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HMM 매각의 올바른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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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조 유보금 '인수 당근' 안 될 말
貨主 위한 물류체제 구축에 써야
전문기업 참여 여건 만들어주길

전준수 서강대 경영대 명예교수
컨테이너 정기선 시장에서 얼라이언스 활동에 규제를 가하거나 독과점 금지법의 예외를 인정한 특혜를 취소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 정부가 지난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 얼라이언스라고 불리는 해운선사들의 연합이 인위적으로 선박 공급을 조정함으로써 과도한 운임 인상을 야기했다고 의심하고 있어서다. 이에 따라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사인 머스크와 MSC는 2M이라는 얼라이언스 체제를 2025년 1월 해체하기로 했다. 2M은 세계 컨테이너 선박의 34%를 차지하고 있고 2025년에는 40%로 예상돼 독과점 금지법에 저촉되기 때문이다.

머스크는 팬데믹 기간에 축적한 300조원 이상의 이익잉여금을 항공과 내륙물류기지 확보 등에 투자해 종합물류체제를 갖추는 등 고객별 맞춤 물류서비스 개발에 나섰다. 반면 MSC는 유람선, 에너지 운송, 대형 컨테이너 사업 등 전통적 해운을 중심으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얼라이언스도 이합집산이 이뤄져 현재 3개인 얼라이언스가 5개 정도로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영권 매각 절차를 밟는 HMM(옛 현대상선)은 신속한 경영 안정화를 통해 10조원 이상의 이익잉여금을 국내 화주의 수요에 맞춰갈 수 있는 종합물류체제를 갖추는 데 투자해야 할 것이다.

산업은행은 한국해양진흥공사와 함께 HMM 경영권 매각을 위해 공개 경쟁입찰 공고를 냈다. 매각할 HMM 주식은 산은과 해진공이 보유한 1억9900만 주, 그리고 주식으로 전환될 영구채 2억 주를 합쳐 총 3억9900만 주다. 매각 지분율은 38.9%다. 산은은 주식으로 전환될 영구채 2억 주 외에 잔여 1조6800억원 규모의 영구채도 인수자가 인수하는 조건을 선호하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 인수 희망자가 재무적투자자(FI)와의 협업을 통해 자금을 동원할 계획이어서 인수 후에도 과연 이익유보금이 HMM의 경쟁력 향상에 투자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현재 운임은 고점 대비 5분의 1을 밑도는데 앞으로도 장기 고착화할 가능성이 크다. 과연 이런 시황에 비전문 해운기업이 그런 인수 조건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염려스럽다.

2조6800억원에 달하는 영구채는 신주로 전환하기보다 HMM의 채무로 남겨두고 정책적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HMM의 10조원 이상 이익유보금을 새로운 인수자를 위한 유인책으로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방향이다. 인수자가 HMM을 인수한 뒤 이익유보금을 배당해 그것으로 실제 인수대금을 낮추거나 이익유보금으로 영구채를 전액 상환한 후 매각하는 방안 등이 고려되고 있다는데, 이는 HMM의 이익유보금 실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히 금융 논리로만 해결하려는 잘못된 태도다.

10조원 이상의 이익유보금은 팬데믹 때 사활을 걸고 엄청난 손실을 감내하며 수출입 책임을 이행해 한국의 신용을 지켜낸 수출입 기업들이 쌓아준 돈이다. 따라서 이 유보금은 한국 수출입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상품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최첨단 종합물류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한 체제 구축과 발전에 써야 한다.

이제는 본래 HMM을 지원한 목적대로 한국 해운의 재건과 진흥을 위해 결단을 내려야 한다. 해운에 전문성을 갖춘 기업이 인수 가능한 조건을 만들어 HMM이 세계 굴지의 정기선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매각을 마무리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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