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태의 요가로 세상 보기] 97. 효율적인 요가 수련을 위한 4대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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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를 수련하기 위해선 좋은 자질을 지닌 올곧은 요가 지도자, 요가를 할 수 있는 공간, 경제적 여유, 함께 수련할 수 있는 친구 등 4가지 요소를 갖추면 좋다. 사진은 수리야 임은주의 요가 수업 장면.


이제 요가는 더 이상 스승과 제자 간에 일대일로 은밀히 전해져 내려오던 전통적인 수행 방식이 아니다. 다수를 위한 대중성과 보편성을 띄며 많은 이들이 요가를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요가 수련을 위해 필요한 4대 요소가 있다. 이는 법(法), 재(財), 지(地), 려(侶)이며, 그 첫째가 법(法)이다. 범어로 ‘다르마(dharma)’라고 한다. 한자어로는 ‘달마(達磨)’라고 쓴다. 일반적으로 정의, 도덕, 의무, 질서를 뜻하나 존재 의미의 뜻으로도 쓰인다. 지금은 법이란 단어로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들어 우리의 행동 반경을 결정짓고 있다. 또 다른 의미로는 진리를 뜻하기도 한다.

다르마는 카르마(karma)와 마찬가지로 인도 신화와 인도 철학에 나오는 주요 개념이다. 그러면서 고대 수메르의 메(me)와 중국의 도(道), 이집트의 마트(matt), 르타(rta)처럼 존재하는 사물의 본질적 법칙이자 우주 삼라만상의 질서와 같은 것이며,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의무와 같다.

원래 다르마는 인도의 종교 사상과 불교의 중요한 개념이다. 이 말은 유지한다, 지지한다를 의미하는 동사의 어원 ‘dhri’에서 파생해 그런 작용을 실체화한 명사로 유지하는 것, 지지하는 것의 원뜻이다. 원칙을 지키는 것, 더 나아가 우주의 질서(rita)를 지키는 것이 바로 다르마를 따르는 것이라고 한다. 다르마가 각 개인에게 적용되는 용어로 사용될 때에는 카르마, 즉 인간 행위의 업(業)이라는 뜻과 밀접한 관련성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 행위의 규범으로서 다르마는 카르마라는 인간 행위를 수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의롭고 올바른 행위, 곧 선업(善業)을 행한다는 것은 바른 다르마를 수행하는 길이다.

다르마가 가장 흔히 사용되는 용례는 불법(佛法)인데,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법륜(法輪)이란 말도 ‘불법의 수레바퀴’라는 말의 줄임말이다. 인도 철학의 다르마는 서사 문학에도 등장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이다. 인도의 고전인 이 두 책은 모두 왕과 신하, 통치자와 백성,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이 지켜야 할 각각의 다르마를 흥미진진하게 엮어 가고 있다.

먼저 라마야나는 주인공 라마왕과 그의 아내 시타가 처해 있는 시련의 이야기다. 왕과 왕족은 무사 계급인 크샤트리아 계급의 카스트인데, 크샤트리아인 라마왕에게 주어진 다르마는 나라를 지키고 백성의 평화적 생존과 번영을 책임지는 것이었다. 라마는 끝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다르마를 지켜 후세에 ‘다르마의 왕(Dharma Raja)’이라는 호칭을 얻게 된다.

라마야나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의 마지막 장면도 왕이 지켜야 할 다르마의 진수를 보여 준다. 판다바스라 불리는 가문의 다섯 형제가 카우라바스라 불리는 100여 명의 형제와 전쟁을 벌여 승리를 이끈다. 마하바라타의 마지막 장면에서 판다바스의 다섯 형제는 모든 전쟁과 선정(善政)의 다르마를 완수하고 히말라야로 간다. 그곳에 천상의 세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인도 신화에서 야마(Yama)신은 다르마의 화신으로 나타나 개의 모습으로 다섯 형제를 끝까지 따라다닌다. 히말라야 천상을 향해 가던 다섯 형제의 장남 유디슈티라는 항상 그 개를 지켰다.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강자의 다르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마침내 천상의 입구에 도착했을 때, 유디슈트라는 그 개를 데리고는 천상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통고받는다. 그러나 유디슈트라는 그 개를 돌보아야 하는 다르마를 끝까지 지키려고 천상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한다. 이것이 마하바라타의 마지막 이야기다. 왕이었던 유디슈트라가 개라는 미물을 지켜야 하는 다르마를 실천하기 위해 천상의 복락도 포기한 것이다. 이러한 것이 인도 철학이 강조하고 있는 다르마의 가르침이다.

