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만 되면 코끼리들이 모여드는 신비한 동굴 [우간다 엘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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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세계여행
맨콩캠프로 가는 길에 통과하는 세네시오 군락지. 초록의 생명체들이 도열한 모습이 마치 병정들이 서있는 느낌이다.
케냐와 우간다의 국경에 위치한 엘곤산Mount Elgon은 지구상의 모든 사화산 중 가장 넓은 표면적을 자랑하며, 동아프리카에서 4번째로 높은 산이다. 최고봉은 우간다에 있는 와가가이Wagagai(4,321m).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이었지만 침식으로 인해 킬리만자로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었다. 산의 길이는 80km에 달하며, 주변 평원보다 3,000m 이상 높다.

동아프리카의 다른 등반 코스와 달리 엘곤산의 트레일은 일 년 내내 방문이 가능하며 전문 등반 장비가 필요하지 않다. 아프리카의 다른 트레일보다 혼잡하지 않아 방해받지 않고 멋진 풍경을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트레킹 중에 동굴, 희귀새, 다양한 식물 등을 관찰할 수 있다. 특히 300종 이상의 조류가 서식하고 있어서 조류 관찰자와 사진작가들에겐 무척 흥미로운 곳이다.

우간다의 엘곤산에는 다양한 트레일이 있다. 시피Sipi 트레일은 시피에서 시작해 부시이Bushiyi에서 끝나는 적당히 도전적인 순환 트레일로 4~5일이 소요된다. 부시이Bushiyi 트레일은 짧고 강렬하고 3~4일이 소요된다. 피스와Piswa 트레일은 가장 길고 하이킹하기 가장 쉬운 코스로 피스와에서 시작해 부시이까지 5~6일이 소요된다. 3~7km의 당일 트레일에서도 엘곤산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으니 엘곤산의 트레일 정보를 찾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우연하게도 우간다에서 코이카KOICA 활동을 했던 분의 도움으로 현지인을 소개받았고, 엘곤산국립공원을 예약할 수 있었다. 트레일 코스는 시피 트레일로 올랐다가 최고봉인 와가가이를 거쳐 부시이 트레일로 하산하는 3박4일 일정이다. 다른 아프리카 고산 트레킹과는 달리 엘곤산국립공원에서는 공원 퍼밋과 함께 스카우트, 포터, 셰프까지 직접 배정한다. 물론 비용은 국립공원 입산 비용과는 별도로 방문자가 모두 부담한다.

밤이면 코끼리들이 소금을 먹기 위해 몰려드는 투툼동굴.
소금 먹기 위해 몰려드는 코끼리들

들머리는 엘곤국립공원의 캅와이숲탐험센터Kapkwai Forest Exploration Center. 시피에서 캅와이숲탐험센터까지는 오토바이로 이동했다. 지난밤에 세차게 내린 비로 캅와이숲탐험센터로 가는 길이 엉망이다. 오토바이도 지나가기가 어려울 정도. 결국 오토바이에서 내려서 질퍽거리는 길을 걸어 올라간다. 한 발 걸을 때마다 진흙이 등산화에 덕지덕지 달라붙어서 발을 떼기조차 힘들다. 캅와이숲탐험센터는 언제 도착하려나?

캅와이숲탐험센터에 도착해서 국립공원 입장료를 지불해야 하는데 현금은 안 되고 카드나 모바일로만 지불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카드 리더기가 방전이 되어서 카드결제가 어렵고 현금은 받을 수 없다니 참으로 난감하다. 30분이 지나도 별다른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방문객이 하루에 한 명도 없을 때가 허다하니 이런 문제가 그들에겐 그리 심각하지 않다. 당연히 대응책 또한 없다 더 늦어지면 첫날 캠핑 장소까지 이동이 여의치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곳이 아프리카임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투어에이전시 마이트가 내가 지불한 달러를 가지고 타운으로 나가서 입금하는 것으로 일단락 짓고 입산 수속을 마쳤다. 국립공원 직원인 피터가 가이드 겸 스카우트, 셰프 수리. 그리고 포터까지 4명이 한 팀이다. 입산수속 때문에 시간이 너무 늦어져서 오늘은 아무리 빨리 걸어도 해지기 전에 캠핑장까지 도착하긴 힘들 것 같다.

