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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윤 칼럼(24-21)> 고교 동창생들의 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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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3. 20:5018 읽음

1958년 2월 대구 경북고등학교 39회 졸업생인 동창생들의 나이가 80대 중반에 달해 이 세상을 떠나 저 세상으로 가는 친구들이 이어지고 있다. 어제(4월 12일)는 정성진 전 법무부 장관이 83세를 일기로 별세했으며, 오늘 아침 신문(조선일보 등)에 부음(訃音) 기사가 실렸다.  

경북중·고등학교는 1916년 5월 16일 대구고등보통학교(大邱高普)로 개교했다. 경북중고등학교는 영남지방의 영재들이 입학하여 서울 경기중고등학교(京畿高普)와 함께 명성을 떨쳤다. 경북고 39회 졸업생 중에 장관 3명이 배출되었다. 즉 사공일(司空壹) 재무부 장관(33대, 1987년5월-1988년12월), 이수정(李秀正) 문화부 장관(30대, 1991년12월-1993년2월), 그리고 정성진(鄭城鎭) 법무부 장관(59대, 2007년9월-2008년2월)이다.  

사공일 장관은 1940년 1월 경상북도 군위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58학변) 졸업 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원장,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1983-1988), 전두환 정부 시절에 재무부장관을 지냈다. 이명박 정부 들어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G20정상회의준비위원장, 한국무역협회장을 지냈다.  

이수정 장관은 1940년 1월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태어났다.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문리대 정치학과에 다니던 시절 4.19혁명 선언문을 작성하였다. 대학 졸업 뒤 1963년 한국일보에서 언론인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정치부기자로서 필명을 날렸다. 1988년 대통령 공보수석을 지냈으며, 1991년 노태우 정부의 두번째 문화부장관을 지냈다. 2000년 1월 지병으로 향년 60세에 별세했다.  

정성진 장관은 1940년 7월 경북 영주군에서 태어났다. 경북고 졸업 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했다. 제2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69년부터 1993년 4월까지 검사(檢事)로 재직하면서 대검 중앙수사1과장, 대검 중수부장 등 검찰 주요 보직을 역임했다. 1993년 대검 중앙수사부장으로 영전하면서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대상이 되었는데 상속받은 재산이 많아 구설수에 올라 퇴임했다.  

이후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 객원교수를 거처 1995년 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로 임용되었으며, 2000년부터 2004년까지 국민대 총장을 지냈다. 2004년 총장 퇴임 후 참여정부에 발탁되어 다시 공직에 입문했다. 참여정부의 마지막 법무부장관을 지냈고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야인으로 돌아갔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정성진 동창은 여름에도 넥타이를 매고 정장차림으로 경북고 39회동창회 월례오찬모임에 참석하곤 했다. 몇 년전에는 병원에 장기간 입원한 적이 있으며, 지난해 요양병원에 입원한 후에는 강남 논현동 취영루에서 개최되는 동창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에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갑자기 별세했다는 소식을 가족들이 전해왔다. 하늘나라에서 고통 없이 영면(永眠)하소서.  

<사진> 부음 - 정성진 前 법무부 장관 별세  

靑松 朴明潤(서울대 保健學博士會 고문, AsiaN 논설위원), Facebook, 13 April 2024.

<출처 : 치매신문> http://www.치매신문.com/177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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