우리가 어떤 책임을 맡든지, 어디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든지, 그 책임을 맡은 사람은 본인에게 주어진 카르마를 직시하고, 부여된 다르마를 실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꿀벌로 태어났으면 최상급의 꿀을 만들어서 그것으로 세상을 달콤하게 만들어야 하며, 또한 꽃을 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해야 한다. 소로 태어났다면 풀을 먹고, 최고 품질의 우유를 만들어 내어야 하는 것이며, 송아지에게만 젖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고기를 먹지 못해 단백질이 부족한 이들에게 충분한 영양분을 보충해 줘야 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타오르며 자신을 불태워야 하는 카르마를 지닌 태양이 그렇게 자신을 소진시키면서 다른 생명에게 온기를 불어 넣어주는 다르마를 실현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수행하는 데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무늬만 요란한 요가가 아닌 올바른 가르침, 즉 정립된 요가의 법(法)과 그 법(法)을 실천하는 능력, 자질을 지닌 올곧은 요가 선생님, 요가 지도자, 요가 강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본인의 요가 지도자 문하생들 뿐만 아니라 많은 요가 지도자들이 요가의 밝은 빛을 온 세상에 보다 멀리 넓게 펼쳐 보인다는 확고하고도 굳은 사명감을 갖고 진솔하게 요가 수업에 임하는 모습을 기원해 본다.

비시야 김미선의 요가 수업 장면.
비시야 김미선의 요가 수업 장면.


두 번째는 재(財)이다. 요가 수련을 하려면 많든 적든 어느 정도 경비가 든다. 재는 아르타(artha)라고 한다. 아르타는 보통 재물, 혹은 부(富)를 의미하지만 넓게는 권력, 명예, 사회적 인정, 영향력 따위의 사회적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포함한다. 아르타는 인도 철학의 네 가지 목표 중 하나인데, 아르타라는 단어는 문맥에 따라 말 그대로 의미, 감각, 목표, 목적 또는 본질로도 번역된다. 아르타는 삶의 수단, 원하는 상태에 있도록 하는 활동, 자원을 모두 내포하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고대 인도의 몇몇 문서들은 욕망의 충족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임을 암시한다. 어떤 것은 부를 포함하고, 어떤 것은 권력을 포함하고, 박티(bhakti)학파의 어떤 것은 신을 사랑하는 도구를 포함시키기도 한다.

카마수트라의 바츠야나는 예술, 토지, 소, 장비, 친구를 획득하는 것을 아르타라고 정의했다. 그는 아르타는 이미 획득된 것의 보호이기도 하고, 보호되는 것의 증가이기도 하다고 설명한다. 인간의 생존과 번영은 아르타, 즉 경제 활동, 부와 그 창조, 세속적인 성공, 이익, 정치적 성공, 그리고 인간의 존재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필요로 한다. 종합하건데, 아르타는 즐겁고 행복한 삶에 필요한 활동과 수단을 추구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건전한 부(富)의 창출이야말로 우리 인생에서 정당한 행위임을 뜻하고 있다. 맹자 역시 ‘항산(恒産)은 항심(恒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일정한 재산이나 생업이 있어야 변치 않는 마음이 생긴다는 말이다. 성경에도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했다. 건전한 부의 창출이야말로 우리 인생에서 정당한 행위임을 뜻하고 있다.

세 번째로 지(地)는 요가 수련 또는 수행할 수 있는 공간, 시설을 말한다. 보통 요가원을 지칭한다. 범어로 아쉬람(ashram)이라고 하는데, 종교적인 은둔 수행이나 교육에 사용되는 곳, 영적인 지도자가 거처하는 곳을 말한다. 요즈음은 요가원, 문화센터, 주민자치센터, 체육관, 헬스센터, 평생교육원, 학교 내 특활반 등등 모두를 아쉬람이라고 칭할 수 있다.

인도의 아쉬람은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첫째는 영적인 스승을 중심으로 수행자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를 뜻한다. 둘째는 아쉬 라마로서 인생의 네 가지 단계를 말한다. 고대 베다 시대부터 인도인들은 사계절의 변화처럼 인생을 4단계로 나눠 생각하고 그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이상적인 삶으로 여겼다.

인도의 리시케시(rishkesh) 강 주변에는 아쉬람들이 즐비하게 자리하고 있다. 옴카라난다아쉬람, 베드니케탄아쉬람, 파르마뜨아쉬람, 비틀즈아쉬람 등을 들 수 있다. 아쉬람은 한마디로 수행자가 머무는 수행처, 수행자의 동굴, 수행자의 초막, 암자, 도량, 도장 등이라 볼 수 있다. 영적인 피정의 장소이기도 하다. 요즘은 자기만의 공부방이나 자기만의 창작 활동 등을 하는 작업실, 공간 등을 아쉬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쉬람의 원래 뜻이 수행에서 왔듯이 사람의 일생 동안 활동하는 모든 행위와 공간들이 넓게는 자기 수행이나 자기 공부, 자기 발전에 해당되기에 이 모두를 아쉬람이라 볼 수 있다.