2,700~4,200m의 고산지대, 끝없이 펼쳐지는 사바나평원에 세네시오가 가득하다.
우거진 숲 사이의 오솔길은 힐링하기 딱 좋은 길이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나무들이 등로를 막고 쓰러져 있다. 치울 수 있는 나무들이 아니어서 돌아 가야 하는 곳도 꽤 많다. 게다가 이정표가 하나도 없다. 스카우트가 없으면 길 찾기 어려운 곳이다.

캅와이숲탐험센터에서 투툼동굴Tutum cave 캠프까지 왔다. 보수작업 중이라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바람만 피할 수 있는 장소에서 장작을 때서 식사를 만들어 주었다. 케냐, 에티오피아, 탄자니아 모두 가스를 썼는데 엘곤에서는 나무를 땐다. 그만큼 우간다가 다른 아프리카에 비해서 더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있다.

엘곤산의 여러 동굴 중 가장 큰 투툼동굴에 도착했다. 투툼동굴은 산의 심장부를 향해 200m나 뻗어 있고 그 끝은 케냐 땅이다. 거대한 투툼동굴은 케냐에서는 키툼Kitum이라고 부른다. 해발 2,667~3,383m에 위치한 키툼은 케냐의 마사이 족 말로 '의식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뜻. 이곳 원주민들이 악천후 때 은신처로 사용하기도 했지만 부족들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면 성소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동굴이 유명해진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이곳에 코끼리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밤이 되면 코끼리 행렬이 숲의 동굴로 이어진다. 코끼리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나트륨, 즉 소금을 섭취하기 위해서이다. 동굴의 바위에는 식물보다 100배나 많은 나트륨이 포함되어 있다. 긴 어금니로 소금이 풍부한 바위를 떼어내서 몇 시간 동안 씹어 먹는다고 한다.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만든 다리를 보는 것은 정겨운데 건널 때는 긴장백배이다.
점심식사 후에는 겨우 한 사람만 지나갈 수 있는 울창한 열대우림 숲길을 지난다. 하늘조차 보이지 않는 우림을 걷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몇 시간을 걷다 보니 무척 지루하다. 먹구름이 깔리고 해가 완전히 넘어간 후에는 비까지 조금씩 내린다. 계속된 오르막으로 피로감이 거세게 몰려든다. 마음 같아선 적당한 지점에서 하룻밤을 보냈으면 좋겠는데 이미 내 텐트와 셰프, 포터는 캠프사이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사방이 어두워지고 길은 오르내림을 반복하고 남은 거리는 줄어들지 않는다.

저 멀리 오렌지색 태양빛이 나를 위로해 준다. 이때가 오후 7시 26분. 별이 쏟아지는가 싶었는데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는다. 칠흑같이 주변이 어두워졌다. 숲이 너무 깊어서 헤드랜턴을 켰지만 바로 앞만 훤하니 발을 내딛기도 쉽지 않다. 첫날부터 신고식이 너무 세다. 첫날 숙영지인 카제리 캠프Kajeri Camp에 도착하니 밤 10시 30분이다. 이미 체력은 고갈된 상태라 저녁식사도 건너뛰고 싶었지만 내일 산행을 위해서 조금만 먹었다.

잠자리에 들었지만 속이 영 불편하다. 갑자기 무엇인가 위로 올라온다. 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계속 구토가 이어지더니 이젠 토사곽란으로 변한다. 지금까지 그렇게 많이 토한 적도 없는 것 같다. 저녁식사 때 돼지고기가 좋지 않았던 것 말고는 딱히 신경 쓸 만한 음식이 없었는데. 계속 복통이 심해서 자는 둥 마는 둥 밤을 지새웠다.

