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제4의 대전환』은 현실 탐구의 매력을 발산한다. 일찍이 ‘밀레니얼 세대’라는 말을 주조한 이론가답게 하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고조기, 각성기, 해체기, 위기라는 80년 미국 사회의 빛과 그늘을 ‘베이비붐 세대, X세대, 밀레니얼 세대, Z세대’의 등장과 결합해 조명한다. 내 시선에 걸린 것은 이러한 순환론이 우리 사회 분석에 던지는 함의다. ‘압축 발전’ 국가답게 우리 민주화 시대도 40년의 한 순환을 마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주목하려는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해체기와 위기에 대응하는 ‘후기 민주화 시대’의 초상이다. 이 시대를 특징지어온 것은 비전과 현실의 거리가 갈수록 멀어져 왔다는 점이다. 비전은 선진일류국가(이명박 정부), 국민행복 시대(박근혜 정부), 정의로운 대한민국(문재인 정부),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윤석열 정부)을 앞세웠지만, 현실은 경제적 저성장, 정치적 포퓰리즘, 사회적 불안, 저출생·고령화의 도전과 마주했다.
해체기의 경고음이 뚜렷이 들려온 시기는 2015년이었다. 이 해를 뒤흔든 담론은 청년세대의 ‘헬조선론’과 ‘수저계급론’이었다. 기득권화한 정치체제, 둔화된 경제성장, 구조화된 불평등, 양극화한 시민사회, 약화된 공동체 문화는 헬조선론과 수저계급론을 새삼 수긍하게 했다. 그때부터 적지 않은 국민은 우리 사회가 정체돼 있거나 후퇴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됐던 것으로 보인다.
머잖아 11월에 윤석열 정부는 반환점을 지난다. 지난 절반 임기의 성적표를 상징하는 것은 9월 13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평가율 20%다. 앞선 정부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20%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통치가능성의 하한선이다. 남은 절반의 임기에 반전의 기회가 주어질지 모르겠지만, 윤석열 정부는 점점 통치불가능 상태로 다가가고 있다.
어느 정부든 반환점을 돌아서면 그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 전반기에는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이, 후반기에는 현재의 시간과 미래의 시간이 교차한다. 더욱이 현재의 시간이 곤궁할 때 미래의 시간은 일찍 열리기 마련이다. 적지 않은 국민의 시선은 어느새 2027년 3월 다음 대선으로 옮겨가고 있다.
마침 4·10총선 이후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먹사니즘’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격차 해소’를 새로운 집권 플랜으로 내놓고 있다. 구체적으로 이 대표는 ‘에너지고속도로’ 등 신산업 정책과 중산층을 위한 조세 정책을, 한 대표는 ‘파이 키우기’와 교육·문화·지역·자산 등 격차 완화를 부각한다. 양극화된 정치 질서에서 중도층을 향한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역사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 ‘위기’의 민주화 시대는 저물고, ‘고조기’의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것이다. 이 대표와 한 대표의 목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세훈 시장, 홍준표 시장, 이준석 의원, 김동연 지사, 김부겸 전 총리, 김경수 전 지사에게도 묻는다. 당신들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