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명시적 임금차별’ 외국인 도우미가 저출생 해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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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03.23. 오전 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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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16일 가사노동자들이 제9회 국제 가사노동자의 날을 맞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념 기자회견을 열어 코로나19로 인해 재난 사각지대에 몰린 가사노동자의 법적 권리와 생계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임금차별을 명시한 시대착오적 법안이 지난 21일 국회에 제출됐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을 위한 가사근로자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것이다. 곧바로 ‘현대판 노예제’를 만들겠다는 것이냐는 비판을 샀다. 공동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의원 2명(김민석·이정문)이 비판 여론에 불참 의사를 밝혀 하루 만에 법안은 철회됐다. 그러나 조 의원은 뜻을 굽히지 않고 추가로 공동발의자를 찾아, 22일 다시 법안을 제출했다.

법안 취지는 “최악의 저출산 문제”에 직면해 “맞벌이 청년 세대에 현실적인 해결책”을 주기 위해, 싱가포르처럼 월 70만~100만원 수준의 저렴한 비용으로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외국인 인권도 문제지만, 이런 시도가 저출생 해법이 될 리도 만무하다. 육아휴직 보장, 노동시간을 줄여 일·가정 양립 지원, 믿고 맡길 수 있는 공공 돌봄서비스 확충 등 정공법을 놔두고 변칙에 의존하자는 것이다. 사례로 든 싱가포르도 저출산 대책이 아닌 인력 부족 차원에서 이 제도를 활용해왔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싱가포르 저출산 대응 분석 보고서를 보면, “부모가 자녀와 시간을 더 많이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가 더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싱가포르의 합계출산율은 2011년 1.2명에서 2021년 1.12명으로 떨어졌다.

무엇보다 열악한 노동조건과 인권침해 등에 시달려온 외국인 노동자 보호 입법도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놓고 차별적 요소를 법안에 넣자는 건 이해가 안 된다. ‘값싼 인건비’에만 관심을 쏟으면 더 큰 사회적 부작용에 직면할 수 있다. 해당 업종 내국인 노동자의 임금에도 영향을 미친다. 내국인도 가사서비스 제공 기관을 통하지 않으면 근로기준법 적용을 안 받는다. 정부 연구용역 보고서도 외국인 도입에 앞서 처우 개선으로 국내 유휴인력을 먼저 활용하라고 제안한 바 있다. 주목도를 높일 요량으로 ‘저출산 대책’을 아무 데나 갖다 붙여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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