우리가 풀어야 할 정치 제도적 과제도 안겨줬다. 우리의 정치제도는 처음부터 정치 혼란을 잉태하고 있었다. 대통령제를 버리고 내각책임제로 바꾼 적도 있다. 그러나 내각책임제는 곧바로 사라지고, 부통령 없는 대통령제가 되살아났다. 문제가 있다. 기회가 되면, 러닝메이트의 부통령제를 도입해야 한다.

부통령제가 사라진 것은 1960년 3·15 부정선거의 악몽 때문이다. 대다수 국민이 잘 모르고 있지만, 3·15 부정선거는 대통령 선거에서 일어난 게 아니다. 그것은 부통령 선거에서 일어났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무투표 당선이 확정된 상태였다. 상대 후보였던 조병옥 박사가 사망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부통령 선거에 있었다. 자유당의 부통령 후보였던 이기붕은 상대 후보인 장면 박사에 비해 인기가 형편없었다. 선거 부정을 하지 않으면 당선될 수 없었다.

당시에 정·부통령이 러닝메이트제였다면, 부정선거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자유당은 이기붕을 당선시키려고 선거 부정을 저지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으므로. 상대 당의 대통령 후보가 사망했으니까, 더 언급할 필요도 없다.

건국헌법에서부터 정·부통령을 따로 뽑게 돼 있었다. 두 후보가 뜻을 같이할 때는 문제가 없지만, 달리할 때는 갈등할 수밖에 없다. 권력 수뇌부의 갈등은 거대한 정치파동으로 번지곤 했다. 초대 부통령 이시영은 국민방위군 사건을 빌미로 대통령을 비판하고 사임했다. 제2대 부통령 김성수도 부산정치파동을 겪고 나서 대통령을 비난하는 장문의 사퇴서를 발표했다.

미국에서는 부통령이 처음부터 대통령의 러닝메이트였다. 부통령은 제2인자로서 대통령을 보좌하고, 유고 시에 대통령직을 인수하게 돼 있다. 갑작스러운 권력의 공백을 메울 대체 권력이 있었으므로, 건국 이래 한 번도 권력 수뇌부의 정치 갈등을 겪지 않았다. 건국 230여 년 동안 4년마다 매번 선출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렸다. 대통령이 4명씩이나 암살됐지만, 정기적인 대통령 취임식을 거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대통령제의 정치 안정은 러닝메이트제에 달렸다. 우리는 러닝메이트제를 운영하지 않았기에 겪지 않아도 될 정치 혼란에 시달렸다. 제1공화국에서는 정·부통령이 정치 갈등의 정점에 서거나, 정·부통령의 직접선거에 야당의 1인자가 부통령 후보로 나와서 당선되기도 했다. 제4공화국에서는 대통령이 암살되자, 권력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쿠데타를 맞았다. 제6공화국에서는 부통령제의 부재가 정치 불안정의 원인이 되고 있다. 대통령이 탄핵되면, 곧바로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야 한다. 그러니 대통령을 탄핵하겠다는 정치 위협이 일상사가 됐다.

건국헌법을 제정할 때, 정·부통령을 러닝메이트로 묶지 않은 건 미스터리다. 만일 제7공화국을 세우게 된다면, 반드시 러닝메이트의 정·부통령제를 채택해야 한다.

김주성 前 한국교원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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