영화 아쉬람(2010)은 부산국제영화제, 토론토국제영화제 등에서 상영됐으며, 세계 유수의 영화제와 비평가들의 호평으로 세계 영화팬들을 감동시켰다. 이 영화의 진정성과 아름다운 영상, 몽환적인 인도 전통 음악이 알려지며 지금도 많은 영화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영화는 교리에 따라 바라나시 아쉬람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름다운 미망인에게 찾아온 운명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다. 또한 여성 차별이 강한 인도 사회를 고발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인도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보기를 권해 본다.

마지막으로 려(侶)는 도반(道伴), 즉 같이 수련 또는 수행하는 사람을 일컫는 바, 같은 길을 함께 간다는 의미에서 이 또한 대단히 중요하다 할 것이다.

중인도 베나레스 교외의 사르나트에 위치한 곳으로,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후 다섯 비구들을 상대로 처음으로 설법을 했던 곳인 녹야원(鹿野苑)이 있다. 사슴 동산이라고도 한다. 위없는 깨달음을 증득한 부처님이 법(法)을 전해 주기로 결심하였을 때, 그 대상으로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들은 한때 그가 스승으로 섬겼던 두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이 이미 세상을 떠났음을 알게 된 부처님께서 다음으로 떠올린 사람들은 보드가야에 도착하기 직전까지 함께 고행하며, 수행하였던 다섯 도반들이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로 하여금 눈과 마음을 열 수 있도록 하셨다. 여기서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들이 가까운 처자식, 부모, 형제, 친구, 친척 등이 아닌 도반이었다는 점을 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 도반은 단순히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깨달음이란 공통의 목표를 추구하고 함께 실천해야 하는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요즘은 도반이라는 말이 각종 산행 단체나 취미 동호회를 비롯해 ‘함께 길을 가는 사람’이라는 넓은 의미로 일반에 확산돼 사용되고 있다. 같이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도 도반이고, 인생의 반려자인 부부도 도반이며, 나이와 성별, 종교를 뛰어넘어 삶의 향기를 주고받는 관계도 도반인 것이다.

이러한 도반의 다섯 가지 유형으로는 △꽃과 같은 도반 △저울과 같은 도반 △바위와 같은 도반 △산과 같은 도반 △땅과 같은 도반이 있다. 꽃과 같은 도반이란, 꽃이 피어서 예쁠 때는 그 아름다움과 찬사를 아끼지 않지만 꽃이 지고 나면 과감히 버리듯이 본인이 필요할 때만 찾는 도반, 달콤한 말과 헛웃음, 가식적인 미소와 웃음이 특징인 경우가 많다. 배신도 서슴없이 행한다. 살아가면서 이런 도반, 제자, 지인을 만난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인간에 대한 회의에 온몸이 얼어붙는다. 동시에 나 자신은 혹 어땠을까 돌아보게 된다.

두 번째로 저울과 같은 도반이란 저울이 무게의 경중에 따라 이리저리 기울듯 자신의 이익 유무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도반, 달면 삼키고 쓰면 가차 없이 뱉는 유형이다.

세 번째로 바위와 같은 도반이란 항상 믿음과 정의가 한결같아 누가 뭐래도 진리를 믿고 바위처럼 묵묵한 유형이다.

네 번째로 산과 같은 도반이란 깊고 큰 산이 온갖 날짐승과 생명체를 품어 주듯이 언제 어떤 경우라도 나를 믿어 주고 내 편에 서 줄 듯한 도반으로, 생각만 해도 편안하고 마음 든든하다.

마지막으로 땅과 같은 도반이다. 땅이 생명의 싹을 틔워 주고, 곡식을 길러내며, 누구에게도 조건 없이 기쁜 마음으로 은혜를 베풀어 주듯,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를 지지해 주고, 격려해 주며, 든든하게 지켜주는 도반을 말한다.

그렇다면 내 주변에는 주로 어떤 유형의 도반들이 있을까? 또한 나 자신은 다른 도반들께 어떤 도반으로 비치고 있을까? 한 번쯤 되돌아 볼 일이다.