360도 파노라마 풍경이 펼쳐치는 엘곤산의 최고봉 우가가이. 우간다의 엘곤산도 조망이 된다.
야생화로 뒤덮인 황무지

2일차 코스는 카제라Kajera에서 출발해서 칼데라Caldera를 따라 걷다가 맨콩Mankong까지. 카제리 캠프(3,000m)에서 해발고도 약 4,000m까지 계속 올라가야 하므로 체력적으로 안배를 잘해야 한다. 지난밤 복통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아서 식사는 전혀 못 하고 물만 마시면서 걷는다. 열대우림에서 사바나로 들어서니 시야가 시원하게 뚫려서 그나마 걸을 만하다. 이 지역은 능선이 아름답고 카제리계곡, 시피강, 시피폭포, 무비이Mubiyi(4,211m) 피크를 조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고산지대에만 사는 세네시오scenecio와 로벨리아Lobelia 군락지가 사바나 평원에 펼쳐진다. 꽃으로 뒤덮인 황량한 벌판은 마치 누군가 마법을 부린 듯한 경이로운 풍경이다.

계곡을 건널 때는 잔뜩 긴장이 된다. 엘곤산의 다리는 대부분이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만든 것이다. 킬리만자로나 케냐산에 비하면 참으로 원시적이다. 보는 것은 정겨운데 건널 때는 긴장백배이다.

엘곤산 트레킹을 도와주었던 가이드, 셰프, 포터.
앞서가던 피터가 맨콩캠프를 가리키는데 산 중턱에 있다. 마치 동굴처럼 보이는 절벽 아래에 만든 작은 헛이다. 비와 바람을 피하기엔 참으로 좋은 위치이다.

바위 아래에서 하룻밤 안락하게 지내고 어제 걸어왔던 광활하게 펼쳐진 사바나 풍경을 바라보니 고산의 느낌이라곤 하나도 없다.

다시 그림 같은 사바나 평원 속으로 들어선다. 아기 해바라기 같은 세네시오꽃이 활짝 핀 꽃밭에선 발길을 옮기기가 쉽지 않다. 세네시오에 꽃이 핀 것은 처음 본다. 초록의 생명체들이 도열한 모습이 마치 병정들이 서있는 느낌이다. 엘곤산의 세네시오endrosenecio elgonensis는 고유수종으로 해발 2,700~4,200m에서 자란다. 습한 초원과 관목 지대에서 서식하는 세네시오는 직경 30cm에 달하는 튼튼한 줄기를 가지고 있으며, 그 꼭대기에는 길이 1m, 너비 30cm에 달하는 매우 커다란 잎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3일차 숙영지인 시롱코동굴캠프. 바위가 비와 바람을 막아 주는 천연 캠프사이트.
드디어 와가가이 정상이다. 해발 4,321m. 다행히 고소가 올 정도는 아니다. 먹은 것이 없는데도 힘이 불끈 솟는다. 엘곤산의 360도 파노라마 자연 풍경을 만끽한다. 저 멀리 케냐 쪽 엘곤산도 보인다. 마음 같아선 케냐와 우간다의 국경에 위치한 수덱Sudek(4,302m)도 한달음에 다녀오고 싶다. 유럽인들이 마음대로 그은 국경이 한 몸으로 있어야 할 산을 생이별시켰다.

꼭꼭 숨어 있는 와가가이를 만나서 하산하는 길은 완전 멋진 산책길이다. 누가 이곳을 해발 4,000m가 넘는 곳이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사바나에서 열대우림으로 들어서니 길이 질퍽거린다. 피할 곳이 없어서 그대로 진흙탕 위를 걸어야 하니 딱 장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지난 이틀 동안 장화를 신고 산행하는 피터가 안쓰러웠는데 이젠 부러워진다.

3일차 숙영지는 부시이 트레일 캠프사이트Bushiyi Trail Camp Site이지만 날이 어두워질 때 걷기에는 위험해서 시롱코동굴캠프Shironko Cave Camp에서 머물렀다. 바위가 막아 주어서인지 춥지 않게 잘 잤다.

