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트럼프의 재판, 이 대표의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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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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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가운데) 전 미국 대통령이 1월 11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의 뉴욕주 대법원에서 열린 트럼프 재단 민사 사기 재판에 출석해 변호인들과 앉아 있다./ EPA 연합뉴스

공화당 경선이 급박하게 진행되면서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최근 뉴욕 맨해튼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이 진행됐다. 과거 트럼프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여성 칼럼니스트가 손해배상을 제기한 명예훼손 재판이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재판 시작까지는 오래 걸리지만, 한번 시작하면 거의 매일 열다시피 한다. 이번에도 지난달 26일 1심 선고가 나기 전까지 재판부가 갑자기 코로나에 걸렸을 때를 제외하면 매일 열렸다.

트럼프는 이 재판에 매일 참석할 의무는 없었다. 오히려 트럼프가 “장모의 장례식이 있으니 그날은 재판을 연기해 달라”고 하자 재판부가 “피고가 굳이 참석할 필요가 없다”며 거부할 정도다. 그런데도 당내 경선이 진행되고 전국을 다니며 유세를 하는 상황에서 굳이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재판에 나왔다. 외신들도 “트럼프가 맨해튼에서 재판을 마치고 뉴햄프셔에 와서 집회를 한 뒤 다시 자신의 침대에서 자려고 뉴욕을 간다”며 놀라워한다. 트럼프는 77세다.

트럼프는 재판에 참석하는 이유를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의 행동과 발언을 종합하면 추론이 가능하다. 트럼프는 법정에 나와 배심원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소리로 혼잣말을 하며 재판을 방해했다. 그러다 판사의 경고를 받았다. 재판 중간중간 자신의 억울함을 과장되게 호소하고 법정에 있는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전파했다. 재판 전과 후 마이크를 든 기자들에게 검찰과 재판부를 비판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자신이 마녀사냥의 피해자이며, 정치적 박해를 받는다고 주장했다. 재판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 열리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재판 소식을 접하며 문득 ‘이 대표가 트럼프를 벤치마킹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대표는 법정 밖에서는 지지자들에게 자신이 검찰 수사의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재판 중간 ‘몸이 좋지 않다’며 나가버리거나 국회 일정을 들어 나오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럴바에 차라리 법정에 나와서 방청객이 들을 수 있도록 혼잣말을 하든, 재판 참석 전·후 기자나 지지자들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고 검찰·법원을 비판하는 것은 어떤가. 발언권을 신청할 기회가 주어지면 적극 신청해서 자신의 주장을 펼쳐 보이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재판 와중에 사표를 낸 판사도 있는데, 발언권 정도야 주지 않겠는가.

그 대신 이 대표는 재판에 꼬박꼬박 출석하고, 재판을 지연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재판이 끝나면 법적 판단은 판사가 할 것이고, 정치적 판단은 국민이 한다. 트럼프의 경우 아무리 사법 리스크가 있다고 해도 상당수 미국인이 그를 지지한다. 트럼프처럼 이 대표도 자신의 지지자들을 믿어 보라. 대통령 꿈을 품은 정치인이라면 그 정도 승부수는 던질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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