뭐든 능력 닿는 대로 베풀고 있을까? 자신보다 도반을 먼저 생각하고 챙기고 있을까? 혹 상대 도반의 언행에 일희일비하며 속을 끓이고 있지나 않았을까? 백 번 잘하다가 한 번의 섭섭함으로 오래된 인연도 한 순간에 비틀어지기도 하는 게 범부들의 일상적인 만남의 관계라 한다면, 도반이라는 말이 조금은 허허로울 듯 하다.

“좋은 도반을 만났다는 것은 공부의 모든 것을 이룬 것과 같다”는 부처님의 말씀처럼 요가를 수행하는 이에게 도반은 더없이 소중한 인연인 것을. ‘진정한 도반은 서로를 존중하고 귀히 여기며, 서로를 키워 나가는 것이다’고 할 것이다.

미국의 한 재산가가 자기의 죽음을 직감하고 변호사에게 본인 사후에 장례식을 새벽 4시에 치러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고는 그날 장례식이 끝나면 개봉하라는 유서를 남긴다. 얼마 후 그 재산가가 사망하자 새벽 4시에 장례식이 치러졌다. 그때 참석한 인원은 많은 지인들, 도반들 중 고작 네 사람에 불과했다. 사실 새벽 4시에 장례식에 참석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장례식이 끝난 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려와 준 네 사람 앞에서 밀봉된 유서가 개봉됐다. 거기에는 자기의 재산을 참석한 사람들에게 똑같이 나누어 주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에게는 그의 재산을 물려줄 상속자가 없었던 것이다. 네 사람은 엉겁결에 각기 1000만 달러(약 1200억 원)씩의 유산을 받게 됐다. 그 후 네 사람은 고인을 기리며, 받은 유산을 다시 모아 도서관과 고아원 등을 건립하여 사회에 환원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재산가에 그 도반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도반은 수의 많고 적음보다는 그 깊이가 더 중요하다는 예시일 듯하다.

수행이 힘들 때 서로를 격려해 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수행의 길을 걷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법정 스님은 “진정한 도반은 내 영혼의 얼굴이요, 내 마음의 소망에 응답하는 것이며, 도반 사이에는 말이 없어도 모든 생각과 기대가 소리 없는 기쁨으로 교류된다”고 했다. 우리 모두 ‘잎 떨어져 나무에 귀를 대는 조각달처럼 사랑으로 침묵하면서 서로를 들을’ 귀하고도 소중한 도반이 서로에게 됐으면 좋겠다 .

오늘도 쾌적하고 안온한 요가 수련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요가 수련에 필요한 4대 요소인 법(法)·재(財)·지(地)·려(侶)가 어느 정도 충족됐다는 말일 것이다. 이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한 피가 되고 살이 되어 나의 튼튼하고 멋진 근골격의 육신과 풍요로운 영혼을 갖도록 일조해 주는 이 은혜롭고도 축복된 요가 수련 시간을 최대한 만끽할지어다. 오늘 이 순간이 내 인생에 또 한 번의 ‘화양연화’인 듯이 말이다.

비시야 김미선의 요가 수업 장면.


[요가 수련 4요소]

무늬만 요가 아닌 올바른 가르침의/정립된 요가 정법(正法) 그 법(法)을 실천하는/눈 밝은 요가 지도자 으뜸으로 손꼽는다

요가의 밝은 빛을 온 세상에 펼치려는/속 깊은 사명감과 자질 인성 두루 갖춘/올곧은 요가 선생님 두 손 들어 환영하오

적절한 아르타는 현대인의 필수품임/수고의 보답이며 노동의 대가 일세/일하지 않는 자들은 먹지도 말라하네

즐겁고 행복한 삶에 필요한 활동이며/그 수단을 추구하는 행위라 한다지요/건전한 부의 창출은 인생사 정당행위

요가 수련 할 수 있는 공간인 아쉬람이/이리도 손쉬웁게 눈에 띄는 모습 보면/참으로 복 받은 시대 살고 있다 생각되오

요즘은 자기만의 공부방도 작업실도/아쉬람 칭한다네 아쉬람 원래 뜻도/수행에서 왔다 한다네 산다는 게 수행이지

부처님 증득한 후 제일 먼저 떠오른 건/처자식 부모형제 친구들도 아니었네/옛 도반들 미명 깨우려 녹야원에 첫 발걸음

나이 성명 종교 인종 뛰어넘는 삶의 향기/주고받는 관계마저 도반이라 칭한다네/그중에서 제일 큰 자리 차지함은 부부지간

오늘 찾은 아쉬람서 안온한 요가 수련/4대 요소 감사하는 마음일랑 잊지 마오/은혜롭고 축복된 시간 최대한 만끽할 저

최진태 부산요가지도자교육센터(부산요가명상원) 원장 gi7171g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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