트레킹 2일차 맨콩캠프로 가는 길에 노랑톱풀 꽃밭 평원이 끝없이 펼쳐진다.
열대와 사바나가 혼재하는 신비의 산

마지막 날이라 마음이 가볍다. 여명의 기운을 받은 하늘이 참 예쁘다. 그러나 부시이 레인저 포스트까지 가는 길은 최악이다. 계곡을 따라가는 급경사의 길은 그냥 내려오기도 쉽지 않은데 지난 이틀 동안 내린 비로 등로가 유실된 곳도 있다. 질퍽거리는 길은 내 등산화를 삼켜버렸다. 온 몸으로 산을 내려간다.

식물에 관심이 많은 피터는 잠시 쉴 때마다 주변의 식물을 하나하나씩 설명해 준다. 긴장이 팽팽한 하산 길을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해주려는 피터의 마음 씀씀이가 참 고맙다. 다행히 무탈하게 부시이 레인저 포스트에 도착했다. 등산화와 오버트라우저에 묻은 진흙을 닦아내는 데 한참 시간이 걸렸다. 셰프는 기다리고 있다가 쌀죽을 끓여 주었다. 쌀뜨물에 가까운 쌀죽이지만 그의 소박한 진심이 내 마음을 뜨겁게 해준다.

시롱코동굴캠프에서 부시이 레인저 포스트로 향하는 급경사 길은 지난 이틀 동안 내린 비로 등산화를 삼켜버릴 정도로 질퍽거린다.
부시이 레인저 포스트는 차량 진입이 어려운 곳이라 차량이 접근 가능한 지점까지는 오토바이택시인 보다보다를 타야만 한다. 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마을인 불루체케Bulucheke까지 보다보다를 타고 이동하는데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진다. 돌길에 울퉁불퉁 파인 곳이 많아서 오토바이에 앉아 있는 것조차 불안한데 순식간에 진흙탕 길로 변하고 빗물이 계곡처럼 흐른다. 오토바이가 진흙탕 길에서 미끄러질 때마다 나도 모르게 '앗'소리가 나왔다. 오토바이 기사는 안전하다고 걱정하지 말라지만 내가 살아오면서 이렇게 무서운 길은 처음이다. 결국 장대비를 피하기 위해 시고로Cigoro에서 잠시 쉬었다가 비가 소강상태일 때 불루체케로 이동했다. 시작부터 끝까지 참으로 다사다난한 엘곤산 트레킹이다.

우간다까지 여행을 간 이유는 아프리카 고산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르웬조리산Rwenzori Mountains 트레일. 그러나 비용이 너무 부담스러워 차선책으로 택한 엘곤산의 열대 풍경과 사바나가 혼재하는 신비한 풍경은 충분한 보상이 되었다.

부시이 트레일 캠프사이트. 엘곤산 트레킹 캠프사이트 중 가장 상태가 좋은 곳이다.
▶ 산행요약

1일차(19.6km) 캅와이(2,050m) ~ 투툼동굴 (2,667m)~ 카제리 캠프(3,000m)

2일차(10.8km) 카제리 캠프 ~맨콩캠프(3,939m)

3일차(14.5km) 맨콩캠프~와가가이(4,321m)~시롱코동굴캠프(3,300m)

4일차(8.6km) 시롱코동굴캠프~부시이 레인저 포스트(1,950m)

'할아버지 수염'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는 아프리카 고산식물인 로벨리아.
▶ 방문시기

엘곤산은 일 년 중 언제든지 갈 수 있지만, 6~8월과 11~3월의 건조한 계절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 11월과 12월에는 아름다운 야생화가 피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시피폭포

엘곤산까지 갔다면 국립공원 바로 밖에 있는 캅초르와Kapchorwa에 있는 세 개의 시피폭포Sipi Fall를 방문하는 것을 추천하다. 이 중 가장 낮은 곳의 폭포는 동굴 입구 위로 100m 이상 쏟아져 내리는 장관을 연출한다. 폭포 자체는 물론 엘곤산, 동쪽의 넓은 평야 등이 내려다보이는 경관이 아름답다. 폭포에서 떨어지는 액티비티 앱셀링abseiling을 즐길 수 있다. 폭포만을 보기 위해서 가는 것은 비추. 위에서는 폭포가 보이지 않고 폭포 하단으로 가려면 한참동안 걸어가야 한다.

월간산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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